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인플레이션

현대인의 사랑과 결혼 #2


낭만은 어디에나 있다. 왕자와 공주가 결혼하는 동화, 거리에 울려 퍼지는 사랑 노래, 로맨스 드라마, 애잔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문학,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같은 로맨틱한 예술 작품, ‘#러브스타그램’ 해시태그를 달고 있는 인스타그램의 각종 게시물, 발렌타인데이를 맞아 고급 초콜릿 상품을 전시한 쇼윈도, 만남을 예찬하는 결혼 정보 회사 홍보물이 붙어있는 지하철 스크린 도어까지. 다양한 문화적 산물은 낭만의 확산이라는 공통의 목적에 이바지한다.


낭만은 어디에도 없다. 과거의 사람들이 낭만이라고 불렀던 것들은 -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것, 시를 노래하는 것, 오랜 시간을 들여 편지를 쓰고 답신을 기다리는 것 - 현대인들에게는 지나친 감상적 사치가 되어버렸다. 오늘날 우리가 낭만이라고 여기는 것들은 대개 ‘만들어진 합성 이미지’이다. 우리는 본래적인 낭만을 접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인 사랑이 만들어 낸 갖가지 낭만의 합성 이미지를 ‘소비’할 뿐이다. 낭만의 합성 이미지는 마치 바이러스처럼 반복적으로 재생산되고 확대된다. 그 결과, 우리는 낭만의 합성 이미지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되고, 도취되고, 중독된다.


소셜미디어는 낭만의 합성 이미지를 대량 생산하는 공장이다. ‘#러브스타그램’ 해시태그를 포함한 각종 로맨스물, 데이트, 커플 사진, 꽃다발, 기념일 선물, 다이아몬드 반지, 웨딩드레스, 프로포즈 등의 규격화된 게시물이 올라오는 소셜 미디어는 낭만의 합성 이미지 확산에 기여한다. 소셜미디어는 오로지 사랑의 긍정성만을 편향적으로 노출한 채, 지속적으로 낭만의 합성 이미지를 생산해낸다. 이혼, 불륜, 권태, 섹스리스 따위와 같은 게시물이 소셜미디어에 노출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현대인은 사랑을 공적으로 전시한다. 사랑에 ‘빠진’ 자기의 모습에 도취된 현대인은 낭만의 합성 이미지를 소셜미디어에 게재함으로써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한다. 디지털 관객들은 때로는 공공연하게, 때로는 은밀하게 이 쇼를 관람하며 ‘좋아요’를 통해 주최자와 소통한다. 한 때 물레방앗간, 갈대밭, 자동차에서 행해졌던, 사랑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는 이제 소셜미디어라는 무대에서 불특정 다수의 디지털 관객들에게 공개되는 쇼가 되어 버렸다.


범람하는 낭만의 합성 이미지는 낭만의 인플레이션을 낳는다. 낭만의 인플레이션은 우리로 하여금 사랑에 대해 왜곡된 시각을 갖게 만든다. 낭만의 인플레이션에 익숙해진 우리가 보통 사랑이라고 여기는 것은 알고 보면 사랑의 지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사랑은 뇌의 도파민 화학작용이 초래하는 일시적인 기쁨 이후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모든 종류의 슬픔까지도 포함한다. 그러나 낭만의 인플레이션은 이러한 진실을 은폐한 채 사랑의 긍정성만을 강조하며 우리를 기만한다. 그 결과, 수많은 연인들이 자신들이 체험하는 사랑의 부정성 - 권태, 다툼, 불륜 등 - 을 특별히 ‘불운’한 사례로 여기고 자괴감을 느끼곤 하는데, 이는 사실 모든 연인들이 겪는 지극히 평범한 것이다. 모든 연인은 저마다의 문제로 인해 사랑의 부정성을 체험하기 마련이다.


낭만의 인플레이션은 또한 미혼자들로 하여금 결혼에 대해 부풀려진 환상을 갖도록 한다. 낭만의 인플레이션은 결혼의 긍정성 (예컨대, 황홀한 결혼식, 행복한 가정, 달콤한 신혼 생활 등등) 만을 편향적으로 부각함으로써, 결혼 생활의 절반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부정성은 은폐한다. 변기 뚜껑을 덮지 않아 다투고, 새벽에 아이가 우는 바람에 잠을 설치고,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녹초가 되고, 돈 문제로 고민하고, 참을 수 없을 만큼의 권태를 느끼고, 배우자 (혹은 본인)가 바람을 피우고, 나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태어난 것과 같은 인간과 평생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가끔씩 절망감을 느끼는 것 등이 전혀 다뤄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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