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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돈의 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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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Mar 13. 2022

자본주의는 유익한 사기다

#3

오늘날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정의, 발전 과정, 작동 방식, 문제점 등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돈에 대해서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자본주의는 개인이 자본을 소유하고 이윤을 추구하는 생산 활동을 하는 것이 가능한 경제 체제이다. 여기서 ‘자본’은 ‘돈’과 구분되는 개념이다. 자본은 생산을 위해 투자되는 돈 혹은 돈으로 치환할 수 있는 경제적 가치를 지닌 재화 및 자원이다. 예컨대, 진시황이 무덤에 묻은 보물은 자본이 아니다. 반면, 빵집 주인이 재산을 투자해 구비해 놓은 오븐은 자본이다. 또한, 비생산적인 피라미드 건설에 막대한 자원을 쏟은 이집트 파라오는 자본가가 아니다. 그러나, 월급을 받고 꼬박꼬박 주식형 ETF를 사는 공장 노동자는 자본가이다.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태동하기 시작한 근대 이전, 세계의 파이는 한정된 것처럼 보였다. 파이를 늘리기 위해 전쟁과 약탈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었지만 이 역시 한쪽이 이득을 보면 나머지는 손해를 보는 제로섬 게임이었다. 무엇보다도 당시 우리의 조상들은 파이를 키우고 이윤을 재투자하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파이의 한계가 정해져 있고 계급이 고착화되어 있는데 뭐 하러 이윤을 추가적인 생산 활동에 쏟겠는가? 당시의 부자들은 과시적인 소비에 집중하며 큰 연회를 열고, 종교 단체를 후원하고, 거대한 건축물을 건설하는 일에 주로 돈을 썼다.


그러나 ‘신용’이 창조되고 이윤이 생산 증대에 재투자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지지를 받으면서 세계의 파이는 급격하게 팽창하기 시작했다. 신용은 대상이 제 때 알맞은 금액을 지불하거나 부채를 상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오늘날 신용에 기반한 금융 시스템에 유의미한 영향을 준 것은 중세시대 유럽의 금 세공업자들이다. 당시 금 세공업자들은 고객들이 금을 맡기면 화폐처럼 거래되는 금 보관증을 내어 주었다. 금 세공업자들은 맡긴 금을 찾아가는 고객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잔꾀를 냈다. 바로 고객이 맡긴 금의 일부를 타인에게 대출해준 뒤 이윤의 일부를 예치자들에게 돌려주고 차익을 챙기는 방식을 고안해 낸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벌 수 있는 상상의 금광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금 세공업자들이 신용을 창조하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금 세공업자 A는 보관하고 있던 금 100 중에서 90을 대출해준다. 90을 대출받은 사람은 80을 사업에 활용하고 10을 다른 금 세공업자 B에게 맡긴다. 10을 받은 금 세공업자 B는 다시 9만큼을 다른 사람에게 대출해준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100의 가치를 지녔던 금이 시중에 풀린 양은 최대 10배까지 늘어날 수 있다. 이것은 오늘날 은행이 지급준비율을 통해 통화를 조절하며 예대마진으로 이윤을 내는 방식과 유사하다. 은행 계좌에 실제로 그만한 돈이 없다는 사실을 처음 접하면 금융 시스템이 폰지 사기인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폰지 사기 덕분에 인류가 바다에 배를 띄우고, 철도를 깔고, 숱한 기술 혁신을 바탕으로 고도화된 현대 문명을 구축할 수 있었다는 점을 우리는 인정할 필요가 있다.


한편,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 역시 파이를 키우는데 일조했다. 근대에 들어 과학 혁명이 발발하고 유럽 제국주의가 번성하면서 세계는 빠르게 진보했다. 과학이 보여준 놀라운 가능성과 신대륙의 발견은 미래가 지금보다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낙관주의는 파이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파이의 총량은 한정된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커질  있다. 그것도  지구적으로! (오늘날 파이의 개념은 지구를 넘어 우주로 확장되었다) 일단 파이가 커지면 모두가 질적으로 개선된 삶을 누리고 행복해질  있을 것이라는 점이 당시 낙관주의자들의 순진한 믿음이었다.


또한, 상인이 새로운 엘리트 계층으로 득세하면서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는 더욱 공고해졌다. 과시적인 소비에 돈을 탕진하던 전통 귀족과는 달리 상인은 각종 금융 장치를 활용해 돈을 불리고 이윤을 생산에 재투자하는데 능했다. 상인은 경제 성장의 슬로건을 외치며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 지배 세력으로 부상하는 데 성공했다. 큰 부를 쌓은 상인은 경제 성장에 기여한 영웅으로 추앙받으며 전례 없는 영향력을 발휘했는데 이러한 경향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신용과 낙관주의, 그리고 경제 성장이라는 신화를 주창한 상인 계급의 부상이 없었다면 자본주의는 이토록 빠르게 자리잡지 못했을 것이다. 문제는 자본주의가 파이의 크기를 팽창시키는 데는 주요했지만, 파이의 '충분함'을 가늠하고 적절히 분배하는 데는 별 효과가 없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생산과 소비를 멈추지 말 것을 지시한다. “그만하면 충분히 됐어, 이제 쉬자” 자본주의는 이렇게 말하는 법이 없다. 경제 성장이라는 목적지를 향한 질주는 쉴 새 없이 계속되어야 한다.


불평등도 자본주의가 능숙하게 해결하지 못한 문제 중 하나이다. 세계 불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지역을 막론하고 지난 40년간 경제적 불평등은 일관되게 심화되어 왔다. 오늘날 상위 0.1%와 1%는 전 세계 부의 25%, 43%를 각각 차지하는데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과 자신들을 구분 지으며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다. 반면, 지금도 가난에 시달리며 굶어 죽는 아이들과 실직해서 거리로 내몰린 노숙자들이 존재한다. 지구 한 켠에서는 너무 많이 먹어 비만으로 죽는 사람이 있지만, 반대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사람이 존재한다. 이처럼 냉혹한 현실은 일단 파이를 키우고 나면 모두가 과거 대비 풍요로운 삶을 살 것이라고 믿었던 낙관주의자들이 약속한 미래가 분명 아니다.


열심히 일하는데도 불구하고 왜 살림살이가 좀처럼 나아지지 않을까? 자본주의 체제를 살아가는 노동자 계층이라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21세기 자본>의 저자 피케티는 단순한 수식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명쾌하게 제시했다. 바로 “r (자본수익률)>g (경제성장률)” 즉, 역사적으로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았으며 이는 심각한 불평등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일반 노동자의 근로 소득 상승률이 자본가들이 벌어들이는 자본소득 상승률을 (임대 소득, 투자 소득, 배당 소득 등) 초과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이유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돈이 돈을 번다. 월급쟁이는 결코 부자가   없다. 모두가  규칙을 알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동자 계층은  규칙을 알고도 제대로 실천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노동 시간, 부채 상환 부담, 낮은 근로 소득, 금융에 대한 무지와 같은 요인 때문에 충분한 자본을 형성하고 자본가로 거듭날 여건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적으로 노동자에서 자본가로 변신하고 계급 상승을 실현한 사례들이 있다. 그러나 예외가 원칙이  수는 없는 법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문제는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 덕분에 인류의 삶이 진보했는가? 경제적 관점에서 보자면 그렇다. 월드뱅크에 따르면, 2020년 세계 GDP는 84.7조 달러로 이는 1960년 1.4조 달러 대비 약 61배 성장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2020년 세계 1인당 GDP는 10,918달러로 이는 1960년 457달러 대비 약 24배 성장한 수준이다. 60년 만에 파이의 총량과 개인이 가져가는 몫이 비약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조상 대비 물질적으로 훨씬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는데 이는 자본주의가 선물한 번영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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