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결혼의 종말>을 쓰고
매달 독후감을 쓰는 독서 모임을 하고 있다. 이번에 선정된 책은 공교롭게도 최근에 출간한 <결혼의 종말>이다. 평소에 남들이 쓴 책을 보다가, 이번에는 내가 쓴 책을 리뷰하려니 참으로 멋쩍기 그지없다. 사실 책을 내기 전에 원고를 열 번은 더 보았다. 따라서 책을 다시 읽고 그에 대한 느낀 점을 적는 것은 이제 와서 별로 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책을 쓸 때와 쓰고 나서의 소회를 밝히는 것이 더욱 의미 있는 독후감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의 종말> 책을 출간하고 나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이거다. "대체 왜 이런 책을 쓰셨나요?" 글쎄, 왜 이 책을 썼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단순히 창작에 대한 배설 욕구라고 밖에 답하지 못하겠다. 시인이 시를 노래하고 거리의 악사가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것에 뚜렷한 동기가 있는 것이 아니듯이, 글쟁이가 글을 쓰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언제가 사랑과 섹스에 대한 책을 꼭 써보고 싶었다. 지나치게 통속적이거나 가볍지 않고 다소 진지한 인문서. 여기에는 연애와 결혼에 대한 스토리가 첨가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막연히 이런 아이디어에 대해 구상하며 살던 중, 몇 번의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고 결혼 적령기가 되자 이 주제에 대한 나의 생각을 어딘가에 기록해두어야 겠다는 욕구가 더욱 커졌다.
나는 어떤 주제에 대해 관심이 생기면 역사부터 찾아보는 습관이 있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오늘날 사랑, 연애, 섹스, 결혼에 대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과거에는 정답이 아니었으며, 과거에 정답으로 여겨지던 것들 역시 오늘날 정답이 아님에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단언컨대, 인간만큼 특이하게 사랑하고 섹스하고 연애하고 결혼하는 종은 지구 상 어디에도 없다."
내가 발견한 이 역사적 사실과 (사실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지식인들은 대체로 알고 있는 진부한 사실이다) 더불어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스토리를 써보고 싶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미래에 대한 스토리. 사실 사랑, 섹스, 연애, 결혼 관련 주제에 대한 양서는 찾아보면 많다. <사랑의 기술>, <진화하는 결혼>, <결혼과 도덕>, <섹스의 진화>, <고대 사회>,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리퀴드 러브>, <왜 결혼과 섹스는 충돌할까>, <성, 사랑, 에로티시즘>, <에로티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욕망의 진화> 등등. 그러나 21세기 테크놀로지 발달이 이 주제에 어떤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고찰하는 양서는 그다지 많지 않다. 나는 이 공백을 채워놓고 싶었다. 그리하여 2020년에 누군가 이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을 기록해두고 싶었다. 실제로 책의 말미에는 결혼의 미래에 대한 가설이 많이 등장한다. 내가 내린 결론은 시대에 따라 진화하는 결혼이 미래에는 지금과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며 앞으로 전통적 의미의 일부일처제가 점점 없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제목 때문에 오해를 많이 받았다."종말"이라는 단어 자체가 워낙 부정성을 암시하기 표현이기에 이 책을 마치 결혼을 부정하거나 비혼이나 이혼을 장려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실제로 결혼한 지인들로부터 이 책을 배우자 몰래 숨겨 놓았다는 우스갯소릴 들었다. 제목이 민망해 책 표지를 가리고 다니는 사람도 보았다. 또한,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어떤 지인의 경우, 부모가 이 책을 읽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결혼의 종말>이 금서 취급을 받으니 기분이 묘하다. 마르크스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심지어 나는 "비혼주의자세요?" 나 "이혼하셨나요?"라는 질문도 요새 심심치 않게 듣는다. (나는 비혼주의자도 아니고 아직 결혼이나 이혼 경험이 없다) 보통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책을 끝까지 읽어보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다. 책에는 작가의 개인적인 스토리나 결혼의 당위성을 논하는 내용이 없다. 단지 결혼이라는 '신화'에 대한 썰이 담백하게 서술되어 있을 뿐이다.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책의 서두에 이렇게 적어놓았는데, 역시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법이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 책은 멀쩡히 결혼 생활을 잘하고 있는 사람들을 폄하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 아니다. 어떤 이는 배우자와 결혼한 것을 인생 최대의 행운으로 여기며 결혼 생활에 상당한 만족감을 느낀다. 무척 드물기는 하지만 '낭만적인 사랑, 정열적인 섹스, 가정의 안정감'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결혼을 통해 최대한으로 실현하는 부부도 있기는 있다. 또한 나는 결혼의 부정선만을 강조하며 이혼 및 비혼을 조장하려는 의도 역시 없다. 결혼은 나름의 긍정성과 부정성이 있으며, 결혼, 비혼, 이혼을 택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이다. 내가 이 책을 통해 기대하는 바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 섹스, 연애,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저마다의 세계관을 확장해 보는 것이다."
모쪼록 책을 쓰면서 나의 사랑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랑이 무엇일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마 앞으로도 잘 모르겠지. 다만, 사랑이 '서로 미쳐 버리는 것'만이 아님을 나는 이제 알고 있다. 사랑의 원형이 금세 타올랐다가 식어버리는 횃불이 아니라 은근한 온기가 시나브로 퍼지는 온돌에 가깝다고 나는 믿고 있다. 그리고 '받는' 사랑보다 '주는 '사랑이 훨씬 성숙하고 고차원적인 사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이 역시 나의 주관적인 사랑관일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정열적으로 불타는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일 것이다. 사랑에 정답은 없다. 가장 개인적인 사랑이 가장 아름답다.
독후감 미션 (사랑과 결혼에 대한 정의)
- 사랑은 함께 걸어가는 것이다. 단, 2인 1각이 아니라 각자의 발걸음으로.
- 결혼은 가장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가장 극단적인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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