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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Apr 11. 2019

디지털 제국의 지배 방식

#2-6 인터넷 - 디지털 제국주의 1.0

앞서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제국의 사례로 고대의 로마, 근대의 영국, 현대의 미국을 언급했다. 거듭해서 강조하지만 성공하는 제국이 식민지를 지배하는 방식은 무척 일관된 특징을 지닌다. “성공하는 제국은 개방적이고 관용적이며 혁신을 장려하는 포용적인 정치적 경제적 제도를 갖추고 있다. 또한, 성공하는 제국은 피지배자에게 자율성을 부여하고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제국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게끔 만든다.”


흥미로운 점은 디지털 제국이 성공하는 제국의 지배 방식을 그대로 답습한다는 것이다. 위 문장을 이렇게 변형해보아도 의미는 유효하다. “디지털 제국은 개방적이고 관용적이며 혁신을 장려하는 포용적인 정치적 경제적 제도를 갖추고 있다. 또한, 디지털 제국은 피지배자에게 자율성을 부여하고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제국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게끔 만든다.” 오늘날 인터넷 패권을 쥐고 있는 디지털 제국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고대의 로마, 근대의 영국, 현대의 미국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점이 많다. 


인터넷 산업을 주도하는 디지털 제국의 대외적 이미지는 개방, 관용 그리고 혁신이다. 자유로운 근무 환경 속에서 창의적인 인재들과 함께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꾼다는 것이 디지털 제국의 대외 선전 방식이다. 그러나 이를 믿는 것은 순진하다. 유수의 인터넷 기업들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안토니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가 쓴 <카오스 멍키>에 따르면, 실리콘 밸리는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절박함이 지배하는 정글이다. 잠재적 위협이 될 만한 경쟁자는 게걸스럽게 인수하고, 인수가 여의치 않으면 아이디어를 베껴서 도용해버리면 그만이다. 어쩌다 운이 좋아 성공한 서비스가 ‘준비된 혁신’으로 포장되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온갖 암투가 판을 치는 곳이 실리콘 밸리다.


한편, 디지털 제국은 피지배자에게 자율성을 부여하고 스스로 제국의 성장에 봉사하게끔 만든다. 원칙적으로 우리는 ‘자유롭게’ 매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디지털 제국들이 제공하는 인터넷 서비스를 사용한다.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웹서핑을 하고, 동영상을 보고, 물건을 사고, SNS에 사생활을 올리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는 고스란히 디지털 제국의 데이터 센터로 귀속된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자원 추출 과정이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는 것이다. 데이터가 21세기 석유인 점을 고려하면, 우리는 매일 스스로 작업복을 입고 광산에 들어가는 셈이다.  


디지털 제국의 지배는 결코 폭력성을 띄지 않는다. 다만 ‘편리함’을 앞세워 우리의 뇌를 마취시키고 치매환자처럼 만들어 버릴 뿐이다. 사고 능력이 감퇴된 우리는 기꺼이 제국의 신민이 된다. 예를 들어, 구글의 검색창에 글자를 하나 칠 때마다 알고리즘은 여러 가지 키워드를 제안한다. 구글의 지나친 배려에 익숙해지면, 우리가 스스로 키워드를 생각하기도 전에 구글 알고리즘이 선별한 키워드를 키보드로 치는 상황이 연출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알고리즘이 시키는 대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꼭두각시로 전락할 위험에 처한 것이다.  


디지털 제국이 뇌를 마취시키는 것과 관련, 니콜라스 카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본인이 겪은 경험을 털어놓는다. 평소에 인터넷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모두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나의 뇌는 굶주려 있었다. 뇌는 인터넷이 제공하는 방식으로 정보가 제공되기를 바랐고, 더 많은 정보가 주어질수록 더 허기를 느끼게 된 것이다. 나는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을 때조차 이메일을 확인하고, 링크를 클릭하고, 구글에서 뭔가를 검색하고 싶어 했다. 나는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었다. (중략) 나는 마치 인간의 모습을 한 기계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나는 이전의 뇌를 잃어버린 것이다.”


혹자는 인터넷을 인쇄혁명에 비유하며 디지털 제국이 정보의 대중화를 견인한 일등공신이라고 옹호한다. 인터넷이 정보의 대중화에 기여한 것은 부분적으로는 사실이지만, 책과는 달리 인터넷은 심각한 결함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바로 정보의 편식과 정보의 과잉이라는 부작용이다. 가령, 책을 선별하고 정보를 습득하는 것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고 이 과정에 인쇄기는 개입하지 않는다. 반면, 인터넷에서 정보를 통제하는 것은 사용자가 아닌 디지털 제국이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엄선된 정보를 담은 책과는 달리 인터넷에서는 정보의 쓰레기가 즐비하고 이에 의해 정작 중요한 정보는 파묻혀 버린다. 


우선 인터넷 정보의 편식에 대해 알아보자. <생각 조종자들>의 저자 엘리 프레이저는 “필터 버블”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필터 버블이란 디지털 제국이 사용자에게 맞춤형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사용자가 익숙하지 않은 정보를 접할 기회가 차단당한 상태를 뜻한다. 예를 들어, 보수적인 정치 성향을 가진 사용자의 페이스북 뉴스피드에는 진보적인 정치 내용은 배제된 채 온통 보수 정치 관련 게시물만 뒤덮이는데 이게 바로 필터 버블이다. 필터 버블로 인해 사용자는 다양한 사고를 접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디지털 제국은 양질의 데이터를 팔아 광고주들로부터 막대한 이윤을 벌어들인다. 


또한, 인터넷이 제공하는 정보의 과잉에 의해 우리의 사고력이 침식되는 것도 문제이다. 인터넷에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즉흥적이고 휘발적인 정보가 대부분이다. 경청은 없고 소음만 존재한다. 정보의 결핍으로 곤란을 겪은 선조들과는 달리 우리는 정보의 과잉이라는 재앙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가 두려운 사람들에게>의 리처드 왓슨도 정보의 홍수가 야기하는 부작용에 대해 지적하는데 참으로 공감하는 바이다. “정보는 지금 연중무휴, 하루 스물네 시간 내내 포착되고 유통된다. 그래서 머리를 비울 시간이 거의 없다. 혹은 우리 스스로 바쁜 쪽을 선택하는 것일 수도 있다. 속도를 늦추고서 우리가 누구이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성찰하는 것, 혹은 우리가 과연 오래도록 살아남을 만한 내용이나 가치가 있는 무언가를 하고 있는지를 성찰하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할 테니까.”


북저널리즘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7월에 책이 출간됩니다. 저작권 문제로 인해 내용을 일부 삭제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bookjournalis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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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P0D3TbNp0iU&t=9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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