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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May 15. 2019

비트코인 발전 시나리오 (자산에서 화폐로)

#4-6 비트코인 본위제

내가 생각하는 비트코인 발전 시나리오는 크게 전반기와 후반기, 보다 구체적으로는 총 여섯 가지 단계로 분류할 수 있다. 우선 전반기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컴퓨터를 잘 다루는 괴짜 및 범죄자, 그리고 소수의 영민한 집단이 비트코인을 취급하는 단계. 비트코인이 탄생한 2009년부터 2017년 버블 전까지가 이에 해당한다. 두 번째, 버블이 발생하고 비트코인이 상업성을 증명하면서 돈 냄새를 맡은 기업들이 관심을 가지는 단계. 단, 규제의 공백 때문에 비트코인을 취급하는 기업들의 도덕적 해이는 심각한 수준이고 이에 따라 각종 사건 사고가 발생한다. 2017년 이후 현재까지의 상황이다. 세 번째, 비트코인 시장에 대한 신뢰가 서서히 회복되면서 제도권 금융 시스템에 편입되는 단계. 정부의 규제가 강화되고 제도화가 이뤄지면서 협잡꾼이 퇴출된다. 금융 기관들은 비트코인을 적법한 투자 자산으로 취급하며 투자 포트폴리오에 비트코인을 포함시킨다. 지금부터 향후 5년 안에 서구권을 중심으로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전반기까지 비트코인은 주로 투기용 자산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비트코인 시장이 성숙해지고 변동성이 줄어들면서 후반기부터는 비트코인이 화폐의 역할을 하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비트코인 발전 후반기는 다음과 같다. 네 번째, 비트코인이 인터넷 기축통화 역할을 하는 단계. 비트코인은 모든 유형의 디지털 화폐들의 국제 가치 척도 및 태환 역할을 한다. 디지털 세계에서 비트코인 본위제가 비로소 실현된다. 인터넷 기업과 금융 기업이 협력해 비트코인을 활용한 사업을 활발히 전개하고, 인터넷 기업이 소매 금융을 잠식한다. 이때부터 각 국 중앙은행들과 IMF는 비트코인을 보유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기 시작한다. 다섯 번째, 금융위기로 인해 글로벌 통화 시스템이 붕괴하고 각 국 정상들이 만나 대책을 논의한다. 각 국이 보유한 금과 비트코인의 수준에 따라 협상 테이블에서의 발언권이 달라진다. 패권국의 주도하에 세계 화폐가 등장하고 비트코인이 새로운 글로벌 통화 시스템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중앙은행과 IMF는 비트코인을 준비통화에 편입시킨다. 이때는 금과 비트코인이 공존하는 시기이다. 여섯 번째,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이 가속화됨에 따라 디지털 금인 비트코인이 금의 역할을 서서히 대체한다. 금은 비트코인과의 경쟁에 밀려 재무적 기능을 상실하고, 은처럼 산업용 목적이나 귀금속으로만 쓰이게 된다.


비트코인 발전 전반기는 과거와 현재이므로 논쟁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지금 (2019년 5월 기준) 비트코인 발전의 두 번째 단계에서 세 번째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관건은 비트코인이 투기성 자산에서 화폐로 도약하는 후반기이다. 비트코인이 진정한 화폐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신뢰가 강화될 필요가 있다. 비트코인이 충분한 신뢰를 쌓는 데 성공한다면 미래의 후손들은 당연하게 비트코인을 화폐로 인정하게 될 것이다. (이때가 되면 비트코인 및 알트코인의 명칭을 디지털 자산이 아닌 디지털 화폐 혹은 암호화폐로 표기하는 것이 세계적 표준이 될 것이다)


비트코인의 미래에 대해서는 사실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미래를 상상해 볼 필요가 있다. 20년 후의 미래를 과대평가하는 것은 과소평가하는 것보다 유리하다는 것이 역사가 주는 교훈이기 때문이다. 나는 향후 미래 비트코인 발전 시나리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망한다.


우선, 비트코인이 인터넷 기축통화가 되는 네 번째 단계이다. 앞으로 디지털 전환이 (Digital Transformation) 심화됨에 따라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유형의 디지털 화폐를 접하게 될 것이다. 현존하는 대부분의 무가치한 쓰레기 코인이 아니라 대기업과 정부가 발행한 실생활에서 쓰일 수 있는 디지털 화폐 말이다. 디지털 화폐의 형태는 스테이블 코인이다. 시시각각 가격이 변동하는 디지털 자산 대비 상대적으로 가격 변동성이 낮은 것이 스테이블 코인의 특징이다. 스테이블 코인은 담보를 잡는 코인과 담보 없이 알고리즘으로 통화량을 조절하는 코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 또한, 담보의 유형도 명목 화폐, 금이나 원유와 같은 실물, 이더리움 같은 디지털 자산으로 나뉠 수 있다.


다양한 유형의 스테이블 코인 중, 대기업은 명목화폐를 담보로 하는 스테이블 코인을 채택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방식의 스테이블 코인은 아직 검증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기업은 화폐를 통제하는 국가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JP모건, 페이스북, 미쓰비시 은행, 미즈호 은행 등이 발행하는 스테이블 코인은 모두 명목화폐를 담보로 한다. 게다가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인 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도 국가가 통제한다는 점에서 명목화폐 기반의 스테이블 코인과 본질이 유사하다. 실제로 각 국은 현금 없는 사회와 디지털 경제로의 이행을 추진하기 위해 CBDC 발행을 연구하고 있다. 2019년 5월 IMF는 “10년 안에 CBDC를 발행하는 중앙은행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하며 CBDC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했다.


시간이 흘러 비트코인의 가격 변동성이 줄어들고 충분한 신뢰를 쌓는다고 상상해보자. 그렇게 되면 비트코인은 이 모든 디지털 화폐들의 기축통화가 될 잠재력이 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김포시에 발행한 지역화폐 1 김포 페이는 x BTC, 미국 페이스북이 발행한 1 페이스북 코인 (가칭)은 y BTC, 일본 미즈호 은행에서 발행한 1 J코인은 z BTC 같은 식으로 비트코인이 디지털 화폐들의 국제 가치 척도가 될 수 있다. 또한, 디지털 화폐들은 비트코인이나 명목 화폐로 태환 할 수 있다. 디지털 화폐를 발행한 모든 기업과 정부는 명목화폐와 비트코인을 일정 부분 보유하고 사용자와 거래 상대방이 요청 시 디지털 화폐를 명목화폐 혹은 비트코인으로 바꿔준다. 단, 비트코인은 거래 처리 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온체인은 도매 거래 정산으로 활용되고 소매 거래는 오프 체인에서 처리된다. 디지털 화폐를 비트코인으로 태환 하는 것은 마치 금 보관증을 들고 다니던 사람들이 은행에 태환을 요청하면 금으로 바꿔줬던 사례와 유사하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수혜를 보는 것은 디지털 제국이다. 정보의 바다를 장악한 인터넷 기업들이 가치의 길목마저 장악해 전 세계를 상대로 금융 산업을 전개한다. 월가 금융 기관들은 이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실리콘밸리 인터넷 기업들과 제휴를 맺으려 들 것이다. 사실 이러한 징조는 이미 발생하고 있는데 이에 관해서는 나중에 서술하도록 하겠다. 기업들이 앞 다투어 비트코인에 기반한 디지털 화폐를 발행한다면 각 국 중앙은행들과 IMF는 비트코인을 보유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기 시작할 것이다. 저가에 비트코인을 미리 매집한 중앙은행은 속내를 감추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을 것임이 분명하다.


다섯 번째 단계부터는 금융위기 발생을 전제로 한다. 금융위기의 특징은 극도의 복잡성을 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금융위기가 정확히 언제, 어떤 원인으로 발생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다만, 역사적으로 금융위기는 반복된다는 점과 다음 금융위기는 2008년 때보다 훨씬 더 파괴적일 것이라는 점에는 거의 이견이 없는 듯하다. 전 세계 금융 시장은 출구가 하나뿐인 대형 오페라 극장과 같다. 누군가 “불이야!”하고 소리 지르면 모두가 부리나케 탈출하려고 들면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내가 생각하는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미묘한 균열에서 파생된 공포가 바이러스처럼 퍼져 전 세계 금융 시장을 덮친다. 컴퓨터는 사전에 입력된 알고리즘에 따라 매도주문을 연쇄적으로 내고, 이런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면서 시장은 공황 상태에 빠진다. 그 결과, 거의 모든 자산 가격이 폭락하고 환율이 요동치며 뱅크런의 위기가 심화된다. 대마불사 금융기관들은 시민들의 세금으로 구제되고 정부에 제대로 로비를 하지 못한 금융기관들은 줄줄이 도산한다. 치안이 보장된 국가에 사는 부유한 사람들은 부동산, 금, 복잡한 파생상품, 헤지펀드 등으로 재산을 황급히 옮긴다. 반면,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과 정세가 불안정한 국가에 살면서 수준 높은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사람들은 비트코인으로 도망친다. 비트코인 가격은 폭등하고 디지털 금으로서 가치를 입증한다. 증권 거래소에서는 곡소리가 끊이질 않지만 디지털 자산 거래소는 비트코인 거래량이 급증하며 전례 없는 수준의 호황기를 맞는다.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 국가, 중앙은행, 대형 금융기관들은 완전히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 달러를 무한정 발행하는 연준에 대한 신뢰도 무너지면서 새로운 글로벌 통화 시스템의 필요성이 대두될 가능성이 있다. 각 국의 경제 대표들은 새로운 글로벌 통화 시스템을 논의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인다. 이들은 포커를 치듯 협상 테이블에 앉아 상대가 보유한 금과 비트코인의 수준을 가늠하며 미묘한 신경전을 벌인다. 이때, 금과 비트코인이 중요하다고 해서 새로운 글로벌 통화 시스템이 반드시 과거 금본위제로 복귀하거나 비트코인 본위제가 전면적으로 도입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금과 비트코인을 얼마나 보유했는지에 따라 각 국이 협상 테이블에서 발휘하는 영향력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국제사회를 좌지우지하는 소수의 패권국 및 금과 비트코인을 많이 보유한 국가 (두 유형에 속한 국가 리스트는 대개 일치할 확률이 높다)가 게임의 규칙을 새롭게 정하면 나머지는 사실상 선택권이 없다.


달러 이후의 글로벌 통화 시스템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결국 세계 화폐가 출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IMF의 SDR (특별 인출권, 원래 금태환이었다가 주요국 화폐를 묶은 바스켓으로 바뀜)가 발전해 이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는데, 세계 화폐가 출현한다 하더라도 각 국의 중앙은행은 나름의 재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오늘날 세계가 달러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각 국 중앙은행이 각자의 통화정책을 구사하는 것처럼 말이다. 구체적인 형태가 어찌 됐든 간에, 비트코인은 새롭게 등장할 글로벌 통화 시스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에 따라, 중앙은행과 IMF는 비트코인을 준비통화에 편입시키기 시작한다. 뒤늦게 비트코인의 잠재력을 깨달은 국가는 비싼 값을 치르고 비트코인을 매집한다. 비트코인은 이제 디지털 세계뿐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주요한 역할을 하는 화폐로 인정받는다. 이때부터 금과 비트코인은 불편한 동거를 시작한다.


한편, 세계 화폐의 등장은 미국의 몰락을 의미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1971년 금본위제가 폐지됐을 때 미국이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역량을 활용해 달러 패권을 지켜냈던 것처럼, 글로벌 통화 시스템이 재편된다고 하더라도 미국은 어떻게든 화폐 전쟁의 승자로 남을 것이다. 설사 SDR이 세계 화폐로 쓰인다고 하더라도 IMF가 미국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회원국 중 유일하게 미국만이 반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새로운 글로벌 통화 시스템은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될 확률이 높다.


실제로 미국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달러 이후의 시대를 착실히 대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금을 보유하고 있고 비트코인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며 관련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결국 달러의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글로벌 통화 시스템이 출현하더라도 미국의 패권은 그대로 유지될 확률이 높다. 화폐 전쟁은 계속될 것이며 중국이나 유럽 혹은 일본이 미국을 제치고 이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마지막 단계는 다소 먼 미래다. 바로 비트코인이 금을 대체하는 시나리오다. 기업과 정부가 비트코인을 취급하기 시작하면서 비트코인에 대한 신뢰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강화된다. 교과서에 비트코인이 등장하고 미래의 후손들은 오늘날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이 지리멸렬한 과정들을 보며 의아해한다. 어릴 때부터 비트코인이 화폐라고 학습한 미래의 후손들은 금을 단지 거추장스러운 금속 덩어리로만 인식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지금 우리가 신용카드나 모바일 페이를 사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듯이, 비트코인에 기반한 디지털 화폐를 사용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금인 비트코인이 있는데 대체 왜 금이 필요한가?”라는 생각이 지지를 얻고 종국에는 당연한 논리로 받아들여진다. 금은 재무적 기능을 상실하고 안전자산의 지위를 비트코인에 넘겨주게 된다. 은이 금과의 경쟁에서 밀린 것처럼, 금도 비트코인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산업용 금속이나 귀금속으로만 쓰이게 된다.


북저널리즘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7월에 책이 출간됩니다. 저작권 문제로 인해 내용을 일부 삭제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bookjournalis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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