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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May 18. 2019

신뢰 도약을 앞둔 비트코인

#4-7 비트코인 본위제

2007년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발표할 당시만 해도, 스마트폰이 현금과 카드를 대체할 결제 수단이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런데 어떻게 10년도 안 지나서 이런 일이 가능해진 것일까? 이는 사용자들이 스마트폰으로 결제한다는 개념과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신뢰란 무엇인가? 신뢰는 곧 기대치를 충족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대상에 대한 기대치가 충족된 것을 확인한 이후에야 비로소 그것을 신뢰한다. 물론 신뢰는 하루아침에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완성하는데 상당한 인내심을 요한다. 그러나 대상을 한 번 신뢰하기 시작하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확장된다. 기존에는 낯설고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지극히 평범한 것이 된다.


<신뢰 이동>의 작가 레이첼 보츠먼이 제시한 ‘신뢰 도약’ 은 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신뢰 도약은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에 발생한다. 패러다임을 바꿀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면 이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를 불편하게 여기며 부정한다. 그러나 새로운 개념에 대한 담론이 활성화되고 지지자들이 생기면서 서서히 의심의 먹구름이 걷히기 시작한다. 새로운 개념에 대한 신뢰가 강화되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은 대개 점진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급작스럽게 발생한다. 따라서 신뢰 도약은 패러다임이 바뀌는 현상을 설명하는데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다.


인류 역사에서 벌어진 신뢰 도약의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비교적 최근의 예로는, 처음으로 모바일에 신용카드 정보를 입력할 때, 처음으로 에어비엔비를 통해 모르는 사람의 집에서 묶을 때, 처음으로 우버를 사용해 모르는 사람의 자동차에 탑승할 때, 처음으로 온라인 데이팅 앱으로 만난 사람과 오프라인에서 만나 연애할 때, 처음으로 비트코인을 해외에 있는 사람에게 전송해볼 때 등이 있다. 신뢰 도약의 사례를 보다 과거로 확장해보면, 처음으로 마차꾼이 자동차를 탈 때, 처음으로 이자를 주고받는 은행이 생겼을 때, 처음으로 전화를 사용해 먼 거리에 있는 상대방과 대화를 나눌 때 등이 있다.   


신뢰 도약의 사례를 화폐로 한정해도 실로 수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물물 교환에서 상품화폐, 금속화폐, 지폐, 명목화폐, 신용카드, 그리고 위에서 말한 모바일 페이까지. 화폐의 조건인 지불 수단에 대해서도 실로 엄청난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미래의 화폐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일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화폐에 대한 신뢰 도약은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것이다. 미래에 대기업과 중앙은행이 발행한 디지털 화폐들이 등장하면, 비트코인이 국제 가치 척도 및 태환 기능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앞서 말한 바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 비트코인은 신뢰 도약 단계를 거쳐야 할 것이다.


강조하는 것은, 패러다임이 변하는 변곡점에 위치한 사람들은 언제나 낯선 개념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가령, 처음 온라인 쇼핑을 했을 때를 기억하는가?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인터넷으로 물건을 산다는 것은 상당히 생소한 개념이었다. 어떻게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거래 상대방을 신뢰할 수 있을까? 만약 내가 돈을 지불했는데 상대방이 약속한 물건을 배송하지 않으면 어떻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단 말인가? 온라인 쇼핑에 대한 우려가 지나친 기우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밤 11시에 온라인으로 신선식품을 주문하면 다음날 아침 7시에 집 앞으로 배달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레이첼 보츠먼은 <신뢰 이동>에서 인류의 역사에서 신뢰가 발전한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신뢰의 측면에서 인간의 역사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지역적 신뢰의 시대로, 모두가 서로를 아는 소규모 지역 공동체에서 살던 시대다. 두 번째는 제도적 신뢰의 시대로, 신뢰가 계약과 법정과 상표 형태로 작동해서 지역 공동체 안의 교환을 벗어나 조직화된 산업사회로 발전하기 위한 토대가 구축된 일종의 중개인 신뢰의 시대다. 세 번째는 분산적 신뢰의 시대로, 우리는 아직 그 시대의 초기 단계를 지나고 있는 데 불과하다. 이렇듯 신뢰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이전 양식이 새로운 양식으로 완전히 대체되는 것은 아니다”


불가변성의 특성을 지닌 분산 장부 블록체인은 분산적 신뢰의 시대를 가속화할 촉매제이다. 특히 가치의 인터넷이라 불리는 블록체인은 금융을 송두리째 바꿀 잠재력이 있다. 우리는 왜 수많은 금융 중개인들에게 의존하며 그토록 많은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가? 왜 필리핀 해외 노동자들은 본국으로 돈을 송금할 때 막대한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는가? 왜 소상공인들은 카드사에 수수료를 물고 정산도 늦게 받아야 하는가? 왜 우리는 은행이 계좌를 동결한다고 으름장을 놓아도 이 같은 횡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가?  신뢰의 문제만 해결된다면 이 모든 부조리가 극복될 수 있지 않을까? 비트코인은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주었다. 이제 남은 단계는 신뢰를 강화하고 도약하는 일이다. 물론 비트코인이 모든 금융 중개인을 대체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금융 중개인들의 역학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잠재력이 있다는 것이다.


비트코인은 신뢰의 도약을 앞두고 있다. 비트코인에 대한 신뢰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영세한 규모의 스타트업이나 이상주의자들이 아니다. 바로 자본과 권력이 있는 다국적 기업이다. 이미 영민한 다국적 기업들은 비트코인의 잠재력과 더불어 엄청난 상업화의 기회를 간파했다. 이들은 때로는 공공연하게, 때로는 은밀하게 비트코인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적당한 때가 되면 다국적 기업들은 본색을 드러내고 비트코인 관련 시장을 독식하려 들 것이다.


다국적 기업들이 관련 서비스를 제공해 비트코인이 신뢰 도약을 이뤄낸다면, 일반 사용자들은 비트코인에 대한 기술적 이해 없이도 이를 취급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것이다. 마치 우리가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TCP/IP의 작동원리 및 알고리즘의 구조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듯이 말이다. 인터넷 이후 약 20년 만에 찾아온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다국적 기업들은 숨을 고르며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다음 장에서는 비트코인 관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을 살펴볼 것이다.


북저널리즘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7월에 책이 출간됩니다. 저작권 문제로 인해 내용을 일부 삭제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bookjournalis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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