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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Apr 26. 2020

다자이 오사무의 재발견

도서 <다자이 오사무 내 마음의 문장들>을 읽고

누군가 어떤 예술 작품을 접하고 단순히 일회성으로 감상하는 차원을 넘어 이것에 '빠져들면', 이 위대한 피조물을 창조한 예술가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궁금해지면서 그가 남긴 삶의 궤적을 찾아보기 마련이다. 관객은 예술가의 삶을 훔쳐보고 간접적으로나마 그의 세계관을 이해함으로써, 예술가가 창조한 작품을 더욱 깊게 음미할 수 있게 된다. 예술을 한답시고 평범해지기를 거부한 작자들이 대개 파란만장한 모험을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예술가 개인의 삶은 하나의 독립적인 예술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인간실격>, <사양>으로 유명한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삶은 예술이다. 몰락 귀족 신분으로 평생을 번민하며 글을 쓰다가, 수 차례의 시도 끝에 마침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데 성공한 다자이 오사무. 그의 분신과 다를  바 없는  <인간 실격>의 주인공 요조의 삶을 보면, 그는 지독히 불행했던 것 같다. 다자이 오사무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는 대개 부정적이고 유약한 것들 - 죽음, 불행, 우유부단, 소심 등등 -인데, 나는 내심 그를 '속 터지게 답답하고, 불행을 자초하는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책 <다자이 오사무 내 마음의 문장들>을 읽고 그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이 책은 다자이 오사무가 살아 있을 때 남긴 문장들을 엮은 것으로, 다자이 오사무의 삶과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참고서다. 무척이나 인상적인 점은, 시종일관 의기소침하고 우울한 줄로만 알았던 다자이 오사무가 의외로 밝고 행복한 구석이 있는 인간이라는 증거가 드문드문 글에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아, 어쩌면 나도 다자이 오사무가 평생 벗어나려고 몸 부리 쳤던 '타인의 편견과 평가'라는 폭력을 행사한 것이 아닐까? 사람이 사람을 온전히 알고 평가한다는 것이 대체 가당키나 한 일일까? 다자이 오사무가 지닌 의외의 모습을 재발견하면서 나는 <인간실격> 속 문장이 떠올랐다. "아아, 인간은 서로를 전혀 모릅니다. 완전히 잘못 알고 있으면서도 둘도 없는 친구라고 평생 믿고 지내다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상대방이 죽으면 울면서 조사 따위를 읽는 건 아닐까요." 


다자이 오사무가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편하게 쉬기를.


 다자이 오사무가 남긴 문장들

사랑이란 아름다운 것을 꿈꾸며 더러운 수를 쓰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지. 너희들은 고뇌의 능력이 없는 것만큼 사랑하는 능력도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 너희들은 애무는 할지 몰라도 사랑은 하지 않는다


자신의 작품을 설명한다는 것은 이미 작가의 패배라고 생각한다.


작품이 아니라 인물로 남에게 존경받고 사랑받기 위해 온갖 애를 쓰고 머리를 짜내는 작가는 오래전부터 많았지만, 하나같이 교활한 게으름뱅이입니다. 극단적이고 히스테릭한 허영꾼입니다. 작품을 발표한다는 것은 창피를 당하는 것입니다. 신에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 고백을 통해 신의 용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신의 벌을 받는 것입니다. 내게는 언제나 작품만이 문제입니다. 작가의 인간적인 매력 같은 것은 조금도 믿지 않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하찮고 비천하다고 생각합니다. 작품만이 구원입니다. 일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창작 경험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 구경꾼들이, 저 작가는 도무지 발전이 안 보여, 그 긴 세월 동안 아무런 변화도 없군, 하고 건방진 말을 하지만, 그 긴 세월이 얼마만큼의 수련으로 유지되어 왔는지 조금도 알지 못합니다. 권위 있는 비평을 하려면, 먼저 자신도 어느 정도는 창작의 고생을 겪어봐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시인이라는 것을 존경한다. 순수한 시인이란 인간을 넘어선 것으로, 분명 천사일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세상의 시인들에게 기대가 크고, 그리고 대체로 실망한다. 천사도 아니면서 시인이라 자칭하며 거들먹거리는 이상한 인문들이 많다.


위대한 예술가는 전부 어딘가 아마추어 같은 데가 있다. 그래서 좋은 것이다. 처음에는 아마추어였다가 나중에 프로가 되고, 그다음에 또 아마추어가 된다.


돌이켜보면, 문학을 지향하게 된 뚜렷한 동기는 저 스스로도 잘 모르겠고, 거의 무의식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문학의 들판을 걷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나아갈 길도 천 리, 되돌아갈 길도 천 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문학의 들판 한복판에 서 있는 것을 깨닫고 아주 놀랐다는 것이 가장 진실에 가까울 것입니다.


어른이란 외로운 사람이다. 서로 사랑하고 있어도 조심하면서 남남처럼 서먹서먹하게 대해야 한다. 어째서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보기 좋게 배신을 당해 큰 창피를 겪은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사람은 믿을 수 없다. 이 발견은 청년이 어른으로 옮겨가는 첫 번째 과정이다. 어른이란 배반당한 청년의 모습이다. 


가장 위대한 인물은 자신의 판단을 굳게 믿은 사람들입니다. 가장 멍청한 녀석도 그와 똑같은 사람들입니다만, 궁극의 문제는 내가 지금 아무런 삶의 보람도 느끼지 않는다는 데에 있었습니다. 살아가는 것에 아무 의욕이 없을 때는, 자살조차 할 수 없습니다. 자살은 오히려 살아 있는 것에 의욕을 느끼는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가장 평범한 표현으로 말하면, 나는 슬럼프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이라는 순간은 재밌다. 지금, 지금, 지금, 하고 손가락을 꼽고 있는 동안에도 '지금'은 멀리 말아가 버리고 새로운 '지금'이 와 있다.


나는 스스로를 행복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슬픔은 돈을 주고서라도 사라는 말이 있다. 푸른 하늘은 감옥의 창에서 보았을 때 가장 아름답다고 했던가. 감사한 일이다. 이 장미꽃이 살이 있는 한, 나는 마음의 왕이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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