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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Apr 13. 2019

디지털 판옵티콘

#2-7 인터넷 - 디지털 제국주의 1.0

오늘날 미국과 중국의 디지털 제국들이 장악하고 있는 인터넷은 국가별로 차이는 있지만 본질은 같다. 그것은 바로 한때 투명성을 지향했던 인터넷이 감시와 통제가 만연한 디지털 판옵티콘으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한병철은 <투명사회>에서 디지털 판옵티콘의 특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무제한의 자유와 무제한의 커뮤니케이션은 전면적 통제와 감시로 돌변한다. 소셜미디어 또한 점점 더 사회적인 삶을 감시하고 이용해 먹는 디지털 판옵티콘에 가까워진다. 규율 사회의 판옵티콘은 더 효과적인 감시를 위해 수감자들을 격리시키고 서로 대화도 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디지털 판옵티콘의 주민들은 서로 열심히 소통하며 그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노출한다. 그들은 이로써 디지털 판옵티콘의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중국은 디지털 판옵티콘이 어느 수준까지 고도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조지 오웰이 <1984>를 통해 예견했던 디스토피아는 중국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안보를 빌미로 중국 정부는 실시간으로 시민들을 감시하고 통제한다. 중국인들이 매일 사용하는 스마트폰과 곳곳에 설치된 보안 카메라는 곧 디지털 빅브라더로 기능한다. 중국 정부는 자국 내 인터넷 기업들이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에 언제든지 개입하고 간섭할 수 있다. 무서운 것은 중국 정부가 단순히 인터넷을 검열하는 것을 넘어 강제적으로 시민들을 디지털 판옵티콘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선진화된 안면 인식 기술은 디지털 판옵티콘의 대표적인 예이다. 2015년 이후 중국 정부는 범죄 예방을 명분으로 감시 시스템 ‘톈왕 (하늘의 그물)’을 구축해왔다. 2,000만 개가 넘는 보안 카메라가 실시간으로 시민들을 감시하고 톈왕은 중국 정부의 데이터베이스와 연동된다. 중국 경찰은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여러 대의 보안카메라를 눈 아프게 들여다볼 필요가 없다. 톈왕에 인물을 등록하면 전국에 깔린 보안 카메라들이 자동으로 사람들을 식별하고 범인을 찾아준다. 톈왕의 감시 대상은 범죄자뿐 아니라 공산당에 불만을 가진 사람과 인권 운동가도 해당될 것임은 자명하다. 


중국 내 사회 신용 시스템도 디지털 판옵티콘을 공고히 하는데 기여한다. 중국 정부는 시민들의 재무적 정보뿐 아니라 비재무적 정보도 수집해 신용 등급을 부여하는 사회 신용 시스템을 구축했다. 알리바바의 ‘세사미 크레딧’이 대표적인 예이다. 사회신용시스템을 통해 낮은 신용 등급을 받은 사람은 금융 서비스가 제한되고 여행이 금지되는 등 온갖 불이익을 받는다. 반면, 높은 신용 등급을 받은 사람에게는 온갖 사회경제적 혜택이 주어진다. 문제는 중국 사회 신용 시스템이 시민들에게 부여하는 신용등급이 정부에 얼마나 충성하는지 여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게시물을 인터넷 올리는 사람은 신용도가 깎인다. 심지어 반체제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도 불이익을 받는다. 반면, 정부의 정책을 옹호하는 게시물을 올리는 사람은 높은 신용 등급을 받고 혜택을 누린다. 당연히 중국 시민들은 정부에 불만을 느껴도 신용 등급이 하락하는 것이 두려워 이를 절대 표출하지 않는다. 오히려 높은 신용 등급을 얻기 위해 중국 정부를 지지하는 게시물만 인터넷에 올리고 자신을 열렬한 공산당 지지자로 포장한다. 중국의 인터넷은 표현의 자유를 금지할 뿐 아니라 정부에 유리한 방향으로 시민들의 표현을 강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산당을 찬양하는 게시물이 인터넷 상에서 재생산되고 확대되는 과정에서 중국 시민들은 세뇌당하고 권력은 더욱 강력해진다. 


중국의 디지털 제국인 BAT를 건국한 리옌홍, 마윈, 마화텅이 2000년 전후 창업을 했을 때, 이런 암울한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중국은 미국 디지털 제국들의 식민지였고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중국 정부에 협조하는 것은 이들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그렇게 기업에 정치라는 목줄이 채워지면서 중국의 인터넷은 감옥으로 변한 것이다. 주지하는 것은 중국 정부에 협조하는 것이 비단 중국 기업뿐만 아니라는 점이다. 예컨대, 2017년 들어 중국 정부가 사이버 보안법을 시행하고 VPN 단속을 강화할 때 애플은 자사 앱스토어를 통해 유통되던 VPN앱을 모두 삭제했다. 그 결과, 중국 정부의 인터넷 감시와 통제는 전례 없는 수준으로 강화되었고 애플은 사용자의 권리를 박탈한 대가로 중국에서 사업을 영위할 수 있었다.


민주사회의 시민들은 중국의 사례를 보며 안도감을 느낄 것이다. 일당독재 중국과는 달리 민주사회에서는 강제적이고 폭력적인 감시와 통제는 가능하지 않을 테니까. 만약 민주주의 선거로 선출된 정부가 인터넷을 통제하고 안면 인식 보안 카메라로 시민들을 실시간 감시하는 법안을 제정하려 한다고 상상해보자. 개인의 권리를 중요시 여기는 민주 사회에서 이와 같은 정부의 폭정이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디지털 판옵티콘은 민주사회에도 존재한다. 독재 정부가 직접 구축한 중국의 디지털 판옵티콘과는 달리, 민주사회의 디지털 판옵티콘은 정부의 강제적 개입 없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운영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우리는 만인이 만인을 감시하는 디지털 판옵티콘의 수감자이자 감독관이다. 우리가 인터넷 상에서 하는 모든 행위는 기록되고 이는 누군가에 의해 감시될 뿐 아니라, 때로는 우리가 타인의 기록을 감시하기도 한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는 특히 디지털 판옵티콘의 특성이 극대화되는 곳이다. SNS 서비스의 본질은 사용자들의 허영심을 부추기고 관음증 환자처럼 행동하도록 권유하는 것이다. SNS 사용자들은 셀카, 일상, 취미, 취향 등을 올리며 디지털 자아를 형성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디지털 자아를 염탐한다. SNS에서 주목을 받는 것은 곧 인기와 돈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허영과 관음에 기반한 디지털 판옵티콘 구조가 깨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비단 SNS 뿐 아니라 모든 인터넷 서비스는 감시에 기반한다. 애초에 디지털 제국들이 제공하는 모든 종류의 ‘스마트’한 서비스는 편리함을 미끼로 사용자를 감시하도록 설계되었다. 실제로 우리의 주머니 속 스마트폰, 손목 위 스마트 와치, 집 거실에 있는 스마트 스피커 등, 모든 ‘스마트’한 기기들은 곧 디지털 제국들의 감시 수단이다. 이것들은 전부 사용자를 감시하고 최대한의 정보를 뽑아내도록 계획된 제품이다. 디지털 제국들은 사용자로부터 추출한 정보에 기반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더욱 철저히 해체된다. 


디지털 제국의 감시 및 프라이버시 침해와 관련, <감시 자본주의> 저자 쇼사나 주보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감시 자본가들에게 프라이버시를 요구하는 것은 곧 헨리 포드에게 모델 T를 손으로 제작해달라고 하는 것과 같다.”즉, 디지털 제국이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는 것은 사업 구조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녀는 포드와 GM가 각각 대량생산 모델과 관리형 자본주의의 선구자였듯이 구글이 감시 자본주의 시대를 개척했다고 평한다. 구글 후에는 페이스북이 바통을 이어받았고 이제는 감시 자본주의 모델이 비단 인터넷 기업뿐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등 다양한 산업에 적용되는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고 그녀는 주장한다.


감시 자본주의 하에서는 매일 2.5 퀀틸리언 바이트 (1퀀틸리언은 100경을 의미하는데 100만의 3승에 해당하는 수) 데이터가 생산된다. 문명의 태동 이후 인터넷이 대중화될 때까지 누적된 데이터의 총량이 이제는 매일매일 생성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하고 감독하는 권한은 사용자가 아닌 디지털 제국에게 있다. 우리는 불분명하고 난해한 용어로 가득한 약관에 별생각 없이 동의함으로써 데이터 주권을 디지털 제국에게 넘겨준다.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축적된 빅 데이터가 기업의 이윤 추구뿐 아니라 정부의 감시와 통제에 활용된다는 점이다.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고 반 권위적인 미국 실리콘 밸리의 기업가들이 정부의 부당한 압력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대단히 순진한 생각이다.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은 NSA(미 국가안보국) 이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데이터를 쓸어 담아 개인들을 감시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미국의 안보에 위협을 가하는 위험에 대비하는 것이 NSA의 주 역할인데, 사찰의 대상은 테러범, 갱단 같은 범죄조직뿐 아니라 인터넷 서비스를 사용하는 모든 민간인들도 포함된다. 구글, 페이스북 등의 디지털 제국들은 인터넷 감시와 통제를 위해 NSA와 협력했음이 밝혀졌다. 중국의 디지털 제국들이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 공산당에 협력한 것처럼, 미국의 디지털 제국들 역시 권력의 손아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난 셈이다. 


한편, 이상주의자들이 변질된 인터넷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던 차, 2008년 이후 이들은 다시 한번 사이버 유토피아를 상상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상주의자들은 인터넷 산업 발전 초기에 유행했던 분권화, 탈중앙화라는 해묵은 가치를 다시 들먹이며 이 기술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것이라고 흥분했다. 확실히 역사는 반복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20-40년 전 사람들이 인터넷의 긍정성에 열광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그 대상이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북저널리즘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7월에 책이 출간됩니다. 저작권 문제로 인해 내용을 일부 삭제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bookjournalis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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