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최고의 비즈니스

진화하는 결혼 #4

고대 이집트 파라오 클레오파트라에게는 만족을 모르는 야심가, 외국어에 능통한 지식인, 능숙한 외교가, 절세미인 등의 수식어가 붙는다. 그녀가 로마의 권력자 카이사르와 안토니오스를 사랑의 포로로 만든 사실은 전설적인 스캔들로 남아있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다면 세계의 역사는 변했을 것이다.” 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녀는 고대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여성은 많지만, 클레오파트라만큼 결혼의 비즈니스적인 측면을 잘 이해하고 영리하게 활용한 여성은 없을 것이다.


클레오파트라가 살았던 시절에 이집트 왕족은 혈통을 보전하기 위해 근친혼을 시행했다. 클레오파트라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여동생과 결혼해 클레오파트라를 낳았으며, 클레오파트라 역시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결혼했다. 프톨레마이오스 12세가 죽자 클레오파트라는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이집트의 공동 통치자가 되는데, 남편을 지지하는 세력과 갈등을 겪고 왕좌에서 쫓겨난다. 클레오파트라는 권력을 되찾기 위해 이집트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로마의 실력자 카이사르에게 접근한다. 호색한으로 알려진 카이사르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클레오파트라가 돌돌 말려진 카페트에 몸을 숨겨 그를 만나 유혹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카이사르의 환심을 산 클레오파트라는 그에게 자신이 프톨레마이오스 13세로부터 권력을 빼앗아 다시금 이집트를 통치할 수 있게끔 도와달라고 간청한다. 클레오파트라에게 마음이 뺏긴 카이사르는 그녀의 요청을 승낙하고 전쟁을 일으킨다. 전쟁에서 승리한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를 프톨레마이오스 14세와 결혼시키고 이집트를 공동 통치하게끔 한다. 물론 이 둘 간의 결혼은 표면적 장치일 뿐,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는 뜨거운 관계를 유지했고 이 둘은 후에 아들을 낳는다.


이집트 파라오로 화려하게 복귀한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의 아들 카이사리온을 차세대 이집트와 로마의 지도자로 키우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운다. 로마로 돌아간 카이사르가 영웅 대접을 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카이사르와의 관계에서 낳은 아들이 중요한 외교적 자원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반대파에 의해 암살당하고 클레오파트라의 계획에는 심대한 차질이 생긴다. 클레오파트라는 아들 카이사리온이 카이사르의 혈통임을 내세워 적통성을 인정받으려 했지만 로마 기득권층과 시민들의 반발을 산다. 결국 그녀는 로마에서 도망쳐 이집트로 돌아와 프톨레마이오스 14세를 숙청한 뒤 카이사리온을 이집트의 공동 통치자로 내세운다.


카이사르의 죽음 이후 로마는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카이사르의 양자 옥타니우스가 후계자로 지목되었지만, 노련한 정치가이자 카이사르의 오른팔이었던 안토니우스는 옥타니우스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다며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정치적 갈등을 빚던 옥타니우스와 안토니우스는 로마를 분할 통치하는데 합의했고, 옥타비아누스는 여동생을 안토니우스에게 시집보내 동맹을 공고히 했다.


한편, 안토니우스는 정적 옥타니우스를 몰아내고 로마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이집트의 지원이 필요했다. 이집트를 지배하고 있던 클레오파트라도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안토니우스의 군대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서로 이해관계가 일치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외교적 목적으로 만나게 되는데,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단박에 그녀의 매력에 사로잡힌다. 결국,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누스의 여동생인 부인을 내쫓고 클레오파트라와 결혼해 아이를 낳는다.


옥타비우스는 안토니우스의 외도를 기회로 활용한다. 그는 안토니우스가 문란한 이집트 여왕의 꾐에 넘어가 로마인의 품위를 실추시키고 로마의 영토를 이집트에 팔아넘길 계획이라고 비난한다.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우스가 적법한 후계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카이사르의 양자인 양 사실을 위조했다고 맞받아쳤다. 둘 간의 갈등은 심화되고 급기야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리온이 카이사르의 정통 후계자라고 선포한다. 이것이 갈등이 폭발하는 촉매제가 되었고, 분노한 옥타비우스는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우스가 지배하는 이집트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다. 전쟁에서 패배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과연 클레오파트라는 진심으로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를 사랑했을까? 이것은 오직 본인만 알 수 있기 때문에 성급히 추측하기 어려운 문제다. 대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클레오파트라가 자신의 야심을 달성하기 위해 결혼이라는 제도를 능수능란하게 활용해 타국의 권력자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클레오파트라의 이야기는 최상위 계층에게 결혼이 어떤 역할을 하는 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최상위 계층에게 결혼은 정치적, 경제적, 외교적 이해관계를 한 번에 충족시킬 수 있는 최고의 비즈니스이다. 적을 동맹으로 만들어 전쟁을 막고, 가문 간 유대감을 쌓아 세력을 확장하며, 자식에게 가문의 재산과 권력을 이전하는 수단이 결혼인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관찰된다. 대부분의 공주의 운명은 공통적으로 적국 혹은 동맹국이나 식민지로 보내져 현지 권력자의 아내가 되는 것이었다. 말도 통하지 않고 아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부모가 지정해준 상대와 함께 사는 것은 평생을 곱게 자란 공주가 수행하기에 고약한 미션이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실제로 16세기 유럽에서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누이는 다음과 같은 탄식을 했다고 하는데, 타지로 보내졌던 공주들은 모두 이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고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결혼하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집과 친척들 곁을 떠나 낯선 사람을 따라 세상 끝까지 가야 하는 것은 훨씬 더 견디기 힘들다. 그 나라 말도 할 줄 모르는데.”


결혼이 최고의 비즈니스라는 점은 역사적으로 전 계층을 막론하고 유효한 명제다. 다만, 정치적, 외교적 동기가 중요한 최상위 계층의 결혼과는 달리 일반 사람들의 결혼은 주로 경제적 이해타산에 기반한 거래라는 점이 차이다. 상류층은 최상위 계층을 흉내 내며 '급'이 맞는 가문과와의 결혼만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가족 구성원 중 여성이 있는 상류층의 최대 관심사는 딸이나 누이를 권세 있는 가문에 시집보냄으로써 재산을 늘리고 세력을 공고히 하는 것이었다. 이때, 배우자 간 나이 차이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는데, 꼬마 신부가 성인 남성과 결혼하거나 반대로 꼬마 신랑이 성인 여성과 결혼하는 일이 왕왕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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