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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Feb 11. 2021

데이터 도굴꾼으로 전락한 사이버 유토피안

디지털 빅브라더의 탄생 #6

<디지털 빅브라더> 원고 수정본 일부. 전문은 브런치 북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히피에게 빚을 졌다” 초창기 실리콘밸리의 문화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언론인 스튜어트 브랜드가 1995년 <타임>지에 기고한 글의 제목이다. 본 글에서 스튜어트 브랜드는 1960년대 세대가 남긴 진정한 유산은 전쟁 반대, 우드 스탁, 장발이 아니라 컴퓨터 혁명이라고 적었다. 스튜어트 브랜드의 말은 분명 일리가 있다. 왜냐하면 컴퓨터, 인터넷, 모바일로 이어지는 디지털 혁명의 중심지 실리콘 밸리가 히피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실리콘 밸리와 히피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인물은 바로 애플의 창업주 스티브 잡스다. 기성 사회에 길들여지는 것을 거부한 스티브 잡스는 대학을 중퇴하고 동양 문화, 인문 고전, 명상 등에 심취해 시간을 보냈다. 또한, 스티브 잡스는 창의적인 생각을 위해 마약의 힘을 빌렸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밝힐 정도로 자유분방한 삶을 추구했다. 특유의 반골 기질 덕분에 스티브 잡스는 기존의 틀을 깨는 혁신적인 시도를 많이 했고 이는 애플이라는 위대한 기업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애플의 미션이 “다르게 생각하라 정도로 스티브 잡스는 인습을 지독히 싫어했다.


1960년대 히피 문화의 부흥과 더불어 스티브 잡스와 같은 젊은 히피들이 실리콘밸리에 모여들었다. 이들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고 싶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도전 정신으로 무장한 똑똑한 인재들,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한 깊은 이해와 더불어 풍부한 모험 자본을 바탕으로 실리콘 밸리는 단숨에 첨단 기술의 메카로 떠올랐다. 애플의 뒤를 이어 구글, 야후, 트위터, 이베이, 야후, 넷플릭스, 테슬라 같은 쟁쟁한 혁신 기업들이 실리콘 밸리에 둥지를 튼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실리콘밸리에 모인 엘리트들은 첨단 기술의 발달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게 만든다고 굳게 믿었다. 그들은 세속적인 성공을 추구하기보다는 자신이 만든 창조적인 결과물을 통해 세상에 긍정적인 영감을 불어넣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따라서, 실리콘밸리에서 기업을 경영하는 비즈니스맨의 성향은 현실주의보다는 이상주의에 가까운 경우가 많았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매출을 늘리고 원가를 절감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보다는, ‘미친 아이디어로 떼돈을 벌고 모험을 즐기자’는 것이 당시 실리콘 밸리 기업가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던 목표였다. 그들은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자신들의 비전에 공감하고 개혁에 동참하기를 바랐다.


1970년대 컴퓨터 혁명에 이어 등장한 1990년대 인터넷 혁명은 실리콘밸리 엘리트들에게 엄청난 영감을 불어넣었다. 히피 문화를 계승한 실리콘밸리 엘리트들이 보기에 인터넷 사이버 스페이스는 그들이 그동안 추구해 온 가치관을 - 반권위주의, 자유, 평등, 공생, 개방 – 실현할 최적의 장소였다. 첨단 기술을 신봉하는 실리콘 밸리 엘리트들은 사이버 유토피안을 자처하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독려했다. 당시 인터넷 대중화를 들뜬 마음으로 지켜보던 사이버 유토피안 중에서, 향후 인터넷이 어떤 부작용을 낳을지 우려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편, 인터넷 산업의 초기 발전을 주도한 실리콘 밸리 엘리트들은 모든 사람들이 무료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비전을 공유했다. 따라서 이메일, 검색엔진, 소셜 네트워크 등의 분야에서 태동한 각종 인터넷 기업들은 자사의 서비스를 사용자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것을 일종의 표준으로 여겼다.


그러나 선한 의도로 시작한 일이 항상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법은 아니다. 이상주의자들의 호의로 시작된 인터넷 서비스 무료 정책은 역설적이게도 오늘날 디지털 빅브라더와 관련된 거의 모든 문제의 원흉이 되었다. 인터넷 기업들은 무료 플랫폼의 한계를 극복하고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온라인 광고라는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했다. 무료 서비스와 온라인 광고 모델을 가장 성공적으로 결합한 기업은 한때 별 볼일 없는 스타트업이었던 구글이었다. 구글의 아찔한 성공은 데이터 사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돈 냄새를 맡은 기업들은 도를 넘은 방식으로 사용자의 데이터를 수집하기 시작했고 이는 감시 자본주의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감시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별도의 장을 통해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다.


오늘날 우리는 매일 각종 인터넷 서비스를 거의 무료로 사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서비스들이 정확히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왜냐하면 인터넷 세계의 규칙은 일반인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컴퓨터 코드 속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기업들이 어떻게 우리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관리하고 상업화하는지 이해하고 있는 사람 또한 마찬가지로 거의 없다.


인터넷 서비스는 검색, SNS, 쇼핑, 커뮤니케이션, 콘텐츠, 금융 등 실로 다양한 양태로 존재하는데,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의 공통된 관심사는 데이터이다.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세력을 키운 기업은 인터넷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디지털 빅브러더로 거듭난다. 디지털 빅브라더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은밀한 감시 도구, 신경을 분산하는 보조 장치, 정교한 알고리즘 등을 활용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사용자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팔리는 ‘상품’, 여기에서 더 나아가 데이터를 생산하는 ‘노동자’가 된

다.


첨단 기술을 통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겠다는 비전을 내세웠던 사이버 유토피안들은 데이터 도굴꾼으로 전락했다. 그들은 은밀한 방식으로 우리의 데이터를 훔치고 이를 광고주들에게 팔아 큰돈을 번다. 예를 들어, 구글에서 로봇 청소기를 검색하면 유튜브에 로봇 청소기 광고가 뜬다. 또한, 페이스북에서 커리어 조언에 대한 콘텐츠에 좋아요를 누르면, 인스타그램에 직장인 대상 커리어 개발 강의 광고가 뜨는 식이다. 심지어 페이스북은 사용자 몰래 음성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는 의혹을 산 바 있는데, 기업들의 사용자 프라이버시 침해가 도를 넘은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끊이질 않고 있는 상황이다.


오늘날 인터넷은 만인이 무한한 자유를 누리는 평등한 공동체가 아니라, 소수의 빅브라더가 다수를 착취하며 데이터를 생산해내는 거대한 공장으로 변해버렸다. 우리는 이제 사이버 유토피아가 결코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고결한 이상을 내세운 (이를 테면 구글의 ‘사악해지지 말자’ 나 페이스북의 ‘세상을 더 가깝게’와 같은 것들) 사이버 유토피안들이 사실은 기만적인 데이터 도굴꾼이라는 점도 탄로 났다. 실리콘밸리 엘리트들의 바람과는 달리, 첨단 기술의 발달이 우리 삶에 어떤 부작용을 낳았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상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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