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중섭 May 28. 2019

블록체인에 사활을 건 페이스북

#5-5 블록체인 왕좌를 둘러싼 전쟁

이더리움을 만든 비탈릭 부텔린은 데이터 통제에 관한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사용자 데이터와 디지털 소유권 및 행동에 대한 통제는 자산에서 부채로 급격히 전환하고 있다” 과거에는 사용자 데이터를 통제하는 것은 해당 기업이 더 많은 매출을 낼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자산이었다. 그러나 이제 사용자 데이터를 다루는 것은 오히려 해당 기업을 강력한 규제의 사슬에 묶이도록 만드는 부채라는 뜻이다.

 

실제로 사용자 데이터를 취급하는 기업에 대한 규제는 강화되는 추세이다. 가령, 2018년 들어 EU는 개인정보법 GDPR (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을 시행했다. 유럽 시민들의 데이터를 활용하는 모든 기업들은 GDPR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 사용자의 데이터에 기반한 사업을 전개하는 인터넷 기업들에게 GDPR은 매우 중요한 변화인데 만약 이를 위반하면 해당 기업은 엄청난 벌금을 물어야 한다. 유럽은 사실상 미국의 디지털 식민지인데 GDPR은 유럽이 미국 인터넷 기업들을 견제하기 위해 내놓은 고육지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는 기업 중 하나는 단연 페이스북이다. 페이스북이 돈을 버는 방법은 사용자들로부터 추출한 데이터를 광고주들에게 비싸게 팔아넘기는 것이다. SNS 사용자들은 사생활이나 고양이 사진 따위를 올리며 페이스북의 데이터 축적을 위해 헌신하지만 페이스북은 사용자들에게 어떠한 노동의 대가도 지불하지 않는다. 


하버드 대학교 커뮤니티로 출발한 페이스북은 오늘날 20억 명이 넘는 사용자를 거느린 대제국으로 성장했다. 페이스북이 직면한 문제는 플랫폼의 영향력이 너무나 커져 일개 기업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다다랐다는 것이다. 사용자 데이터 유출뿐 아니라 페이스북에서 무분별하게 양산되는 가짜 뉴스는 대선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로 페이스북의 영향력은 지나치게 커져버렸다. 


따라서 페이스북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예를 들어, 마크 주커버그와 페이스북을 공동으로 창업한 크리스 휴스는 독점기업으로서 페이스북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비대해졌다며 이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2020년 미국 대선 민주당 선두 주자로 부상한 바이든 전 부통령 역시 페이스북 해체를 면밀히 검토해 볼 만한 문제라고 발언했다. 


마크 주커버그는 페이스북이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승부수를 던졌다. 2019년 그는 페이스북의 지향점을 프라이버시로 내세웠다. 마크 주커버그는 기존에는 페이스북의 서비스들이 디지털 광장이었는데 이제는 프라이버시에 초점을 맞춘 디지털 거실이 될 수 있도록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2014년 ‘프라이버시의 시대는 끝났다’라고 한 본인의 발언을 180도 뒤집은 것이다. 


이 같은 배경 때문에 페이스북은 현존하는 인터넷 기업들 중 블록체인 사업에 가장 적극적이다. 블록체인 기술은 페이스북의 프라이버시 정책에 활발히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참고로 페이스북의 블록체인 사업을 진두지휘 하는 것은 페이팔 출신 핀테크 전문가 데이비드 마커스이다. 그는 2017년 12월에 코인베이스의 이사회로 합류했지만 2018년 8월 페이스북과의 이해 충돌의 이유로 사임했다. 2018년 5월 페이스북이 그를 블록체인 관련 부서 수장으로 임명했으니 코인베이스와의 결별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페이스북이 블록체인으로 어떤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데이비드 마커스의 이력과 왓츠앱 그리고 페이스북의 매출 구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데이비드 마커스는 2014년부터 페이스북 메신저 사업을 이끌었다. 그가 합류한 이후 메신저 사용자는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2014년 2억 명에 불과했던 메신저 MAU(Monthly Active User, 월간 활성화 사용자)는 2017년 9월 기준 13억 명으로 확대됐다. 페이팔에서의 경력을 활용해 데이비드 마커스가 메신저 결제 사업을 키울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다. 하지만 메신저에 결제 및 송금 기능을 탑재하고 전자 상거래 사업을 확장하려는 시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페이스북의 서비스들과는 달리 메신저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결국 2017년 이후 메신저는 광고를 붙이기 시작하며 광고 수익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2018년 기준 페이스북의 전체 매출 99%는 광고가 차지하며 결제 및 기타 사업에서 매출을 내는 것은 지극히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흥미로운 것은 왓츠앱의 변화이다. 15억이 넘는 사용자를 가지고 있는 왓츠앱은 페이스북 그룹 내에서 두 번째로 가장 많은 사용자를 보유한 서비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4년 왓츠앱을 190억 달러 (한화 약 20조 원)를 주고 인수한 페이스북은 그동안 왓츠앱 수익화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왓츠앱 창업자들이 암호화된 개인 정보를 지지하여 사용자들의 데이터를 팔아 돈을 버는 광고 사업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2018년 모두 페이스북을 떠났고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인 브라이언 액튼은 언론에서 페이스북이 사용자들의 개인정보를 파는 것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왓츠앱 창업자들이 퇴사하자 페이스북은 2018년부터 왓츠앱에도 광고를 붙이기 시작할 것이라는 계획을 발표했다.


2019년 1월 페이스북이 왓츠앱,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메신저의 메시지 기능을 통합할 것이라고 밝혔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블록체인 그룹을 이끄는 수장이 데이비드 마커스라는 점과 다른 메신저 경쟁사들이 자체 토큰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텔레그램, 라인, 카카오 등의 메신저 기업들은 이미 자체 토큰을 활용한 관련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메신저는 페이스북 블록체인 사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페이스북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위챗인데, 중국 사람들이 위챗 앱 하나만 가지고 소통, 결제, 콘텐츠 등 거의 모든 활동을 하는 것처럼 페이스북도 자사의 메신저를 ‘슈퍼앱’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한편, 2019년 5월 페이스북은 스위스에 ‘리브라’라는 핀테크 회사를 등록했다. 리브라는 결제, 데이터 분석, 블록체인, 투자 등의 활동을 할 예정이다. 또한 페이스북은 2020년 ‘글로벌 코인’이라는 자체 스테이블 코인을 선보일 예정이다. 글로벌 코인은 결제 및 송금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되며 인스타그램 전자 상거래 사업 활성화를 위해 쓰일 예정이다. 또한, 페이스북 사용자들이 광고를 보면 보상을 얻는 형태로 글로벌 코인이 활용될 여지도 있다. 페이스북은 글로벌 코인 출시를 위해 영란은행 총재를 만났을 뿐 아니라 각 국 규제당국이랑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글로벌 코인의 성공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과연 페이스북 글로벌 코인은 성공할 수 있을까?  아직 결과를 예단하기는 이르지만 페이스북 글로벌 코인은 상호운용성과 경쟁의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어, 구글이 페이스북 글로벌 코인과 유사한 형태의 스테이블 코인인 ‘구글 코인 (가칭)’을 발행한다면 페이스북의 입장은 난처해진다. (실제로 구글은 블록체인 관련 기업에 광범위하게 투자하며 관련 사업 기회를 엿보는 중이다) 이렇게 되면 각 사는 자사의 디지털 화폐 사용을 촉진하기 위해 막대한 마케팅 금액을 살포하며 치킨 게임을 벌이거나 제한된 범위의 파트너들만 자기편으로 포섭할 수밖에 없다. 


비단 구글뿐 아니라 아마존, 삼성 등 쟁쟁한 경쟁사들이 자체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한다면 이 역시 페이스북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각 사의 이해관계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보다 광범위한 블록체인 생태계 구축을 위해서는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중립성을 지닌 비트코인에 베팅하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PC 소프트웨어 독점기업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는 모바일 시장에서의 쓰라린 실패를 통해 오픈 소스의 중요성을 학습했지만 자신만만한 SNS 독점기업인 페이스북은 아직 이 점을 깨닫지 못한 것 같다. 과연 페이스북 글로벌 코인이 앞으로 블록체인 산업 내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북저널리즘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7월에 책이 출간됩니다. 저작권 문제로 인해 내용을 일부 삭제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bookjournalism.com/

 ================================================

독서할 시간이 없는 분들을 위해 책을 리뷰하는 '21세기 살롱'이라는 온라인 채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3분만 투자하면 책 한 권의 개괄적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독은 큰 힘이 됩니다.  

유튜브페이스북인스타그램

https://www.youtube.com/watch?v=P0D3TbNp0iU&t=9s


매거진의 이전글 오픈소스와 비트코인에 베팅하는 마이크로소프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