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중섭 May 27. 2019

오픈소스와 비트코인에 베팅하는 마이크로소프트

#5-4 블록체인 왕좌를 둘러싼 전쟁


한 때 마이크로소프트는 악명 높은 독점기업이었다.  PC 시장의 지배력과 자본을 활용해 경쟁사를 인수하거나 서비스를 그대로 베껴 잠재적 위협을 차단하는 것이 마이크로소프트의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가 익스플로어 끼워팔기를 통해 혁신 기업 넷스케이프를 격추시킨 뒤 반독점 소송에 휘말린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개방성, 다양성, 혁신성을 추구하는 실리콘 밸리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지위는 사회적으로 존경받지 못하는 졸부와 비슷했다.


윈도우, 익스플로어, 오피스와 같은 독점적인 소프트웨어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내던 마이크로소프트가 오픈 소스를 적대시한 것은 당연한 이치다. 오픈 소스란 저작권자가 소스 코드를 공개해 누구나 이를 자유롭게 열람, 수정, 배포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을 뜻한다. 개발자 커뮤니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영자들은 오픈 소스에 대한 적개심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의 1대 CEO 빌 게이츠는 오픈 소스 개발자를 공산주의자라 지칭했으며 2대 CEO 스티브 발머는 ‘리눅스는 지적재산권에 붙은 암적인 존재다’라는 발언을 했다.


그러나 2014년 사티아 나델라가 3대 CEO로 취임하면서 오픈 소스를 대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태도는 180도 바뀌었다. 사티아 나델라는 기업 행사장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리눅스를 사랑한다’는 발표자료를 선보이며 화제를 모았다. 선대 CEO들이 리눅스 비난에 날을 세웠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무척 고무적인 변화이다. 참고로 사티아 나델라는 폐쇄적이고 관료주의적인 DNA를 지닌 마이크로소프트의 변화를 주도하고 성공적으로 클라우드 사업을 안착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티아 나델라가 마이크로소프트의 르네상스를 열었다는 뜻인 ‘나델라상스’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이다.


오픈소스에 대한 마이크로소프트의 비상한 관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가장 최근 주목할만한 사건은 2018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소스 코드 저장소 깃허브를 약 9조 원에 인수한 것이다. 깃은 소스 코드 관리를 위한 분산형 관리 시스템으로 깃허브는 오픈 소스 개발자들에게 놀이터와 같다. 2천만 명이 넘는 개발자들이 깃허브에 8천만 개가 넘는 소스 코드를 공유하고 협업해 결과물을 개선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깃허브 경영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깃허브를 자사의 클라우드 서비스 성장에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오픈 소스와 사랑에 빠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비싼 수업료를 내고 오픈 소스의 중요성을 학습했기 때문이다. 폐쇄적인 전략을 고수하던 마이크로소프트는 PC에서 모바일로 패러다임이 넘어가는 시대를 선도하지 못했다. 새로운 도전자들은 오픈 소스를 활용해 디지털 제국으로 성장했고 민첩하게 움직이지 못한 마이크로소프트는 경쟁에서 밀려 도태됐다. 예를 들어, 구글은 오픈소스인 안드로이드 (모바일 OS)를 활용해 모바일 앱 시장을 손쉽게 장악한 반면, 윈도우를 고집한 마이크로소프트는 모바일 OS 시장에서 처참히 실패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클라우드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는 점 또한 마이크로소프트가 오픈 소스에 우호적인 이유이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클라우드 ‘애저’에서 구동되는 가상 머신 중 약 40% 이상이 리눅스이다. 만약 마이크로소프트가 리눅스를 배제한 채 자사의 윈도우만을 고집할 경우, 애저는 윈도우 개발자만을 위한 클라우드 서비스로 범위가 제한된다. 이렇게 되면 마이크로소프트는 클라우드 시장에서 아마존이나 구글과의 경쟁에서 밀릴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리눅스를 비롯한 오픈 소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생태계 확장을 위한 필수적인 수단인 셈이다.


오픈 소스는 전 세계 다양한 개발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냄으로써 혁신의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주축인 다양한 신기술 중 오픈 소스와 무관한 분야가 거의 없을 정도이다. 앞으로 혁신의 씨앗은 폐쇄적이고 관료주의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개방적이고 분산적인 오픈 소스에서 먼저 등장할 확률이 높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바로 이 점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에 오픈소스에 배팅하고 있는 것이다. 바다를 완전히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역동하는 조류에 흐름을 맡기는 것이 옳다는 것을 마이크로소프트는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이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모바일 시장의 헤게모니를 다른 경쟁사들에게 내준 뒤 얻은 값진 교훈이다.


이런 상황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비트코인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빌 게이츠가 2014년 “비트코인은 화폐보다 낫다”라고 발언한 이후 마이크로소프트는 비트코인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여왔다. 예를 들어, 2014년 이후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사의 서비스를 비트코인으로 결제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여태껏 비트코인 결제 지원을 수 차례 중단하고 재개했는데, 2019년 5월 기준 현재 비트코인은 마이크로소프트 서비스의 결제 수단으로 채택된 상황이다) 게다가 2017년 마이크로소프트는 엑셀에서 비트코인을 다룰 수 있는 기능을 도입했으며 2018년에는 ICE의 기관용 비트코인 거래 플랫폼인 Bakkt에 투자하며 파트너로 참여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비트코인에 베팅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2019년 마이크로소프트는 비트코인에 기반한 ‘탈중앙화 아이디 (DID, Decentralized IDentifiers)’ 네트워크를 구축할 것임을 발표했다. 탈중앙화 아이디는 공인인증서, 이메일, 전화번호처럼 중앙화 된 형태의 인증 없이 디지털 신원을 인증하는 방식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아이온 (ION, Identity Overlay Network)이라는 오픈 소스를 통해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아이온은 비트코인 사이드 트리 (side tree)를 통해 기술적 한계를 극복한다.


주지하는 점은, 오픈 소스와 사랑에 빠진 마이크로소프트가 비트코인에 베팅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정 주체와 이해관계가 없는 비트코인의 중립성은 분명 오픈 소스의 잠재력을 깨달은 마이크로소프트에게는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었을 것이다. 비트코인 퍼블릭 블록체인에 기반한 서비스 구축을 계획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행보는 자체적인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거나 프라이빗 블록체인 메인넷을 구축하고 있는 다른 기업들과 현저히 다르다. 폐쇄적인 독점 기업에서 개방과 혁신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환골탈태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연륜이 돋보인다.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뚫는 자는 흥한다” 는 격언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북저널리즘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7월에 책이 출간됩니다. 저작권 문제로 인해 내용을 일부 삭제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bookjournalism.com/ 

 ================================================

독서할 시간이 없는 분들을 위해 책을 리뷰하는 '21세기 살롱'이라는 온라인 채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3분만 투자하면 책 한 권의 개괄적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독은 큰 힘이 됩니다.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https://www.youtube.com/watch?v=P0D3TbNp0iU&t=9s


매거진의 이전글 비트코인에 군침을 흘리는 월가 늑대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