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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Mar 05. 2022

돈이란 무엇인가

돈이란 무엇인가. 얼핏 단순해 보이는 질문이지만 이에 대한 답변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예를 들어, 메소포타미아 문명 수메르인에게 돈은 곡물이다. 고대 로마 병사들에게 돈은 소금이다. 중세 베니스의 상인들에게 돈은 금화이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 포로들에게 돈은 담배이다. 1971년 닉슨 쇼크 이후, 돈은 미국 달러 중심의 법정 화폐이다. 오늘날 엘살바도르 시민들에게 돈은 비트코인이다.

이처럼 돈에 대한 정의는 시기와 상황에 따라 제 각기 다르다.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돈의 속성은 과거에도 유효했고 미래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불변하는 돈의 속성이 있다. 그것은 바로 돈이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공통의 믿음이라는 것이다. 보다 현학적인 어휘로 풀어쓰자면, 돈은 산술적으로 형상화된 추상적 가치이다. 이때 형상화는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은 것을 특정한 매개체를 통하여 형상으로 나타내는 것을 뜻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돈의 역사를 살펴보자. 우리의 호모 사피엔스 조상들 중 일부는 '동굴 밖의 세계'를 상상할 능력이 있었고, 그들은 조개껍데기나 노란색 돌 덩어리에 가치가 있다는 믿음을 형상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상위 계급의 권력을 이용해 타자에게 이것을 납득시켰고 (혹은 강제하거나), 이렇게 사회적 합의를 얻은 특정 매개체는 교환, 가치 척도, 그리고 가치 저장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돈이라고 일컫는 가상의 실재다. 돈은 상품, 주화, 종이, 플라스틱 카드, 전자 부호의 모습을 띄며 진화해 왔다.

돈은 그 자체만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농담이 아니다. 돈은 인간의 뇌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사회적 발명품에 불과하다. 타자가 없다면 돈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무인도에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돈이라는 개념이 없다. 물론, 돈이 실존하지 않는 것이 그것의 무용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회적 발명품들과 (이를 테면 국가, 사회, 기업, 종교, 인권 등등) 마찬가지로, 돈은 문명의 수레바퀴를 굴러가게 만드는 유용한 동력이다. 돈이 없었다면 인류는 교환 경제에 기반한 문명을 이룩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류가 돈을 발명해내지 못했다면 오늘날 현대인의 생활 수준은 폭력 역병 기아가 만연했던 원시 시대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물론 현대인들이 원시인보다 행복한지 여부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지만.

당신은 아마 혼란스러울 것이다. 돈이 실존하지 않다니? 만약 돈이 존재하지 않다면, 통장 계좌에 찍힌 잔액, 실시간으로 시세가 요동치는 주식 시장, 상점에 붙어 있는 가격표, 지갑에 들어 있는 지폐, 매달 빠져나가는 할부금, 식당에서 지불할 때 카드를 건네는 행위가 어떻게 설명 가능하단 말인가? 돈 때문에 울고 웃고,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인간의 행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한다는 말인가?

돈고 관련한 인간의 ‘비이성적인’ 행태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인지 혁명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인지 혁명은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 발생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체계를 뜻한다. 실존하지 않는 허구를 인지하고 집단적으로 믿는 능력. 바로 이 능력 덕분에 한때 별 볼일 없는 종이었던 인간은 대규모 협력 체계에 기반한 문명을 구축한 뒤 지구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다. 유발 하라리는 말한다. “거짓말과 달리 가상의 실재는 모든 사람이 믿는 것을 말한다. 이런 공통의 믿음이 지속되는 한, 가상의 실재는 현실세계에서 힘을 발휘한다. 슈타델 동굴의 조각가는 사자-남자 수호령의 존재를 진지하게 믿었을지 모른다. 마법사 중 일부는 사기꾼이지만, 대다수는 여러 신과 악마의 존재를 진지하게 믿었다. 대부분의 백만장자는 돈과 유한회사의 존재를 신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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