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머리와 돈 버는 재주
#10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도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가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 대해 개탄하며 남긴 말이다. 실로 그렇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순종적인 노동자’를 사회에 배출하는데 최적화되어 있다. 전통 교육 방식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정해진 매뉴얼을 따르는 것에는 (이를 테면, 선생님 말 잘 듣기, 높은 시험 점수받기, 남들이 선망하는 학교에 입학하기, 스펙 쌓아서 회사에 취직하기, 자격증 따기 등등) 능숙하다. 하지만, 비판적인 사고를 하고 정답이 없는 일을 능동적으로 처리하는 데는 익숙하지 못하다. 고도로 발달한 AI 기술이 적용될 미래 사회에는 이런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없어질 것이라는 점이 미래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한국 학생들이 쓸데없는 일에 인생을 낭비하는 이유는 대개 기성세대 때문이다. 어른들은 공부를 잘하는 것과 성공을 동일시 여기며 아이들의 인생에 지나치게 간섭하려 든다. 그들은 명문 학교에 입학하고 스펙을 쌓은 뒤 남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갖는 것을 바람직한 삶의 정답으로 설정하고는 아이들에게 이를 따를 것을 강요한다. 실제로 어른들의 말을 고분고분 듣고 모범생으로 자란 아이는 자라서 언제가 깨닫기 마련이다.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학교 성적과 성공은 그다지 큰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을. 그리고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것과 돈을 잘 벌고 다루는 능력은 전혀 별개의 것임을 말이다.
학창 시절 공부 잘하던 그 친구들은 뭐 하고 있을까? 주변을 보면, 공무원이 되었거나, 기업에 취직했거나, 전문직이 되었거나 셋 중 하나로, 대체로 본인의 노동력과 시간을 팔아먹고사는 월급쟁이 신세이다. 업계와 전문성에 따라 처우가 상이한 것은 사실이지만 월급쟁이의 한계는 명확하다. 부의 방정식은 곱셈의 법칙을 따르는 법인데, 월급쟁이는 덧셈의 법칙 (+ 더 많은 근로 소득, - 지출 통제)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수저가 아닌 이상, 공부 잘했던 모범생들은 졸업 후 일반적으로 돈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은 듯하다. 남들보다 연봉이 좀 더 높다고 해서 우쭐해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고연봉을 받는 직업은 강도 높은 근무 시간, 경쟁적인 조직 문화, 오랜 수련 기간, 짧은 직업 수명, 높은 고정비 지출 등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공부를 잘하던 친구들 중에서 자본가가 된 사례도 있다. 드물기는 하지만, 명문 학교를 졸업하거나 혹은 중퇴해서 자기 사업을 하거나 투자자로 전향해서 성공한 경우이다. 그들은 남들이 맹목적으로 스펙을 쌓는 사이에, 어떻게 하면 돈이 꽃 피는 나무를 심고 가꿀 수 있을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숱한 시행착오를 겪은 뒤 마침내 자본가가 되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비교적 유리한 가정환경에서 태어났고, 여타 모범생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배짱과 승부사적인 기질이 있다. 게다가 그동안 수많은 경쟁에서 승리해왔기 때문에 자신감이 넘친다. 이런 사람들이 특히 경계해야 하는 것은 ‘오만’인데, 이것만 잘 통제하면 그들은 부자로 ‘남을’ 수 있다.
공부 머리와 돈 버는 재주는 상관성이 있을까? 다양한 사례를 접하며 내가 내린 결론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이다. 교과서를 달달 외우고 수업 시간에 필기를 잘하고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능력은 돈 버는 재주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 능력치가 높은 모범생이 비판적 사고 능력과 상상력이 부족할 경우, 그는 ‘똑똑한 바보’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똑똑한 바보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스펙은 준수한 편이지만 (대표적인 경우가 학벌이나 직장이다), 인습에 사로잡혀 스스로 생각하고 창의적으로 행동하는 능력은 결여되어 있는 자를 의미한다. 똑똑한 바보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발견할 호기심이 없을뿐더러, 설령 그 길을 발견하다고 하더라도 이를 탐험할 용기가 없다. 대개의 경우, 똑똑한 바보는 순종적인 노동자가 되어 평생 돈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신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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