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사랑과 결혼 #1
사려 깊은 근대 지식인들은 자본주의가 탐욕스럽게 세를 뻗치는 것을 경계했다. 이들은 시골이 도시화되고 동양이 서구화되는 과정에서 인간이 소외되고 물신숭배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한때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공산주의가 주목받았지만, 거의 모든 점에 있어서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보다 낫지 못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20세기 공산주의 진영을 대표하던 소련이 붕괴한 이후, 자본주의는 비단 경제의 근간뿐 아니라 현대인의 생각 및 행동 양식을 좌지우지하는 견고한 체계로 자리 잡았다.
자본주의는 사랑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근대 후기부터 대중화된 낭만적인 사랑은 20세기부터 본격적으로 태동한 자본주의적인 사랑에 밀려 그 영향력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낭만적인 사랑과 자본주의적인 사랑의 주요 차이점은, 전자가 파트너 간 애착과 정서적 유대감과 같은 감상적인 가치를 중요시하는 반면, 후자는 비정한 시장의 법칙 하에 경제적, 물질적 가치를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자본주의적인 사랑은 인간을 짝짓기 시장의 상품으로 만들고 개개인의 고유한 가치를 단순한 교환가치로 환원해 버린다. 사랑을 체험하려는 현대인들은 짝짓기 시장에서 잘 팔리는 상품이 되기 위해, 동시에 최적의 상품을 찾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앞서 데이트의 기원을 설명하며 데이트가 자본주의적인 사랑 방식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데이트는 기본적으로 소비의 행위이다. 우리는 데이트를 하며 먹을 것, 즐길 것, 탈 것 등을 소비한다. 소비의 전제조건은 돈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돈이 없으면 데이트를 하기 어렵다. 물론 돈이 거의 들지 않거나 혹은 전혀 들지 않는 데이트의 행태가 존재하기는 한다. 이를 테면, 공원을 산책하거나 서점에 앉아 무료로 책을 보는 것 등이 그 예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따금씩 근사한 식당에서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선물도 주고받고 싶다. 그리고 이것이 이상적인 (돈을 쓰지 않고서는 도저히 성취할 수 없는) 데이트라는 것을 알고 있다.
자본주의적인 사랑은 현대인에게 ‘사랑한다면 소비하라’는 규칙을 따를 것을 강요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리하여 달콤한 데이트를 하고 연인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서는 소비를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암시적인 광고를 통해 이 규칙의 정당성을 반복적으로 주입함으로써 우리를 세뇌시킨다. 자본주의적인 사랑이 강요하는 규칙을 따르지 않는 자는 '무심'하고 ‘무례’하다는 오명을 쓴다. (연인 간 1주년 기념일 혹은 연인의 생일에 아무 이벤트나 선물을 준비하지 않았다고 상상해보라) 심지어 그는 연애를 ‘잘 못한다’는 (그렇다. 연애는 ‘잘 해내야만 하는’ 일종의 비즈니스가 되어버린 것이다!) 비난을 듣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크리스마스는 ‘사랑한다면 소비하라’는 자본주의적 사랑의 규칙의 강제성이 극대화되는 날이다. 크리스마스는 원래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종교인의 날이다. 그러나 코카콜라의 절묘한 광고 때문에 크리스마스의 종교적 의미는 사실상 퇴색됐고 크리스마스는 상업적인 기념일로 변질되었다. 그 결과, 한국의 연인들은 크리스마스에 고급 기호를 소비하도록 강요된다. (외국의 경우, 크리스마스가 상업적으로 변질됐기는 하지만 소비의 주체 및 대상은 주로 연인이 아닌 가족이다) 자본주의적인 사랑이 정한 규칙에 의해, 그들은 영화나 공연을 본 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선물을 교환하며, 도심 속 호화로운 호텔에서 로맨틱한 밤을 보낸다. 크리스마스 특수라는 명목으로 엄청나게 부풀려진 비용을 지불해가면서 말이다.
결혼의 징표로 여겨지는 다이아몬드 반지도 마찬가지다. 한 때 전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했던 기업 드비어스는 ‘변치 않는 영원한 사랑’이라는 문구로 자사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광고했다. 그 결과, 오늘날 남성이 여성에게 프러포즈할 때 값 비싼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는 것이 일종의 관례가 되었고, 현지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 드비어스 사는 돈방석에 앉게 되었다. 만약, 어떤 남성이 이와 같은 배경을 알고 다이아몬드 반지라는 고급 기호를 소비하는 것을 거부한다면, 그는 아마 높은 확률로 프러포즈에 성공하지 못하거나 연인으로부터 잔소리를 들어야 할 것이다.
인상적인 점은, 자본주의적인 사랑이 정한 규칙 하에 우리가 소비하는 대상이 비단 재화나 서비스뿐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까지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짝짓기 시장에서 마음에 드는 최적의 상품을 고른다. 동시에 자기 자신을 타인에게 팔기 위해 포장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짝짓기 시장에서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인 셈이다. 우리는 생산과 소비의 의무를 동시에 수행함으로써 자본주의적 사랑이 만든 짝짓기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돕는다.
우리가 짝짓기 시장에서 연인이라는 상품의 소비를 위해 지불하는 것은 화폐가 아닌 매력 자본이다. (만약 지불 수단이 화폐라면, 그 관계는 연인이 라기보다는 매춘부와 손님의 그것에 가까워 보인다) 경제력, 사회적 지위, 직업, 집안, 유머, 신체, 매너, 취향 등 실로 다양한 요소들이 매력자본을 구성한다. 적당한 배우자를 탐색하다가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나 데이트하고, 연애하고, 결혼하는 일련의 과정의 기저에는 짝짓기 시장 내 매력 자본을 활용한 상품 소비라는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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