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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May 09. 2019

달러, 신뢰할 수 없는 게임

#4-3 비트코인 본위제

금융재벌 네이선 로스차일드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어떤 꼭두각시가 권력을 획득하는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영국의 화폐를 지배하는 자가 대영제국을 지배하는 것이고 나는 영국의 화폐를 지배한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금융 네트워크를 활용해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통제하는지 (음모론자들은 로스차일드를 악귀로 묘사하며 이들이 세계를 조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화폐를 지배하는 자가 국가를 지배한다는 네이선 로스차일드의 말은 필경 틀림없는 사실이다. 특히 글로벌 통화 시스템에서 쓰이는 기축통화를 지배하는 자는 곧 세계를 지배하는 셈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미국 달러를 발행하는 연준과 이와 밀접한 유착관계를 맺고 있는 월가의 금융기관들인 것처럼 보인다.


제국의 흥망성쇠에 따라 기축통화의 지위 역시 끊임없이 변화한다. 예를 들어,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은화 드라크마가 최초의 기축통화로 쓰인 이후 로마의 금화 아우레우스와 은화 데나리우스가 기축통화의 지위를 넘겨받았다. 그러나 그리스와 로마는 인플레이션의 습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화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짐으로써 몰락했다. 이후 비잔틴 제국의 금화 솔리더스가 광범위하게 쓰였으며, 13세기 접어들어서는 이탈리아의 금화가 기축통화로 쓰였다. 17세기에는 네덜란드의 길더가, 18세기에는 영국 파운드가 기축통화의 역할을 했다.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로 자리매김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미국 달러가 여타 기축통화와 다른 점은 금이나 은으로 태환 되지 않는 종이돈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초록색 종이의 가치를 보증하는 어떠한 실물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과거 제국들의 화폐는 이름만 바뀌었을 뿐, 모두 금이나 은과 같은 실물에 가치가 연동된 것이었다. 과거에 기축통화를 보유한 제국들은 제한적으로 화폐를 통제할 수 있었던 반면, 미국은 잉크와 종이만 있으면 무제한으로 달러를 찍어낼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뚝딱 경제적 가치를 지닌 재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연금술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실현된 것이다. 그것도 전 지구를 대상으로 말이다. 미국은 어떻게 이토록 기형적인 글로벌 통화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킬 수 있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금본위제의 역사와 함께 19~20세기 세계 패권 변화에 대해 알아야 한다.


먼저 금본위제의 역사를 알아보자. 금본위제는 크게 금화 금본위제와 금핵 금본위제로 분류할 수 있다. 금화 금본위제는 금화 자체가 화폐로 유통되는 것이고 금해 금본위제는 금을 태환의 대상으로 삼아 화폐를 발행하는 것이다. 참고로 이 글에서 금본위제는 금핵 금본위제를 의미한다. 글로벌 통화 시스템에서 금본위제가 본격적으로 출현한 것은 영국 때문이다. 19세기 초 영국은 금본위제를 공식적으로 천명함으로써 금은 복본위제 혹은 은본위제에서 금본위제로 통화 시스템을 전환한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당시 산업혁명으로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던 영국이 금본위제를 고수하자 영국과 교역을 하는 다른 국가들도 서서히 금본위제를 채택하기 시작했다. 1860년에서 1914년까지 파운드화가 세계 무역 결제통화의 약 60%를 차지했을 정도로 글로벌 통화 시스템에서 영국의 지배력은 독보적이었다. 


그러나 영국이 주도한 금본위제는 오래가지 못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생하면서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각 국이 금태환을 중지한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 금본위제가 부활했지만 1929년 미국이 대공황을 맞고 세계 경제가 혼란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금본위제는 다시금 위태로워졌다.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자 환율은 요동쳤고 세계 무역은 급격히 위축됐다. 불황의 그림자가 전 세계를 덮쳤고 대형 은행들마저 줄줄이 파산했다. 각국은 안전자산인 금을 확보하기 위해 앞 다투어 금 태환을 요구했고 영국의 금 보유량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결국 1931년 영국이 금 태환을 중지함으로써 전간기 금본위제의 부활은 오래가지 못하고 좌절됐다.


금본위제가 다시 부활한 것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이었다. 전쟁의 막바지인 1944년 미국 브레튼 우즈에 44개국의 대표들이 모여 국제 통화 시스템에 대해 논의했다. 이 당시 영국 대표 존 케인즈는 세계 화폐 ‘방코르’를 기축통화로 할 것을 주장한 반면, 미국 대표 해리 덱스터 화이트는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당시 세계를 주무르는 패권은 이미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간 뒤였다. 힘이 곧 정의라는 법칙을 증명하듯, 미국은 자국의 입장을 관철시켰고 각 국은 미국 달러를 기축통화로 삼는 금본위제에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 금 1온스는 35달러로 고정되었고 이때부터 달러 패권의 역사가 시작된다. 이 당시 전 세계 금의 과반수를 보유하고 있던 미국은 달러로 세계를 지배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미국 달러 기반의 금본위제 역시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1960년대 미국은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재정 상황이 나빠졌고 대규모로 달러를 찍어내기 시작했다. 미국의 금 태환 능력에 의문을 품은 국가들은 미국 달러 대신 금을 보유하려고 했다. 예를 들어, 1965년 프랑스 드골 대통령이 군함을 보내 미국에 보관했던 금을 회수해간 것은 유명한 일화다. 각 국이 연달아 금태환을 요청하자 미국은 난처해졌고 급기야 1971년 미국 대통령 닉슨은 금태환 정지를 선언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뒤통수를 친 것이다. 이로써 금본위제는 공식적으로 폐지됐고 글로벌 통화 시스템은 달러 본위제로 전환하게 되었다.


1971년 금본위제가 폐지된 이후의 상황은 20세기 초 영국이 주도하던 금본위제가 붕괴된 상황과는 무척 판이하다. 20세기 초 영국의 힘이 약해진 것과는 달리 1970년대 초 미국의 힘은 여전히 막강했다. 미국은 달러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역량을 총동원했고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대표적인 예가 페트로달러 체제의 출현이다. 1975년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결제를 달러로만 하기로 합의하자 다른 OPEC 국가들도 달러 결제에 동참했다.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에 군사적인 지원을 하는 대신 사우디아라비아가 달러의 사용처를 확대하는데 도움을 준 것이 페트로달러 체제가 등장한 배경이다. 달러가 원유 결제에 독점적으로 쓰이기 시작하자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국가들은 모두 달러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추후에 자세히 서술하겠지만 현재는 미국에서 나오는 셰일가스 때문에 페트로달러 체제는 붕괴될 위기에 처해있고 비트코인이 새로운 원유 결제수단으로 활용될 잠재력이 있다.  


미국은 달러의 지위를 위협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하면 언제나 행동에 나서 상대국 화폐를 묵사발로 만들었다. 1985년 플라자 합의가 대표적이다. 미국은 프랑스, 독일, 일본, 영국의 재무장관을 소집했고 환율 문제로 인해 무역 불균형이 심각하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특히 미국은 당시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면서 경제 대국의 지위를 넘보던 일본을 겨냥했다. 플라자 합의를 통해 미국은 일본 엔화의 가치를 대폭 평가절상하도록 강요하는 데 성공했다. 말이 합의이지 미국의 일방적인 의사결정이었고 일본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이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힘이 곧 정의라는 법칙이 다시 한번 증명된 셈이다.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20년’이라 불리는 장기 침체의 늪으로 빠져버린다. 


몇 차례 화폐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달러 패권이 공고해지면서 미국은 더욱 수월하게 세계를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환율을 비롯한 금융 시장 개방을 통해 무력을 쓰지 않고도 손쉽게 적국을 식민지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달러 체제에 반기를 든 국가들의 경제는 예외 없이 초토화되었다. 이라크, 이란, 베네수엘라, 터키 등 반미 국가들의 경제가 침체되고 환율이 요동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달러 패권에 대항한 국가들의 경제가 처참하게 망가진 것을 고려하면, 중국의 사례는 괄목할만한 수준이다. 현재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근근이 버티고 있는 양상인데 과연 중국이 팽팽한 기싸움을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미국에 적개심을 품은 국가들의 경제위기는 일반적으로 미국이 의도한 것이다. 달러는 곧 항공모함이자 스텔스 전투기요 핵무기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미국의 경제적 지배력을 공고히 하는 ‘경제 저격수’라는 조직이 아예 따로 있을 정도이다. 한때 경제 저격수로 일했던 내부 고발자인 존 퍼킨스는 <경제 저격수의 고백>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경제 저격수란 전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을 속여서 수조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돈을 털어 내고, 그 대가로 고액 연봉을 받는 전문가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은 세계은행과 미국 국제 개발처, 또는 다른 해외 ‘원조’ 기관들로부터 돈을 받아 내어 거대 기업의 금고나 전 세계의 자연 자원을 손아귀에 쥔 몇몇 부유한 가문의 주머니 속으로 그 돈이 흘러가도록 조종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회계 부정, 선거조작, 뇌물, 협박을 통한 갈취, 섹스, 살인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한편, 달러의 역사도 오늘날 달러 패권을 이해하기 위해서 알아둘 필요가 있다. 달러가 처음부터 초록색 종이였던 것은 아니다. 18세기에 등장한 최초의 달러는 은화였다. 당시 미국에서는 스페인 은화 ‘다레라’가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었는데 이것이 달러의 어원이다. 초창기 미국의 화폐 경제는 엉망이었다. 잦은 전쟁 및 공황과 더불어 중앙은행의 설립과 폐쇄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미국 내 화폐에 대한 신뢰가 뿌리내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심지어 19세기에는 민간은행들이 자유롭게 화폐를 발행하는 자유 은행 시대가 도래했는데 이 당시 엄청난 무질서와 혼란이 연출됐다. ‘야생고양이 은행들 (Wildcats banks)’이라 불리는 은행들이 발행한 화폐가 무가치한 휴지조각으로 전락하고 위조지폐가 범람하는 사태가 연출됐다. 이는 마치 2,000종이 넘는 코인이 범람하는 오늘날 블록체인 업계를 보는듯하다.  


20 세기 들어 미국 은행가들 사이에서 중앙은행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됐다. 지독한 경제 부침을 겪은 이들은 절실히 화폐에 대한 신뢰의 회복을 원했다. 그 결과, 1910년 J.P. 모건과 록펠러의 별장이 있는 곳에서 재벌들이 비밀리에 모여 회의를 했고 연방준비은행법 초안을 마련됐다. 이들은 중앙은행이라는 명칭 대신 연방준비 시스템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합의했고, 정부의 개입을 용납하지 않는 순수 민간 은행 연합체를 구상했다. 결국 1913년 미국 의회는 연방준비법을 통과시켰고 미국은 연방준비제도 이사회를 비롯해 산하에 12개의 연방은행을 거느리는 중앙은행 체제를 확립했다. 특기할만한 것은 미국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연준의 주주들이 민간자본이고 이 중 상당수는 유대계 금융자본이라는 점이다.

 

북저널리즘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7월에 책이 출간됩니다. 저작권 문제로 인해 내용을 일부 삭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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