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인 사랑과 결혼의 결합 #1
로맨스 (Romance)의 원래 의미는 낭만, 사랑 따위의 감상적인 표현과는 거리가 멀다. 로맨스의 어원은 ‘Roma+ance’인데 이는 로마스럽다는 뜻으로, 로마가 멸망한 이후 유럽에서 로맨스는 지방이라는 뜻을 의미했다. 로맨스의 유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1세기-12세기에 남프랑스에서 활약한 트루바도르라 불리는 음유시인들을 알아야 한다. 11세기 십자군 전쟁이 발발한 이후 수많은 남성들이 징집됐고, 여성들은 정조대를 찬 채 하염없이 남편을 기다려야 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말쑥한 외모에 능숙한 매너를 겸비한 트루바도르는 여성들에게 단비 같은 존재였다.
남편을 전쟁터에 떠나보낸 돈 많은 귀부인들은 트로바도르의 주 고객층이었다. 트로바도르들은 달콤한 시와 노래를 지어 귀부인들에게 들려주었는데, 주로 남녀 간의 사랑과 기사도 정신에 관한 내용이었다. 외롭게 독수공방 하던 귀부인들은 트루바도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꼈고, 때때로 트루바도르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기도 했다. 이때, 트루바도르들은 상류층의 표준어인 라틴어가 아닌 지방 평민들이 사용하는 로마어, 즉 로맨스를 사용했다. 사람들은 트루바도르들이 지은 서정적인 사랑 이야기를 ‘로맨스’로 줄여 부르기 시작했다. 당시 라틴어를 사용하던 유럽의 엘리트들은 로맨스를 ‘격이 떨어지는’ 통속적인 표현으로 취급하며 비하했다.
로맨스가 사람들로부터 (특히 귀부인들) 호응을 얻었지만 현실에서 낭만적인 사랑이 실현된 사례는 많지 않았다. 특히 종교적 교리가 지배하던 중세시대에는 남녀 간의 사랑을 신에 대한 사랑보다 우위에 두어서는 안 되었다. 가문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과 죽음을 택한 남녀를 다룬 <로미오와 줄리엣>은 대중의 심금을 울렸지만, 픽션은 여전히 픽션일 뿐이었다. 보수적인 사회는 낭만적인 사랑을 장려하지 않았다. 결혼은 여전히 다양한 이해관계에 바탕을 둔 가문 간 계약이었으며 당사자들 간의 애정은 결혼 시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본격적인 변화가 발생한 것은 17-18세기 즈음이다. 이때부터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에 계몽주의가 확산됐다. 이성과 과학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은 기존 질서에 의문을 품고 무지의 장막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사회적, 종교적 규율에 속박되어 있었던 사람들은 개인의 권리 신장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고, 이는 사랑과 결혼에 관한 규범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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