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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Apr 19. 2019

좋은 놈, 나쁜 놈, 운 좋은 놈

#3-3 비트코인, 괴물의 탄생

창조적 파괴를 야기하는 신기술이 등장하면 견고한 질서에 균열이 생긴다. 격동의 시기에는 다양한 군상의 인간들이 등장하기 마련인데, 좋은 놈, 나쁜 놈, 운 좋은 놈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저마다 상이한 수준의 도덕과 탐욕을 지닌 인간들은 변화를 한껏 즐긴다. 운명의 여신은 이처럼 불확실성에 자신을 노출을 시킨 사람들에게 때때로 엄청난 행운을 선물한다. 그 결과, 변화의 흐름을 잘 탄 소수의 영민한 사람들은 단기간에 벼락부자가 된다. 20세기 중반 이후 여태까지 이러한 기회는 총 네 번 있었다. 바로 1970년대 PC, 1990년대 인터넷, 2000년대 모바일, 2010년대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이다.  


비트코인이 탄생한 후, 블록체인 산업에서도 어김없이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우선, 좋은 놈이다. 블록체인 산업을 진심으로 발전시키고 싶어 하는 훌륭한 개발자 및 수준 높은 도덕성을 겸비한 기업가는 좋은 놈에 속한다. 이들이 흘리는 땀방울이 없다면 블록체인 산업은 결코 진보하지 못할 것이다. 내 생각에 특히 개발자는 여타 블록체인 산업 종사자 대비 순진한 면이 있다. 대체로 인문학적 소양이 없고 현실감각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개발자들은 순수한 열정을 바쳐 기술의 발전에 기여한다. 물론 자신의 권한을 오용하거나 사리사욕만 채우는 개발자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더리움을 만든 비탈릭 부테린이 블록체인 산업 내 대표적인 좋은 놈이라고 생각한다. 비탈릭 부테린은 17세의 어린 나이에 비트코인을 처음 접한 이후 블로그에 이와 관련된 내용을 올리기 시작했다. 비탈릭 부테린의 블로그를 발견한 미하이 앨리시는 그에게 잡지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그들은 의기투합해 ‘비트코인 매거진’을 만든다. 이 잡지는 전 세계 비트코인 마니아들의 참여로 운영됐는데 좋은 기사를 기고한 사람에게 보상으로 비트코인을 주는 방식이었다. 대학 생활에 별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하던 비탈릭 부테린은 비트코인에 더욱 흥미를 느끼고 자퇴를 결심한다.


컴퓨터 기술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던 비탈릭 부테린은 순탄히 비트코인 개발팀에 합류한다. 그러나 지불, 결제 기능에 집중하던 주류 개발자들과는 달리, 비탈릭 부테린은 비트코인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길 원했고 이들은 결국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다. 당시 비트코인 코어 개발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던 나이 많은 개발자들이 풋내기 20대 청년의 말에 귀 기울이기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결국 독립을 결정한 비탈릭 부테린은 2013년 11월 이더리움 백서를 공개한다. 비트코인이 디지털 머니를 표방한다면 이더리움은 범용성이 높은 월드 컴퓨터 기능을 하는 플랫폼을 지향한다. 


이더리움이 앞세운 스마트 계약, 디앱 등의 특징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개념이었다. 2014년 6월 이더리움 재단을 설립한 비탈릭 부테린은 여세를 몰아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고, 3만 1,591개의 비트코인 (당시 시세 약 1,800만 달러, 한화 200억)을 모집하는 데 성공했다. 확보한 자금을 바탕으로 기술 개발에 매진한 비탈릭 부테린은 2015년 마침내 이더리움을 공개했다. 이더리움의 ERC-20 프로토콜 표준화 덕분에 누구나 손쉽게 토큰을 발행할 수 있게 되면서 수많은 토큰들이 생겨났다. 


블록체인 산업의 새로운 지평을 연 비탈릭 부테린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오피니언 리더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더리움은 이오스, 트론 등 경쟁 프로토콜이 출시됨에 따라 점유율을 뺏기고 있는 상황이다. 향후 이더리움이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있을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마크 앤드리슨이 창업한 넷스케이프가 웹브라우저의 시대를 열고 사라진 것처럼, 어쩌면 이더리움도 훗날 사멸할지 모른다. 그러나 비탈릭 부테린이 뿌린 씨앗이 블록체인 산업 발전의 밑거름이 될 것임은 자명해 보인다.


좋은 놈만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나쁜 놈은 어디에나 항상 있는 법이다.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견해인데, 유독 블록체인 산업에는 좋은 놈 보다 나쁜 놈이 더 많은 것 같다. 본업보다 외부 마케팅에 주력하거나 계획대로 성과를 내지 못한 사업가는 논외로 치더라도 (사실 사기꾼과 사업가는 종이 한 장 차이다), 부당한 방법으로 이득을 취하거나 악의적으로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나쁜 놈들이 바퀴벌레처럼 도처에 깔려있다. 나쁜 놈들이 물의를 일으키고 미디어가 이를 부각하기 시작하면서 블록체인 산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평판은 추락한 바 있다.


여러 유형의 나쁜 놈 중, 타인의 재산을 강탈하는 해커는 가장 악질이다. 사실 디지털 자산을 관리하는 거래소가 해커들의 먹잇감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마운트 곡스 해킹 사건이 대표적이다. 마운트 곡스는 한 때 전 세계 비트코인 거래량의 과반 이상을 차지했을 정도로 규모가 큰 거래소였다. 그러나 2014년 마운트 곡스는 85만 비트코인을 (당시 시세 기준 5,000억 원 이상) 해킹당하며 파산했다. 이 사건으로 비트코인 가격은 폭락했고 블록체인 산업 종사자들은 보안의 중요성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 참고로 거래소 해킹은 여전히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허술한 보안으로 고객의 신뢰를 잃은 거래소가 금융 기관을 표방하는 경우를 보면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불법 다크 웹을 운영하고 이용하는 범죄자도 해커와 비슷한 부류이다. 비트코인과 관련, 주목해야 할 다크 웹은 실크로드이다. 마약을 주로 취급하던 실크로드의 특징은 비트코인으로만 결제를 받는다는 점이었다. 비트코인의 익명성 덕분에 (범죄자들의 바람과는 달리 현재 비트코인의 익명성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실크로드는 회원 수가 100만 명에 육박하고 거래액이 2,000억 원이 넘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다. 2013 FBI는 실크로드의 서버를 압수하고 설립자 로스 윌리엄 울브리히트을 체포하는데 성공했다. 로스 윌리엄 울브리히트는 사용자의 프라이버시와 익명성을 위해 실크로드를 만들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미국 법원은 그에게 종신형이라는 무거운 벌을 내렸다. 역설적이게도 실크로드 사건을 계기로 비트코인은 더욱 유명세를 탔고 결제 수단으로써의 잠재력을 인정받게 되었다.


한편, 시기적절하게 변화의 파도에 올라탄 운 좋은 놈은 단시간에 엄청난 부를 쌓아 올린다. 이들이 거둔 성취에는 혜안, 실행력, 배짱, 위험관리 등 다양한 조건들이 적절히 혼합되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운이다. 그렇다면 블록체인 생태계 내에서 가장 운 좋게 성공한 주체는 누구일까? 당연 채굴 기업과 거래소이다. 시장을 선점한 채굴 기업과 거래소는 돈과 디지털 자산의 흐름을 장악했고 상승장에서 막대한 수익을 냈다. 채굴 기업과 거래소는 이렇게 축적한 자본을 바탕으로 활발히 사업을 전개하며 블록체인 생태계 내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비트메인과 코인베이스는 주요한 채굴 기업 및 거래소이기에 언급할 필요가 있다. 먼저 비트메인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살펴보자. 중국에서 사모펀드를 다니던 우지한은 2011년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처음 비트코인을 접했다. 정부의 간섭에서 벗어난 디지털 머니 비트코인에 감명을 받은 우지한은 비트코인 백서를 중국어로 번역해 유명세를 떨쳤다. 비트코인의 미래를 낙관한 그는 과감하게 전 재산을 털어 비트코인을 구매했는데 2011년 당시 비트코인의 가격은 1달러였다. 2년 뒤 비트코인의 가격은 900달러까지 치솟았고 충분한 자본을 확보한 우지한은 아예 채굴 사업을 하기로 결심한다. 


채굴기를 만들 기술이 없었던 우지한은 반도체 디자이너 잔커탄을 설득해 2013년 비트메인을 공동 창업한다. 비트메인은 전력 효율을 극대화 한 앤트 마이너 채굴기를 출시해 승승장구하는 듯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2014년 세계 최대 거래소 마운트곡스가 해킹당하고 비트코인 가격이 급락하면서 비트메인은 위기를 맞는다. 채산성이 악화되고 채굴기 판매량도 급감하면서 많은 채굴 기업들이 도산했다. 그러나 우지한은 하락장 속에서도 비트코인에 대한 신념이 있었고 꿋꿋이 버텼다. 2015년 들어 시장이 다시 반등하자 우지한은 과감히 투자했고 비트메인은 채굴 산업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


채굴 산업을 평정한 우지한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본인과 죽이 맞는 세력을 규합해 비트코인 하드 포크라는 과감한 시도를 감행했다. 비트코인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확장성 해결 문제를 둘러싸고 비트코인 코어 개발자들과 채굴 기업들 간의 이해관계가 엇갈린 것이 비트코인 하드 포크의 발단이었다. 비트코인 코어 개발자들은 오프 체인 솔루션을 (블록체인 자체를 건드리지 않고 외부에서 다양한 기술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문제 해결, 라이트닝 네트워크가 대표적) 통해 확장성 문제를 극복하려 한 반면, 채굴 기업들은 온체인 솔루션 (블록 사이즈를 늘리는 방식으로 블록체인 내부에서 해결책 모색)을 지지했는데, 이 둘 사이의 의견이 좁혀지지 않은 것이다. 


결국 2017년 8월 비트코인이 성공적으로 하드포크 되면서 우지한은 비트코인 블록 사이즈를 늘린 비트코인 캐시 진영의 맹주로 자리 잡았다. 거래 처리 속도가 빠르고, 수수료도 저렴한 비트코인 캐시는 비트코인 대비 결제 수단으로써의 장점이 있다. 즉,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이라면 비트코인 캐시는 ‘디지털 현금’인 셈이다. 비트코인 캐시의 선전으로 우지한은 블록체인 생태계의 제왕으로 군림하는 듯했지만, 2018년 들어 시장이 약세장으로 돌아선 이후 비트메인 실적이 악화되고 야심 차게 추진했던 비트메인 IPO마저 실패하면서 현재 주춤한 모습이다. 그러나 우지한이 비트코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중국에 비트메인이 있다면 미국에는 코인베이스라는 걸출한 기업이 있다. 코인베이스는 2012년 에어비엔비 출신 브라이언 암스트롱과 골드만삭스 출신 프레드 에어섬이 의기투합해서 설립한 거래소이다. 2009년 사토시 나카모토의 백서를 우연히 본 브라이언 암스트롱은 비트코인에 매료됐다. 그러던 중,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던 브라이언 암스트롱은 인플레이션 때문에 시시각각 가격이 변하는 식당 메뉴판을 보고 비트코인의 잠재력에 대해 확신하게 되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사용할 수 있도록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해야겠다고 결심한 그는 비트코인 간편 구매 및 보관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코인베이스의 시초이다.


북저널리즘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7월에 책이 출간됩니다. 저작권 문제로 인해 내용을 일부 삭제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bookjournalis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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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EJ4oskz8mqc&t=17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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