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사랑 vs. 디지털 사랑

현대인의 사랑과 결혼 #3


1997년에 개봉한 영화 <접속> 은 인터넷이 사랑의 양식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영화 속 동현과 수현은 우연히 온라인 채팅을 시작한다. 이들은 네모난 PC 모니터 속 저 너머에 있는 미지의 상대에게 조금씩 호감을 느낀다. 서로의 실제 모습을 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통한다고 느낀 동현과 수현. 결국 두 사람은 오프라인에서 만나 영화를 보기로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약속 장소에 나간다. 인터넷이 사랑의 큐피드 역할을 한 것이다.


영화가 개봉할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인터넷이 어떻게 사랑의 양식을 비롯해 사랑과 사람 간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의할지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다. 오늘날 사람들이 온라인 쇼핑을 하듯이 모바일 앱에서 파트너를 검색해서 찾고, 피자 주문하듯 손쉽게 매춘부를 집으로 부르는 성인 서비스가 등장하고, 일본의 괴짜들이 로봇과 사랑에 빠지는 현상에 관해서 감히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실 인터넷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의 기술 발전은 사랑의 양식을 변화시키는데 일조했다. 편지와 전화는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연인 간의 의사소통을 가능케 만들었다. (오늘날 연인들은 스마트폰 없이 연애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지만, 과거의 연인들은 차가운 금속 물체를 통해 상대와 소통하는 것을 부자연스럽고 ‘정’이 없는 행위로 여겼다) 자동차는 데이트 문화 확산에 기여했고 콘돔과 피임약은 섹스 혁명을 야기했다.


인터넷이 기존의 기술 발전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사랑의 원형 그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다. 기존 사랑의 원형은 다소 불편하고 느린, 아날로그적인 특징을 보였다. 과거의 연인들은 여러 번 고쳐 쓴 편지의 답장을 애타게 기다리고, 상대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공중전화 부스 앞에서 줄을 서곤 했다. 이때만 해도 사랑은 두 사람만의 서사였으며 사랑의 무대는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이었다.


그러나 인터넷은 사랑의 원형을 디지털로 바꾸어 놓았다.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은 시간과 공간을 압축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해 최적화시킨다. 디지털 사랑은 신속함과 편리함이 특징이다.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연인과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고, 온라인 데이팅 서비스를 통해 얼굴을 한 번도 보지 않은 잠재적 파트너들을 무한정 만날 수 있다. 연인과 소통을 원치 않거나 소통을 기피하고 싶을 때는 연락처를 삭제하고 차단하면 그만이다. #러브스타그램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은 불특정 관객들을 대상으로 온라인에 전시된다.


디지털 사랑의 특징인 소셜미디어 속 사랑의 전시와 낭만의 합성 이미지에 대해서는 앞에서 자세히 서술했으니, 이번에는 디지털 사랑의 또 다른 특징인 온라인 데이팅 서비스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자. 과거 우리의 조상들은 파트너를 찾을 때, 그 대상이 주로 친족 네트워크 및 마을로 제한되어 있었다. 그 당시에는 평생에 걸쳐 만날 수 있는 잠재적 파트너의 수가 대체로 한 자릿수였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소파에 누워 온라인 데이팅 서비스에 접속해 몇 분만 손가락을 분주히 놀리면 수 십 명의 매력적인 상대를 손쉽게 만날 수 있다. 비유하자면 스마트폰은 파트너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연중무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영업하는 싱글 전용 클럽인 셈이다.


매치 그룹이 제공하는 (매치 그룹의 연간 매출액 및 시가 총액은 각각 2조 원, 20조 원이 넘는 수준이다) 틴더는 대표적인 온라인 데이팅 서비스이다. 틴더를 사용하는 방법은 본인의 매력 자본을 프로필에 올린 뒤 온라인 쇼핑을 하듯 파트너를 고르는 것이다. 이때, 여성은 주로 외모적 매력을 (가슴골을 노출하거나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는 것), 남성은 사회 경제적 지위를 (학위, 직업, 자동차 등) 프로필에 노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틴더의 사용자는 제시된 파트너가 마음에 들면 오른쪽으로, 그렇지 않으면 왼쪽으로 넘기는데 사용자 모두가 오른쪽으로 넘겼을 경우에만 (다시 말해 두 사람 모두 상대를 마음에 든다고 했을 경우에만) 매칭이 된다. 매칭이 된 이후 두 사람이 가벼운 관계로 남을지, 좀 더 무거운 관계로 발전할지는 전적으로 사용자들의 몫이다.


온라인 데이팅은 점점 새로운 사랑의 양식으로 인정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온라인 데이팅으로 결혼하는 비중이 30%를 넘어섰고, 다른 국가들에서도 온라인 데이팅이 파트너를 찾는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성적으로 보수적인 인도 및 이슬람 문화권에서 온라인 데이팅이 전통 규범을 빠르게 침식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참고로 인도 및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남녀가 공공장소에서 애정행각을 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고 결혼도 부모가 일방적으로 정해주는 사람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제 이 문화권에서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온라인 데이팅을 통해 자신이 선호하는 상대와 만나고 연애결혼하는 추세가 확산되고 있다. 수 백 년 전 근대 말, 서구권을 중심으로 시작된 낭만적인 사랑과 결혼의 결합이, 인터넷과 온라인 데이팅 덕분에 비로소 21세기에 이 문화권에서도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틴더로 대표되는 온라인 데이팅 서비스의 문제점 중 하나는 선택지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온라인 쇼핑에서 마음에 드는 상품을 하나 골랐다고 해서 시시각각 노출되는 매력적인 신상품을 쉽게 무시할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온라인 데이팅 서비스에서도 약간의 노력만 기울이면 엄청난 매력을 지닌 파트너가 등장할 수 있는데, 이러한 가능성을 외면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설사 온라인 데이팅 서비스에서 만난 누군가와 진지한 교제를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온라인 데이팅 서비스를 탈퇴하고 가능성의 카드를 열람할 권리를 포기하는 일은 엄청난 절제력을 요구하는 것일 수 있다.


디지털 사랑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온라인 데이팅 서비스를 통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파트너를 만나고 교제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어쩌면 관계의 양을 얻어낸 대가로 관계의 질을 희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디지털 사랑에 기반해 만들어진 관계는 (관계라는 표현보다는 쉽게 맺고 끊을 수 있는 ‘연결’이라는 표현이 더욱 적합할 듯하다) 취약하고 피상적이다. 디지털 사랑으로부터 느끼는 유대감과 친근감, 그리고 본인이 파트너에게 기울이는 헌신의 수준은 아날로그 사랑의 그것에 비해 참담하리만치 빈약한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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