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 인류의 디지털 사랑

결혼의 종말#4

인터넷과 디지털 기기는 사랑의 양식을 변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다소 불편하고 느리며 무거운 아날로그적인 면이 있던 사랑은 오늘날 신속하고 빠르고 가벼운 디지털의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 디지털 사랑을 수용함으로써, 우리는 관계의 양을 얻은 대신 관계의 질을 희생했다. 아니, 어쩌면 디지털 사랑에서는 ‘관계’라는 말보다는 ‘네트워크’라는 표현이 더욱 정확할지 모른다. 우리는 지루한 기다림의 과정을 거쳐 관계를 숙성시키고 소통하는 대신 즉각적으로 네트워크에 접속해 휘발적인 정보를 주고받으며 과잉 연결된다.


머지않은 미래에 인간 대 인간뿐 아니라 인간 대 기계, 기계 대 기계가 연결된 초연결 사회가 도래할 것이다. 디지털 전환은 가속화될 것이고 점점 더 많은 인구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될 것이다. 이에 따라 디지털 사랑 역시 심화될 예정인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봄직한 주제는 과연 디지털 사랑이 어디까지 발전 가능할 지에 대한 것이다. 나는 크게 두 가지 양식의 디지털 사랑의 출현에 주목하는데, 바로 러브 로봇과 가상현실 사랑이다. 러브 로봇과 가상현실 사랑은 결혼의 역사에 있어서 낭만적인 사랑과 결혼의 결합 이후 어쩌면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러브 로봇이란 말초적 쾌락의 충족을 위해 설계된 섹스 로봇보다 더욱 진화한 형태로, 사람과 육체적, 정신적으로 깊은 교감을 나누는 (즉,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감정) 로봇을 말한다. 우리는 미래상을 다룬 영화로부터 러브 로봇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영화 <그녀>는 인간 남성 테오도르와 AI 운영체제 사만다가 사랑을 하는 내용이다. 물리적 형체가 없는 사만다는 초기에는 스케줄을 관리해주는 비서 역할을 한다. 그러다 테오도르가 점점 사적인 이야기를 많이 털어놓게 되고 사만다가 그의 이야기를 경청해주면서 그들의 관계는 발전한다. 아내와 별거 중인 테오도르는 그녀의 빈자리에 공허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마침내 제 짝을 찾은 것 같다. 사만다는 이제 테오도르의 ‘그것’에서 ‘그녀’가 된다.


나는 오늘날 우리가 매일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 기기에 탑재되어 있는 AI 비서 (애플 시리, 아마존 알렉사, 구글 어시스턴트, 삼성 빅스비 등등)가 미래의 사만다가 될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AI 비서 기술 수준은 날씨나 뉴스 따위를 알려주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미래의 AI 비서는 사용자의 취향, 건강 상태, 심리를 파악하는 것을 넘어, 어쩌면 사용자 본인보다 사용자를 더 잘 이해하는 짝이 될지도 모른다. 일단 서로 간에 유대감이 형성되고 경청과 공감의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비서가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이다. (비서와 상사 간 벌어진 수많은 스캔들을 보라!)


당신은 아마 러브 로봇이라는 개념이 거북할 것이다. 로봇과 사랑을 나누는 것을 일본 오타쿠처럼 별난 사람들의 불쾌한 취향이라고만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 영화 <그녀>에서 테오도르와 별거 중인 부인은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 그를 한심하게 여긴다) 그러나 현재 애완 로봇이 노인들의 친구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나는 미래에 러브 로봇이 사람들의 애인 역할 역시 무난하게 수행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인간관계에서 피로감을 느끼는 동시에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거나, 특정 연예인에게 푹 빠진 사람이거나, 충분한 수준의 경제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러브 로봇은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월 구독료 9,900원에 사용자의 취향을 맞춤형으로 고려하고, 유명 연예인의 모습을 한 러브 로봇과 언제 어디서든 사랑을 속삭일 수 있다고 상상해보라. 물론 이따금씩 대화 중간에 코카콜라 광고가 삽입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겠지만)


러브 로봇과 관련된 미래의 단서는 아이들에게서 얻을 수 있다. 우리는 현재 스마트 기기를 장난감처럼 갖고 노는 아이들 및 미래에 더욱 진화한 스마트 기기를 태어나자마자 접하게 될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스마트 기기에 탑재된 AI 비서는 아이들의 사용 패턴을 학습하고, 취향을 분석해서 이들에게 철저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AI 비서는 축적된 데이터로 사용자를 점점 더 정확히 이해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라면서 AI 비서를 죽이 잘 맞는 친구로 여기게 될 것이다. 게다가 어렸을 때부터 스마트 기기와 소통한 아이들은, 어른이 됐을 때도 AI 비서와 교감하는 것에 커다란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밖에서 인간 친구들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고민이나 자신의 속마음을 AI 비서에 털어놓으며 위안을 얻을 것이다. 알다시피 마음의 문을 열고 진솔하게 소통하는 것은 사랑의 초기 징후다.


한편, 가상현실 사랑 역시 미래에 충분히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다. 이와 관련, 영감을 주는 영화는 <레디 플레이어 원>이다. 2045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글로벌 가상현실 게임 오아시스가 대중화된 미래를 그린다. 사람들은 암울한 현실에서 도피해 (영화의 배경은 ‘러스트 벨트’로 유명한 미국 오하이오 주인데, 영화는 다가올 AI 혁명과 노동의 종말로 인해 도시가 황폐화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즐거운 일이 가득한 가상현실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선호한다. 주인공 웨이드는 가상현실 오아시스에 접속해 친구를 사귀고, 사회 활동을 하고, 비트코인 같은 디지털 화폐로 경제 활동을 한다. 주인공은 오아시스에서 매력적인 여성 아바타 아르테미스를 만나고 그녀에게 강한 호감을 느낀다. 오프라인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대상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출판사 파람과 계약을 맺고 <결혼의 종말> 책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해당 내용은 책의 일부이며,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혼의 종말1.jpg

알라딘

https://www.aladin.co.kr/m/mproduct.aspx?ItemId=243428992

예스24

http://m.yes24.com/Goods/Detail/90701972

교보문고

http://mobile.kyobobook.co.kr/showcase/book/KOR/9791196707651?orderClick=Ow4


================================================

독서할 시간이 없는 분들을 위해 책을 리뷰하는 '21세기 살롱'이라는 온라인 채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3분만 투자하면 책 한 권의 개괄적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독은 큰 힘이 됩니다.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https://www.youtube.com/watch?v=ay_RTiNuvdc&t=95s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결혼의 양극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