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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Apr 17. 2019

사이퍼 펑크와 괴짜들의 행진

#3-2 비트코인, 괴물의 탄생

비트코인 탄생의 공을 전부 사토시 나카모토에게만 돌리는 것은 곤란하다. 왜냐하면 비트코인을 창조하는 데 있어, 사토시 나카모코는 이미 존재하던 다양한 아이디어를 참고했기 때문이다. 마치 과학자가 기존의 연구 사례를 참고해 새로운 연구 결과를 내놓듯이 말이다. 실제로 비트코인 백서의 마지막 부분에는 사토시 나카모토가 참고한 총 8개의 논문이 등장한다. 가장 상위에 위치한 논문이 웨이 다이의 ‘비머니’인 점을 고려하면,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트코인을 설계할 때 비머니로부터 상당한 영감을 얻었음이 분명하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트코인의 탄생을 발표한 직후, 웨이 다이에게 다음의 내용이 담긴 이메일을 보냈다. “비트코인은 당신이 비머니를 통해서 완수하려던 목적을 실현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비트코인은 어떠한 서버나 신뢰할 만한 제3 기관이 필요 없는, 전적으로 탈중앙화 된 시스템입니다.” 중앙 기관의 개입 없는 개인 간 거래, 해시 캐시 작업 증명 알고리즘, 암호화 키, 분산 원장 기술 등 비트코인의 핵심원리는 실제로 비머니의 특징과 유사하다. 다만 이 둘의 차이점이 있다면, 비머니가 참여자들의 선의에 의존한 다소 이상적인 네트워크인 반면, 비트코인은 철저한 보상과 게임 이론에 기반한 현실적인 네트워크라는 점이다.  


비단 비머니 뿐 아니라 많은 선례들이 사토시 나카모토에게 영감을 줬다. 사실상 비트코인의 원류는 암호화 기술과 사이퍼 펑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단 암호화 기술을 살펴보자.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치는 동안 암호화 기술은 주로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되었다. 국가 정보기관이 기밀 정보를 암호화해서 주고받고 적국의 암호화된 정보를 해독하는 식이다. 참고로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은 암호화 기술을 활용해 2차 세계대전 연합군을 승리로 이끌었는데, 그의 이야기는 <이미테이션 게임>이라는 영화로 제작됐을 정도로 유명하다.


암호화 기술이 민간에 전파된 것은 1970년대부터이다. 휫필드 디피와 마틴 헬먼은 1976년 디피-헬먼 공개키 암호화 기술이 담긴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을 계기로 암호화 기술에 대한 민간의 관심이 부쩍 증가했다. 1년 뒤 MIT 컴퓨터 공학자 론 리베스트, 아디 셰미르, 레너드 아델만은 자신들의 이름을 딴 RSA 데이터 시큐리티를 설립하고 공개키 암호화 기술을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참고로 1970년대 발전한 암호화 기술은 훗날 비트코인의 소유권을 구분하는데 활용되는 공개키와 개인키 시스템의 기반이 된다.


1980년대 들어 암호화 기술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암호화 기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이비드 차움이 암호화 기술 발전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1982년 국제 암호연구학회를 설립하고 프라이버시 및 암호화 기술에 대해 활발히 토론하며 의견을 공유했다. 1990년 데이비드 차움은 디지 캐시라는 회사를 창업하고 최초의 암호화폐 이캐시를 출시했다. 은닉 서명, 이중 지불 방지 등이 도입된 이캐쉬는 거래 당사자의 익명성을 보장함과 동시에 거래의 완결성까지 수행하는 혁신적인 기술이었다. 그러나 디지 캐시는 시대를 너무 앞서갔고 수익화에 난항을 겪으며 결국 파산하고 만다.


디지 캐시는 비록 실패했지만 데이비드 차움의 시도는 분명 의미가 있었다. 프라이버시와 암호화 기술에 관한 데이비드 차움의 사상은 영감의 씨앗이 되어 사이퍼 펑크를 낳는데 일조했기 때문이다. 사이퍼 펑크는 암호 (Cipher)와 저항 (punk)의 합성어로, 거대 권력으로부터 저항해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암호화 기술을 활용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사이퍼 펑크는 1990년대 들어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대중화되면서 등장했다. 비트코인이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는 역사의 시곗바늘을 이때로 돌려야 한다.


1992년 에릭 휴즈, 티모시 메이, 존 길모어 등이 모여 사이퍼 펑크 모임을 결성했다. 사이퍼 펑크의 모토는 ‘약자에게 프라이버시를, 강자에게는 투명성을’이다.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거대 권력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사이퍼 펑크는 점점 세를 불리게 되었다. 에릭 휴즈는 ‘사이퍼 펑크 선언’을 발표했는데 프라이버시에 대한 사이퍼 펑크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프라이버시는 전자시대의 공개된 사회를 위해 필요하다. 프라이버시는 비밀이 아니다. 프라이버시는 온 세상이 알기를 원치 않는 것이고, 비밀은 어떤 누구도 알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다. 프라이버시는 세상에 자신을 선택적으로 노출하는 힘이다.”


사이퍼 펑크는 한때 군사 정보기관의 전유물이었던 암호화 기술이 개인의 프라이버시 보장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1990년대 이후 사이퍼 펑크가 개발한 암호화 기술은 오늘날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기술의 주요 자양분이 되었다. 예를 들어, 1997년 애덤 백은 스팸이나 디도스 공격으로부터 메일 시스템을 보호하는 ‘해시 캐시’라는 작업 증명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애덤 백이 개발한 알고리즘은 훗날 비트코인의 채굴 알고리즘이 되었고, 애덤 백은 블록 스트림이라는 회사를 창업해 비트코인 네트워크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998년 닉 재보는 ‘비트 골드’라 불리는 분산형 디지털 화폐 메커니즘을 설계했다. 비트 골드는 금본위제를 참고해 만든 것으로 인플레이션을 억제한 화폐 시스템이다. 네트워크 참여자들은 컴퓨터를 이용해 암호화된 문제를 풀고 비트 골드를 얻을 수 있으며 문제의 난이도는 갈수록 높아진다. 비록 비트 골드는 출시되지 못했지만 그 구조가 비트코인과 대단히 유사하기 때문에 비트코인의 모태로 불린다. 참고로 닉 재보는 ‘스마트 컨트랙트 (코드에 의해 조건이 충족될 시 자동으로 계약을 이행)’라는 개념을 처음 선보인 것으로 유명한데 이는 오늘날 이더리움의 핵심 원리 중 하나이다.


북저널리즘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7월에 책이 출간됩니다. 저작권 문제로 인해 내용을 일부 삭제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bookjournalis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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