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블록체인 왕좌를 둘러싼 전쟁
삼성의 (이글에서 삼성은 곧 삼성전자의 모바일 사업부를 뜻한다) 최고 전성기는 2013년이었다. 갤럭시 S와 노트 시리즈를 앞세운 삼성은 애플의 아이폰을 위협하며 무섭게 성장했다. 그러나 2014년부터 샤오미, 화웨이 같은 중국 경쟁사들이 가성비를 앞세운 제품들을 내놓기 시작하면서 삼성의 전성기는 막을 내렸다. 고가 제품군은 충성도 높은 고객을 보유한 애플이, 중저가 제품군은 중국 기업들이 치고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삼성은 진퇴양난의 위기에 처한 것이다.
스마트폰 소프트웨어 차별화가 절실하던 차에 블록체인이 등장했다. 신기술의 잠재력을 알아본 삼성은 주요 스마트폰 기업들 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2019년 출시된 삼성 갤럭시 S10에는 각종 블록체인 앱과 지갑 기능을 지원하는 블록체인 키스토어가 탑재되어있다. 분명히 애플 및 중국 경쟁사들도 삼성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만약 주요 스마트폰 기업들이 블록체인 관련 서비스를 자사의 제품에 탑재한다면 이는 블록체인 대중화를 획기적으로 앞당기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삼성이 블록체인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블록체인 앱 생태계 구축 및 핀테크 사업 강화이다. 그동안 삼성은 자사의 부품 경쟁력을 활용해 OLED 스크린, 트리플 카메라 등 스마트폰 하드웨어 혁신을 선도해왔다. 그러나 삼성 스마트폰은 하드웨어 대비 소프트웨어, 그중에서도 모바일 OS에서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는데 이는 애플과 구글의 과점적 지위 때문이다. 구글과 애플은 전 세계 모바일 OS 시장에서 약 97%를 점유하며 앱 개발사들을 대상으로 엄청난 규모의 통행료를 징수하고 있는 반면, 삼성은 수익이 낮은 하드웨어 제품을 팔며 구글의 안드로이드를 대신 홍보해주고 있다.
모바일 OS 시장을 탈환하기 위해 삼성은 리눅스 재단 및 인텔과 협력해 타이젠 OS를 2012년 출시했고 2015년에는 타이젠 OS 가 탑재된 스마트폰을 인도에서 출시했다. 그러나 타이젠 스마트폰은 그다지 주목을 끌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타이젠 OS 파트너로 참여한 해외 기업들이 줄줄이 이탈하면서 타이젠 OS는 한동안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결국 구글과 애플의 모바일 OS 아성은 깨지지 않았고 삼성 타이젠은 IoT로 방향을 선회했다. 인상적인 것은 삼성뿐 아니라 아마존이나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글로벌 기업들도 자체 모바일 OS를 출시했지만 모두 실패했다는 점이다.
현재 모바일 OS를 장악한 구글과 애플은 굳이 나서서 블록체인 앱 생태계를 구축할 유인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이 블록체인 앱을 지원하며 생태계 선점을 위해 선제적으로 치고 나간 것은 의미가 있다. 삼성이 블록체인 앱 생태계를 성공으로 이끄는 것은 얼마나 많은 개발사를 우군으로 확보하느냐에 달려있다. 만약 삼성이 계획대로 블록체인 앱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다면, 삼성은 스마트폰 제조기업에서 발전한 블록체인 플랫폼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블록체인은 삼성의 핀테크 사업에도 활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2015년 출시 이후 삼성 페이는 전 세계 24개국에서 사용이 가능한 글로벌 서비스가 되었다. (2018년 8월 기준) MST(마그네틱 보안 전송) 기술에 기반한 삼성 페이의 초기 서비스는 주로 결제였다. 사용자가 스마트폰에 카드 정보를 입력해 놓으면, 결제 시 카드 결제 단말기에 스마트폰을 대고 바로 결제가 완료되는 편리한 방식이 특징이다. 결제에서 출발한 삼성 페이는 해외송금, 환전 등으로 서비스를 확대하며 핀테크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내 생각에 삼성은 해외송금 및 환전보다는 비트코인을 비롯한 디지털 자산 예치금을 최대한 많이 모으는 것에 주력해야 한다. 만약 삼성이 디지털 자산 금융 플랫폼이 된다면 어떨까? 이는 고객 충성도 강화, 삼성 그룹 내 금융 계열사 활용 그리고 제품 차별화를 가능케 할 수 있다. 만약 모든 삼성 스마트폰에 안전한 지갑 기능을 탑재하고 비트코인을 비롯한 디지털 자산을 예치한 사용자에게 이자를 지급하며 각종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상상해보자. 은행 인프라가 낙후된 곳에 사는 사용자들은 당연히 삼성 스마트폰에 디지털 자산을 예치하려 들 것이고 삼성을 곧 금융기관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전 세계 17억 명의 인구가 은행 계좌가 없고 이 중 2/3이 모바일이 있는데 이는 삼성에게는 절호의 기회다.
혁신은 상상력에서 비롯된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디지털 자산은 더 나은 금융의 미래를 상상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미래에는 모바일이 곧 은행이 될 것이고 그 중심에는 비트코인이 있을 것이다. 삼성은 앞으로 어떻게 스마트폰을 혁신할 수 있을까? 블록체인이 주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구글과 애플이 과점하고 있는 앱 생태계를 전복하는 것이 녹록지 않다는 점과 중저가 제품군에서 애플 대비 삼성이 우위를 보이는 점을 고려하면, 내 생각에 삼성은 블록체인 앱보다는 디지털 자산 금융 플랫폼을 통해 훨씬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삼성이 과연 블록체인 스마트폰으로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지 기대된다.
북저널리즘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7월에 책이 출간됩니다. 저작권 문제로 인해 내용을 일부 삭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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