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를 임대하는 시대

결혼의 종말#5

수렵채집 시절, 과반수 이상의 인구는 15세 전후로 죽었다. 농업 혁명이 발생하고 문명이 태동하면서 인간의 기대 수명은 30~40세까지 늘어났다. 그러다 근대 산업화 시기에 접어들고 의학 공공 보건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기대 수명은 70~80세 수준으로 증가했다. 오늘날 인간의 기대수명은 80세 수준인데, (OECD 평균 기대수명 80.2세) 이제는 80세를 넘어 100세 시대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다.


주지하는 것은, 오늘날 결혼 제도가 인간의 기대수명이 30~40년에 불과했던 시절에 만들어진 유물이라는 점이다. 예전에는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부부가 함께 사는 것이 비교적 어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결혼 후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면 다른 생각을 할 겨를 없이 죽음을 맞이해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에는 부부가 함께 살아야 하는 시기가 비교적 짧았기에 결혼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그럭저럭 참고 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20~30대에 결혼한 부부는 자녀를 낳고 길러 독립시킨 뒤, 50대~60대에 은퇴한 후 남은 수십 년의 여생을 함께 보내야 한다. 기대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부부가 함께 살아야 하는 시기가 전례 없는 수준으로 길어진 것이다.


파비엔 구 보디망 세계 미래학회장는 기대수명의 증가가 결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평균 수명이 120세가 되는 2070년에는 평범한 사람도 평생에 결혼을 2~3번 이상 하게 될 겁니다. 미래의 장수 사회가 결혼 패턴과 가족제도를 송두리째 바꿔 놓는 거지요.” 나는 파비엔 구 보디망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는데, 앞으로 결혼 시장은 배우자라는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임대’하는 양상을 보일 것이다. 다시 말해, 한 번 결혼한 사람과 평생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적정한 때가 오면 (임대 시기가 끝나면) 부담 없이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혼자만의 삶을 즐기거나 다른 짝을 찾을 것이라는 점이다.


황혼이혼과 졸혼이 현대인들에게 각광받는 것을 보면, 이러한 전망은 어느 정도 현실화되고 있는 듯하다. 황혼이혼은 결혼 한 지 오래된 부부가 이혼하는 것이고, “학교를 졸업하듯 결혼을 졸업한다”는 뜻인 졸혼은 이혼은 하지 않았지만 부부가 서로 간섭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황혼이혼과 졸혼의 공통점은 중장년층이 더 이상 결혼과 부부 관계 유지를 의무로 여기지 않고 개인의 삶과 행복을 우선시한다는 것이고, 차이점은 황혼이혼은 법적인 부부 관계를 끊는 반면 졸혼은 이를 유지하는 것이다.


실제로 황혼 이혼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이다. 2018년 이혼 통계 자료에 따르면, 결혼 생활 30년 이상 한 부부의 이혼율은 전년 대비 17.3% 증가했고, 이혼한 부부의 평균 결혼 생활은 15.6년을 기록했는데, 이는 전년보다 0.6년, 2008년보다는 2.8년 증가한 수치였다. 또한, 결혼 생활을 20년 이상 지속한 황혼 이혼은 해당 시기 전체 이혼의 33.4%를 차지하며 가장 비중이 높았다. 중장년층 부부 사이에서 지난한 결혼을 끝내고 새롭게 제2의 인생을 살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신조어인 졸혼은 중장년층 부부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독립적인 삶을 원하지만 법적인 부부 관계로 남기를 원하는 중장년층 부부들에게 졸혼은 황혼이혼의 훌륭한 대안이 된다. 졸혼은 부부 관계의 단절이라기보다는 재정립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졸혼 시대>의 저자 스기야마 유미코는 졸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 자신을 똑바로 쳐다봐야 할 시간이 왔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바로 졸혼이 있습니다. 졸혼은 틀에 박힌 가정생활을 송두리째 뒤엎는 새로운 삶의 태도를 제시합니다. 가족이라는 개념이, 한 곳을 바라보며 하나로 움직였던 전체에서 각각의 개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개인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서로 흥미가 다르고 생각이 다른 것을 인정합니다. 무조건 함께 하는 게 아닙니다. 떨어져 살아도, 각자 다른 곳을 여행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서로를 든든하게 지지해줍니다.”


황혼이혼과 졸혼의 확산 원인에는 여성의 경제력 신장 및 개인주의 심화가 있는데, 무엇보다도 기대 수명의 증가가 미친 영향이 크다. 지금처럼 부부가 평균적으로 50 년 이상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경우는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부부가 평생 함께 사는 것은 이제 너무 버거운 일이 되어버렸다. 현대인들은 한 사람의 배우자와 평생 함께 사는 것이 마땅하다는 선대의 가르침을 믿지 않는다. 애초에 결혼이라는 제도가 인간의 기대수명이 30~40세일 때 만들어진 신화라는 점을 고려하면, 오늘날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이 신화에 의구심을 품고 반발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봄직한 것은 앞으로 인간 기대 수명이 지금보다 훨씬 늘어나면 미래 결혼 제도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에 대한 점이다. <200세 시대가 온다>의 저자 토마스 슐츠에 의하면, 실리콘밸리에서는 첨단 기술로 질병과 노화를 극복하고 조만간 200세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는 낙관론이 팽배하다. 이는 죽음이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이 가진 특유의 자신감과 전폭적인 재정 지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특히, 실리콘 밸리의 테크 기업들은 헬스케어 시장에 엄청난 기회가 있다고 판단하고 관련 분야에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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