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양극화

결혼의 종말#3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자본소득이 노동소득보다 우위에 있음을 밝히며 자본주의 양극화 문제를 명쾌하게 진단했다. 즉, 자본수익률이 임금상승률 및 경제성장률을 초과함에 따라 자본을 보유한 소수의 계급에게만 점점 부가 집중되면서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것이다. 양극화 문제는 경제뿐 아니라 결혼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결혼을 할 여력이 되는 계급은 비슷한 수준의 사람끼리 만나며 자신들이 누린 수혜를 그대로 자식에게 상속하는 반면, 그렇지 못한 계급은 결혼은커녕 자신의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버거워하며 혼자 살아간다. 오늘날 결혼은 계급을 구분하는 표식이 되어 가고 있다.


본격적으로 결혼의 양극화 문제를 논의하기에 앞서, 역사를 한 번 돌이켜보자. 결혼의 주된 기능은 가문 간 경제적 거래였다. 비슷한 수준의 가문끼리 결혼하는 동질혼이 일반적이었고 수준 차이가 많이 나는 가문 간 결혼은 성사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여성의 나이가 어리고 신체적 매력이 뛰어난 경우에만 지위가 높은 남성과 결혼하거나 첩으로 팔려가는 일이 예외적으로 있었을 뿐이다. 낭만적인 사랑과 결혼이 결합한 후에도, 경제적 거래라는 결혼의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거래의 주체가 가문에서 개인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과거에는 지위가 높지 않거나 상향혼을 고집하지 않더라도 결혼을 통해 경제적 편익을 취하는 것이 용이했다. 농경 사회에 결혼은 노동력을 분배하고 자원을 공유하는 최적의 계약이었고 자식은 노후를 대비한 최고의 보험이었다. 산업 사회에는 ‘돈 벌어오는 남편 – 내조하는 아내’ 분업 모델이 효과적으로 작동했고, 맞벌이는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지름길이었다. 결혼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득이 되는 거래였다. 사람들은 본인이 열심히 노력만 한다면,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기른 뒤, 은퇴 후에는 부부가 그동안 모은 돈과 연금으로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즐기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는 과거에는 실제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성취할 수 있었던 (특별히 불운하지 않다는 전제하에) 합리적인 기대였다.


그러나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양극화가 심화됨에 따라 상황이 바뀌었다. 이제 결혼은 더 이상 예전만큼 수지맞는 거래도 아니요,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인생의 선택지도 아닌 것이 돼버렸다. 심지어 결혼을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만 향유하는 ‘사치’로 생각하는 인식까지 생기고 있다. 나오미 칸과 준 카르본은 이와 같은 세태를 지적하며 <결혼 시장>에서 다음과 같이 적는다. “안정적인 결혼 생활은 이제 특권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결혼으로부터 벗어나는 비행기 안에 엘리트는 없다. 반면 대부분의 미국인에게 안정적인 결혼 생활은 점점 더 이루기 어려운 것이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대다수 미국인은 결혼율이 낮고 이혼율이 높으며, 첫째 아이는 결혼한 부모 밑에서보다 한부모 가정에서 태어날 확률이 높다. 하지만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결혼은 다음 세대, 즉 자녀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것으로 후하게 보답한다.”


<결혼 시장>에 묘사된 상황이 비단 미국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결혼이 특권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이며 이는 사실상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돈 없으면 결혼 못한다’는 말은 냉정하게 들리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수용되는 불편한 명제이다. 결혼을 고려할 때 있어서, 소득 수준이 높거나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재산이 많은 상류층은 이상적인 배우자를 물색하는데 골몰하지만, 중산층과 하류층은 배우자 물색보다는 일단 어느 정도의 경제적 기반을 닦는 것을 최우선 순위로 삼는다. 후자의 경우, 나름의 경제적 기반 구축이라는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결혼을 기피하거나 아예 포기해버리는 경우도 왕왕 있다.


한국 노동 사회 연구소가 수행한 조사는 참고할만하다. 해당 조사에 따르면, 임금 수준 소득 10 분위 남성의 기혼자 비율은 82.5%인 반면, 1 분위는 6.9%에 불과했다. 즉, 소득이 높은 남성 대비 낮은 남성이 결혼을 하지 않은 (혹은 못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조사에서 여성의 임금 수준 소득 10 분위와 1 분위의 기혼자 비율이 각각 76.7%, 42.1%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여성 역시 소득이 높을수록 결혼할 비율이 높았지만, 소득이 낮을 경우 결혼 비율은 남성의 그것 대비 현저히 높은 편이었다.


이 조사가 시사하는 바는, '돈 없으면 결혼 못한다'는 명제가 참이며, 이는 여성보다 남성에 더욱 유효하다는 점이다. 조사 결과를 보면, 남성은 여전히 전근대적 가부장제 사회의 유산인 ‘여성보다 우월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남성이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 역할을 해야 한다’는 굴레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이것 역시 성 역할 변화에 대한 이상과 현실의 불일치라고 할 수 있다.


출판사 파람과 계약을 맺고 <결혼의 종말> 책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해당 내용은 책의 일부이며,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혼의 종말1.jpg

알라딘

https://www.aladin.co.kr/m/mproduct.aspx?ItemId=243428992

예스24

http://m.yes24.com/Goods/Detail/90701972

교보문고

http://mobile.kyobobook.co.kr/showcase/book/KOR/9791196707651?orderClick=Ow4


================================================

독서할 시간이 없는 분들을 위해 책을 리뷰하는 '21세기 살롱'이라는 온라인 채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3분만 투자하면 책 한 권의 개괄적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독은 큰 힘이 됩니다.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https://www.youtube.com/watch?v=ay_RTiNuvdc&t=95s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건어물녀와 초식남의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