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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May 06. 2019

화폐의 역사

#4-1 비트코인 본위제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의 지배자가 된 것은 가상의 이야기를 통해 결집한 공동체의 힘 덕분이라고 말한다. 국가, 민족, 종교 등은 실체는 없지만 인간 사회를 형성하는 주요한 가상의 이야기이다. 사실 우리는 집단이 만들어 낸 상상의 질서 속에서 살고 있는 셈인데, 만약 가상의 이야기들이 없다면 인간 사회는 심각한 아노미 상태에 빠질 것이다. 그런데 유발 하라리는 돈을 만들어 낸 사람들이야말로 노벨 문학상 자격을 수상할 자격이 있는 최고의 이야기꾼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돈은 전 세계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믿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돈은 무엇인가? 돈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의 가치를 나타내며, 상품의 교환을 매개하고, 재산 축적의 대상으로도 사용하는 물건”으로 이는 곧 화폐이다. 화폐에는 크게 세 가지 기능 - 1) 교환의 매개; 2) 가치의 측정; 3) 가치의 저장 - 이 있는데 화폐의 형태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조개껍데기, 돌 덩어리, 곡식, 가축, 비단, 향신료, 금속, 은행의 직인이 찍힌 종이, 전자 데이터 등으로 진화해왔다. 변하지 않는 화폐의 본질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화폐가 신뢰에 근간을 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상호 간 신뢰가 형성된다면 형태와는 무관하게 그 어떤 것도 화폐가 될 수 있다. 


집단적 상상력과 신뢰에 기반한 화폐의 가치를 믿는 능력, 이것이 바로 다른 종들과는 달리 인간이 수준 높은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이유이다. 예를 들어, 원숭이에게 금괴 한 덩어리와 바나나 한 개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원숭이는 당연히 바나나를 선택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들은 당연히 금괴를 선택할 것이다. (며칠을 굶은 부자가 몹시 배가 고파 바나나를 선택하는 특수한 경우는 논외로 하자)  왜냐하면 인간은 노란색 금속 덩어리가 바나나보다 훨씬 더 높은 경제적 가치가 있다고 믿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바나나를 먹고 버리는 원숭이와는 달리, 인간은 금을 통해 자본 축적, 대출, 파생 등 다양한 경제활동을 하며 문명을 구축할 수 있다. 이 사례를 비트코인에도 그대로 적용해볼 수 있는데, 1 비트코인이 담긴 하드 월렛과 (2019년 5월 6일 기준, 1 비트코인 가격은 한화 약 670만원) 한 개의 바나나 중에서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인간은 당연히 비트코인을 선택할 것이다. 물론 원숭이의 뇌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거나 몹시 굶주린 억만장자는 바나나를 선택하겠지만. 


인류가 처음부터 화폐를 발명해냈던 것은 아니다. 사실 인류는 오랜 시기에 걸쳐 자급자족을 하거나 물물교환을 하는 방식으로 생활했기 때문에 화폐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렵채집 시대에서 농경 시대로 전환한 이후, 잉여 생산물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도시가 생기면서 화폐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물물교환만으로는 늘어나는 교역과 상업 활동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초기 화폐의 형태는 상품 화폐였는데 주로 가축과 곡식 등이 쓰였다. 자본을 뜻하는 영어 ‘capital’이 소의 머리를 뜻하는 라틴어 ‘caput’에서 유래한 점을 고려하면, 과거에는 소가 중요한 화폐로 기능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수메르인들이 사용하던 동전인 '세겔 (shekel)'의 어원은 곡식의 종류인 '밀 다발 (sh kel)'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상품화폐는 보관과 운반이 용이하지 않다. 가축과 곡식은 금세 부패하고 후추와 같은 향신료는 물에 용해된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해결한 것이 금속화폐이다. 금, 은, 동으로 주조한 동전은 쉽게 변하지 않고 운반이 용이했기 때문에 상업활동을 촉진시켰다. 기원전에 등장한 진나라의 반량전, 리디아의 일렉트럼은 동서양 금속화폐의 시초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테네의 드라크마 은화는 최초의 기축통화로서 아테네가 지중해 경제권을 장악하는데 기여했다. 드라크마 은화가 통용되자 아네테의 항구 피레우스에는 무역상과 환전상이 북새통을 이뤘고, 지중해 무역과 상권의 중심축이 경쟁국으로부터 아테네로 이동했다. 이는 화폐가 국가의 패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중세시대에는 금속화폐 보다 가벼운 지폐가 등장했다. 당나라 시대에는 무역이 번성하고 화폐 유통도 활발했는데 이때 ‘비전’이라는 어음이 사용되었다. 비전의 어원은 종이로 만들어 날아다닐 정도로 가벼운 돈이라는 뜻이다. 이후 10세기에 등장한 송나라 시대의 화폐로 쓰인 지폐 교자는 비전에서 발전한 것이다. 서양에서는 17세기 스웨덴에서 지폐가 탄생했다. 스웨덴 정부는 전쟁 자금 조달로 은화가 부족해지자 동화를 유통시켰는데 동화가 너무 무거워 제대로 쓸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스톡흘룸 은행은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아 동본위제 지폐를 발행했다. 참고로 스톡홀름 은행은 훗날 국유화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중앙은행의 효시이다.


일반적으로 화폐가 상품에서 금속, 지폐 형태로 진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변화가 언제나 일관된 양상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상황에 따라 화폐는 정부의 날인이 찍힌 지폐에서 동전으로, 그리고 상품으로 변모하곤 했는데 결국 화폐 경제라는 톱니바퀴를 굴러가게 만드는 동력은 상호 신뢰이다. 가령, 20세기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된 사람들에게 화폐는 담배였다. 심지어 비흡연자들까지도 담배를 화폐로 받아들일 정도였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중 한 사람은 수용소에서 화폐로 기능한 담배를 이렇게 묘사했다.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화폐가 있었고 누구도 담배의 가치를 의심하지 않았다. 모든 물품의 가격은 담배로 표기되었다. 평상시, 즉 가스실에 입장할 후보들이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기간에는 빵 한 덩이는 담배 12 개비 값이었다. 3백 그램짜리 마가린 덩어리는 30개비, 시계는 80~2백 개비, 알코올 1리터는 4백 개비였다.”


근대에 접어들어 제국주의의 팽창과 더불어 화폐의 역사는 변곡점을 맞게 된다. 그것은 바로 화폐가 전 지구적 보편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유럽의 상인들과 정복자들은 금의 복음을 지구 구석구석에 전파시키는 데 성공했다. 16세기 아즈텍 시민들은 에스파냐의 정복자들이 금에 환장하는 이유를 처음에는 도통 이해하지 못했지만, 뒤늦게야 이것이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지닌 재화라는 점을 학습했다. (당시 아즈텍에서 금은 장신구의 재료로만 쓰이는 소비재에 가까웠다) 결국 근대 말에 전 세계는 단일한 화폐 권역이 되었다. 초기에는 은과 금이 함께 공존했지만 1935 중국이 은본위제를 포기함으로써 금본위제만 살아남았고, 금은 세계 화폐의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각각 다른 언어, 미신, 종교, 정치, 사회 제도를 믿는 사람들이 이제 다 같이 금을 신뢰하게 된 것이다. 이는 훗날 지구 전체가 단일 경제권으로 통합되는 기초를 닦았다.


북저널리즘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7월에 책이 출간됩니다. 저작권 문제로 인해 내용을 일부 삭제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bookjournalis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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