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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Apr 16. 2019

프랑켄슈타인과 사토시 나카모토

#3-1 비트코인, 괴물의 탄생

여태껏 제국주의가 어떻게 진화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나는 특히 인터넷의 역사 및 주요 인터넷 기업들의 면모 그리고 인터넷의 역기능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상당한 분량을 할애했다. 인터넷이 어떤 발전 과정을 거쳐 변질되었는지, 감시 자본주의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인터넷 기업들이 얼마나 교묘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지배하는지 등에 대해서 알아야만 디지털 제국주의에 대해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제국주의에 대한 배경지식을 갖추어야만 비트코인 제국주의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비트코인에 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에 앞서, 공상과학소설의 원조로 불리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이야기를 꺼내고 싶다. 소설의 주인공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연금술에 심취한 과학자이다. 그는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이용해 인조인간을 창조한다. 자신이 만든 피조물의 흉측한 모습에 실망한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무책임하게 인조인간을 버려둔 채 도망간다. 홀로 남겨진 인조인간은 극심한 외로움을 느끼고 인간들과 가깝게 지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혐오감을 주는 외모 때문에 그는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한다. 결국 인조인간은 인간사회에서 추방당하고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는다. 나중에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만난 인조인간은 자신의 배우자를 만들어 달라고 청한다. 그러나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그의 요청을 거절하고 이 둘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프랑켄슈타인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피조물을 창조해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와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슷한 면이 있다. 알다시피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트코인을 창조한 인물 (혹은 그룹)이다. 2008년 10월 사토시 나카모토는 인터넷에 “비트코인: P2P 전자 화폐 시스템”이라는 9페이지의 백서를 올렸다. 이 백서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금융기관의 개입 없이 개인 간 거래가 가능한 전자 화폐이다. 비트코인의 주요 특징은 1) 개인 간 네트워크를 통한 이중 지불 방지; 2) 조폐 제도 혹은 다른 중앙화 기관 배제; 3) 참여자의 익명성; 4) 해쉬 스타일의 작업 증명에 기반한 화폐 발행 등이다. 이외에도 비트코인의 특징이 많지만, 이와 관련 이미 많은 콘텐츠가 나와있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사토시 나카모토에 관한 정체를 논하기에 앞서, 그가 왜 비트코인을 만들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예컨대, 프랑켄슈타인이 인조인간을 창조한 것은 과학자 특유의 탐구정신과 더불어 신이 되고 싶은 욕망에 기인한 것이다. 다시 말해 프랑켄슈타인을 움직인 동인은 엄청난 사명감이 아니라 단순히 개인적인 야망이라는 뜻이다. 프랑켄슈타인과는 달리, 사토시 나카모토는 숭고한 목적을 가지고 인류를 위해 비트코인을 창조한 것처럼 보인다. 마치 정의를 위해 권력과 맞서 싸우는 <브이 포 벤데타>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말이다.


비트코인이 탄생한 배경을 살펴보자. 사토시 나카모토가 인터넷에 비트코인 백서를 올린 2008년, 월가의 대형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와 베어스턴스가 파산했고 세계 경제는 위기에 빠졌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금융 자본의 탐욕 및 중앙화 시스템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당시 미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들의 정부는 대마불사 (大馬不死) 금융기관들을 구제하기 위해 공적 자금을 투입했다. 다수의 희생 덕분에 소수의 금융기관은 회생할 수 있었고 일부 고위 임원들은 돈 잔치를 벌였지만, 전 세계 많은 시민들은 일자리와 재산을 잃었다. 이것은 명백한 부당거래였다. 잘못은 금융 기관이 저질러놓고 책임은 시민들이 진 것이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이 같은 금융 시스템에 상당한 환멸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2009년 1월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트코인의 제네시스 블록에 이런 문구를 남겼다. “The Times 03/Jan/2009 Chancellor on brink of second bailout for banks” 참고로 이는 영국 재무장관이 은행들의 두 번째 구제금융을 앞두고 있다는 내용인 2009년 1월 3일 자 The Times 헤드라인을 인용한 것이다. 사토시 나카모토의 금융 시스템에 대한 반감은 2009년 2월 P2P 재단에 올린 글에서도 드러난다. “기존 화폐의 근본적인 문제는 그 화폐 시스템이 작동하기 위해서 필요한 신뢰입니다. 중앙은행은 화폐가치를 떨어뜨리지 않는 신뢰를 가져야 합니다만, 법정 화폐의 역사는 신뢰의 위반으로 가득합니다. 은행은 반드시 우리의 돈을 엄격하게 보관하고 전자 방식으로 이체할 수 있다는 것을 신뢰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은행은 소량의 준비금만 남기고 신용버블을 일으켜 대출을 많이 해주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개인정보를 은행에 맡기고, 해커들이 우리의 은행 계좌를 탈취하지 못할 것을 신뢰해야 합니다. 은행들의 엄청난 간접비는 소액결제를 불가능하게 합니다.”


비트코인의 탄생 배경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사토시 나카모토는 무척 정의로운 인물인 것처럼 보인다. 그는 부당한 금권의 횡포에 대항해 탈중앙화 된 전자 화폐인 비트코인을 창조함으로써 새로운 금융시스템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또한 비트코인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공개함으로써 불특정 다수의 참여로 비트코인 네트워크가 발전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의 피조물이 망가지도록 무책임하게 방치한 것과는 달리,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트코인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여기까지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비트코인의 창조자 사토시 나카모토에 대한 이야기다.


 

북저널리즘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7월에 책이 출간됩니다. 저작권 문제로 인해 내용을 일부 삭제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bookjournalis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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