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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Jun 10. 2019

프라이버시의 종말

#6-4 블록체인 - 디지털 제국주의 2.0

블록체인은 프라이버시를 강화해주기는커녕 오히려 프라이버시의 종말을 부추길 수 있다. 블록체인과 디지털 화폐 덕분에 테크핀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한다고 상상해보자. 맞춤형 서비스는 콘텐츠, 광고, 엔터테인먼트 등에서 금융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디지털 제국은 기존 금융기업 및 핀테크 스타트업은 결코 구현하지 못할 수준의 선진화된 맞춤형 금융 서비스를 사용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 만약 규제 때문에 디지털 제국이 직접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여의치 않으면 자사가 보유한 비재무적 데이터를 금융 기업에게 돈을 받고 팔 수도 있다. 사용자들의 취미, 자주 가는 레스토랑, 즐겨 보는 콘텐츠, 온라인 평판 등과 같은 온갖 비재무적 데이터가 맞춤형 금융 서비스 개발에 동원될 것이다. 


금융의 디지털화가 가장 발달한 중국은 미래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중국 정부는 디지털 제국이 제공하는 금융 서비스를 통해 시민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지만, 정작 중국 시민들은 프라이버시를 반납한 대가로 수준 높은 맞춤형 금융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중국의 사례를 통해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은, 중국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맞춤형 금융 서비스를 통해 더 나은 경제적 혜택을 얻을 수 있다면 기꺼이 프라이버시를 포기하려 들 것이라는 점이다.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상상해보자. 프라이버시를 고수하는 사람에게는 평범한 수준의 금융 서비스가 제공되는 반면, 적극적으로 디지털 제국에 데이터를 제공한 사람에게는 더 낮은 대출 금리, 보다 높은 수익률을 제시하는 투자 상품과 같은 맞춤형 금융 서비스가 제공된다. 사람들은 당연히 더 많은 경제적 혜택을 누리기 위해 프라이버시를 포기하려 할 것이다. 또한, 새로운 형태의 사회 신용 등급은 과시와 허영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타인과 자신을 구분 짓는 수단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가령, 인스타그램에 고급 기호를 소비 - 명품, 외제차, 호텔에서의 하룻밤, 해외여행에서 묶은 고급 리조트 등 - 하는 사진을 올리는 것보다 사람들이 본인 프로필에 사회신용 1등급을 표시하기 위해 기를 쓰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만약 정말로 이런 상황이 연출된다면, 깨알 같은 크기로 쓰인 약관을 찬찬히 읽고 심사숙고한 뒤 자신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정보 제공 동의’에 클릭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포스트 프라이버시 경제>의 작가 안드레아스 와이겐드의 주장은 인상적이다. 그는 데이터를 생성하고 공유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억제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적극적으로 프라이버시를 포기하고 기회를 현명하게 활용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한다. 디지털 판옵티콘을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는 그의 주장은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설득력 있다. 안드레이스 와이겐드는 프라이버시의 시대는 어차피 끝났기 때문에, 이제 중요한 것은 기업과 정부가 우리의 데이터를 어떻게 수집하고 분석하며 이용하는지를 이해하고 그 결과가 악용되지 않도록 적절히 통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원칙적으로 개인은 데이터 주권을 실천하며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화하는 맞춤형 서비스의 달콤한 유혹으로 인해 프라이버시는 점점 사멸하게 될 것이다. 특히 블록체인과 디지털 화폐는 맞춤형 금융 서비스가 발전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디지털 제국이 제공하는 경제적 혜택으로 인해 기꺼이 프라이버시를 포기할 것이다. 중국에서는 정부가 발행한 비트위안이, 여타 민주사회에서는 비트코인을 비롯해 기업들이 발행한 디지털 화폐가 디지털 판옵티콘을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데 이용될 것이다.


프라이버시는 개인의 자유와도 연관이 있다. 자유에는 엄청난 책임과 희생이 따르고 이는 프라이버시도 마찬가지다. 에리히 프롬이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표현했듯이, 인간은 자유와는 대단히 거리가 먼 동물이고 이는 프라이버시도 마찬가지다.  “인간이라는 불운한 동물은 자유라는 타고난 선물을 되도록 빨리 넘겨줄 수 있는 누군가를 찾고 싶은 욕구보다 더 긴급한 욕구를 갖고 있지 않다.” 에리히 프롬의 말을 조그만 변형 해보자면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귀결된다. “인간이라는 불운한 동물은 (편리함만 제공된다면) 프라이버시라는 타고난 권리를 되도록 빨리 넘겨줄 수 있는 누군가를 찾고 싶은 욕구보다 더 긴급한 욕구를 갖고 있지 않다.”



북저널리즘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7월에 책이 출간됩니다. 저작권 문제로 인해 내용을 일부 삭제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bookjournalis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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