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원고 #3
돈에 울고 돈에 웃은 적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때로는 그 기억이 너무나 생생해 평생 잊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돈 때문에 슬펐던 기억과 기뻤던 기억 모두 나의 무의식에 퇴적되어, 훗날 돈에 관한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크고 작은 영향을 주었다. 돌이켜보면 완전히 나쁘거나 완전히 좋은 일은 없었다. 모든 순간은 지나갔고 돈 때문에 느꼈던 희로애락의 감정 역시 희미 해졌다.
돈에 울고
부모로부터 선물 받은 적당한 결핍 덕분에 나는 꽤 어린 나이 때부터 돈에 관해 균형 잡힌 현실 감각을 가질 수 있었다. 바로 인생이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를 무시한 것이다. 가령, 나는 왜 금수저가 아닐까? 왜 복권에 당첨되지 않는 것일까? 왜 다른 부자처럼 펑펑 소비하지 못할까? 등과 같은 고민을 하며 우울감에 빠진 적이 없다. 대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변수를 점검하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만 집중했다. 그 결과, 돈 때문에 큰 슬픔을 느낀 적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앞으로 살면서 잃을 것보다는 얻을 것이 많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 때문에 슬픔을 느꼈던 순간이 간혹 있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과소비를 해서 곤란한 상황에 처한 경험이다. 막 성년이 되었을 때, 나는 스스로 돈을 벌어본 적도 제대로 써 본 적도 없었다. 따라서 과소비라는 개념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당시에 유행하던 브랜드 옷을 나는 몹시 사고 싶었는데, 가격이 예산에서 한참 벗어난 수준으로 비쌌다. 하지만 나는 별생각 없이 카드를 긁었고 카드 값을 내자 생활비로 쓸 돈이 없었다. 말 그대로 돈이 한 푼도 없어서 수 주 동안 두문불출하며 지출을 최소화했던 기억이 있다. 바보처럼 고작 옷을 사는 대가로 일상생활을 포기한 것이다.
최초의 과소비. 이 경험은 내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바로 수입과 지출을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돈을 쓰다 보면 순식간에 늪에 빠질 수 있다는 것. 특히 빚을 져서 과소비할 경우 늪에서 빠져나오기 정말 어렵다는 것. 이후 나는 소비를 할 때 수 차례 자문해 보는 버릇이 생겼다. 반드시 필요한 소비인가? 재무 상황을 고려했을 때 소비할 여력이 되는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소비 충동을 조절하지 못해 곤란한 일을 많이 겪는다. 나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저렴한 수업료를 내고 과소비를 지양하는 법을 배운 것을 행운으로 생각한다.
한편, 이번 경험은 과소비 보다 훨씬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2020년 3월, 코로나 바이러스 공포가 시장을 지배하면서 주식과 암호화폐 가격이 모두 폭락했다. 특히 암호화폐 가격 하락이 심했는데, 당시 나의 투자 자산의 대부분은 비트코인에 집중되어 있었다.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비트코인의 가격이 50프로 이상 하락하고 각종 블랙스완이 발생하는 것을 지켜보며 망연자실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처음으로 비트코인 가격이 0에 수렴할 수 있겠다는 공포를 느낀 순간이었다.
투자 시장에 오랜 시간 참여하면서 파산할 뻔한 적이 딱 한 번 있는데 이때가 바로 그때이다. 힘겹게 고생해서 번 돈이 순식간에 증발하고 있는 순간이었다. 당시에 인생이 끝난 것 같고 내장이 뒤틀리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돈을 잃는 것도 슬프지만 심사숙고해서 내린 판단이 (파산의 공포를 느꼈을 당시 나는 투자와 커리어 모두 암호화폐에 집중한 상황이었다. 주변 사람 모두가 말렸지만 나는 마음의 소리가 이것이 정답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보란듯이 결과로 입증하고 싶었다) 결국 틀린 것으로 결론이 날까 두려웠다. 짧은 시간에 인지부조화, 자기혐오, 후회, 절치부심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면서 돈의 파괴력을 실감했다.
마음속에 차오르는 공포감을 억누르며 비트코인을 추가 매수했던 기억이 있다. 왜 비트코인에 투자하고 암호화폐 업계에 투신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자문했고, 코로나 바이러스와는 무관하게 비트코인의 펀더멘털이 여전히 견조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약 내가 틀려서) 지금 파산할 운명이라면 “한 번 바닥까지 가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보자”라는 치기 어린 마음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과감한 의사결정을 하길 잘했다. 당시 추가 매집한 비트코인을 훗날 매입가 대비 10배가 넘는 가격에 매도했기 때문이다. 결과가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파산할 뻔한 당시에 느꼈던 감정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이때의 경험은 훗날 과욕을 부리지 않고 알맞게 리스크 관리를 하는 태도에 큰 영향을 주었다.
돈에 웃고
돈에 웃었던 기억은 명확하다. 바로 돈을 벌고 만족스럽게 소비했을 때이다. 돈 때문에 웃는 경우에 있어서는 특히 첫 경험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인간의 뇌가 만족을 위해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에, 돈 때문에 느끼는 기쁨은 대개 첫 경험에 극대화되었다가 금세 감퇴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돈을 벌고 처음으로 집이나 차를 살 때는 정말 기쁘다. 혹은 처음 고급 기호를 소비할 때 역시 (명품, 파인 다이닝, 해외여행, 고급 호텔 등등) 만족감은 상당하다. 그러나 이런 경험이 반복되다 보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단순히 돈이 많다고 해서 항상 웃기만은 어려운 이유이다.
실제로 나의 경우에도 돈 때문에 웃었던 것은 대체로 첫 경험에 기인한다. 예를 들어, 처음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었을 때, 처음 취업해서 월급을 받았을 때, 처음 투자로 돈을 벌었을 때, 처음 고급 기호를 소비했을 때, 처음 집을 샀을 때, 처음 부모님에게 고가의 제품을 선물했을 때 등등. 이 당시 느꼈던 기쁨은 물론 시간이 지나고 다소간 희석되었다. 그래도 당시의 첫 경험은 “그래 이 맛에 돈 버는 거지”라는 동기부여를 했던 유쾌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한편, 첫 경험이 지난 후에도 돈 때문에 느끼는 기쁨이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투자에 성공했을 때이다. 투자로 돈을 버는 것은 항상 즐겁다. 특히 다수의 생각과 역행해서 투자에 성공했을 때의 기쁨은 더 크다. 나는 투자가 체스, 바둑처럼 일종의 지적인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투자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은 투자가 성공했을 때 돈이 주는 경제적 만족감뿐 아니라 “내 생각이 맞았다”는 지적 만족감 역시 대단히 소중하게 여긴다. 투자라는 지적인 스포츠에서 꾸준히 승리하는 것은 몇 번의 경험이 반복되어도 결코 희석되지 않을 즐거움이라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
사이다 경제를 운영하고 있는 출판사 경이로움과 계약을 맺고 <어바웃머니>를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자세한 내용은 책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바웃머니> 온라인 서점 링크
교보문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0747913
예스24: http://www.yes24.com/Product/Goods/117015854
알라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9309656
아래는 책을 리뷰하는 제 유튜브 링크입니다.
귀차니즘으로 업데이트가 빈번하지는 않지만 수명이 긴 콘텐츠 위주로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6o9KC93yBz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