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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돈의 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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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Dec 30. 2022

달러의 종말

신규 원고 #4

드람 (아르메니아의 화폐), 콜론 (코스타리카의 화폐), 렘피라 (온두라스의 화폐)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은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이외에도 오늘날 전 세계에 존재하는 150 종이 넘는 화폐들을 우리는 대부분 모른다. 왜냐하면 달러를 중심으로 유로, 엔, 파운드, 프랑, 위안 등 지극히 소수의 화폐만이 국제 사회에서 인지도가 있고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특히 기축 통화인 달러의 영향력은 지배적이다. 흥미로운 점은, 달러가 기축통화가 된 지 100년이 채 되지 않은 이 시점에, 달러의 종말이 도래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달러의 종말에 대해 알아보기에 앞서 달러가 어떻게 기축 통화가 되었는지에 관한 역사를 먼저 알아보자.


달러는 어떻게 기축통화가 되었을까

달러가 기축 통화가 된 배경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즈음인 194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차 세계 대전 종전을 앞두고 44개국 정상은 미국 브레튼 우즈로 모였다. 당시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주요국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어떻게 재편하고 운영할 지에 대해 논의했다. 당시 미국은 영국을 능가하는 패권국이자 세계 최대 금 보유국이었기에, 협상을 원하는 방향으로 주도할 힘이 있었다. 논의 결과, 주요국은 미국 달러를 기축통화로 한 금본위제도 (금 1온스와 1달러의 교환 비율을 1:35로 고정) 및 IMF(국제 통화 기구), IRBD(국제 부흥 개발은행) 설립 등에 합의했다. 미국의 달러가 공식적인 기축 통화로 데뷔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달러의 기축 통화 현상은 고질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트리핀의 딜레마’라 불리는 이 문제는 다음과 같다. 만약 달러가 전 세계에 널리 퍼지고 공급량이 늘어나면 미국의 무역적자가 심화된다. 이에 따라 달러가치가 하락하면 기축 통화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달러 기축 통화 체제가 붕괴될 수 있다. 반대로 미국이 무역적자를 허용하지 않고 달러 공급을 줄이면 달러가 기축 통화의 본래적 역할을 하지 못한다.


브레튼 우즈 체제는 오래가지 않았다. 베트남 전쟁, 미국의 만성적인 적자 등의 이슈로 달러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금 태환 능력에 의문을 품은 유럽은 달러를 불신하기 시작했고 달러를 금으로 교환해줄 것을 미국에 요청했다. 브레튼우즈 체제 지속에 한계를 느낀 미국의 대통령 닉슨은 급기야 1971년 달러와 금태환을 중지할 것을 선언했다. 화폐는 이제 고정환율제에서 변동 환율제로 변하게 되었고 금본위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브레튼 우즈 체제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다.


브레튼 우즈 체제가 붕괴한 뒤에도 달러는 기축 통화 지위를 유지했다. 바로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페트로 달러 체제를 통해서다. 미국은 석유 부국 사우디 아라비아에 군사력을 제공한 대가로 석유 결제 화폐를 달러로만 하는 딜을 체결해 달러의 수요를 늘리는 데 성공했다. 당시 협상을 주도한 미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는 지정학과 돈의 역학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던 것이 틀림없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식량을 지배하는 자는 사람을 지배하고, 에너지를 지배하는 자는 대륙을 지배하며, 돈을 지배하는 자는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


여기까지가 미국의 달러가 오늘날 기축 통화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배경이다. 사실 달러에 대해서는 별도의 책에서 통째로 다룰 정도로 내용이 방대하기 때문에, 위에 서술한 내용은 구체적인 맥락이 생략된 기초적인 정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달러에 관해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화폐뿐 아니라 역사, 국제 정치, 지정학 관점에서도 포괄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달러에 대해 자세히 공부해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헨리 키신저, 레이 달리오, 니얼 퍼거슨, 피터 자이한, 새뮤엘 헌팅턴, 제임스 리카즈, 사이페딘 아모스의 저서들을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달러의 종말은 오는가

미래에 달러는 기축 통화의 지위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종말을 맞을 것인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몇 가지 변수들을 점검하고 가능한 시나리오를 도출해 내보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우리는 아래의 주제들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 세계는 여전히 달러를 원하는가?

2) 달러 외 대안이 있는가?

3) 미국의 패권국 지위는 유지될 것인가?

4) 세계 질서에 어떤 변화가 있는가?

5) 혁신 기술의 발전이 미칠 영향은 무엇인가?


먼저 달러에 대한 세계의 수요를 살펴보자. 달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싶어 하는 수요는 분명히 존재한다. 왜냐하면 달러 중심의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 불만이 많은 중국, 러시아 등과 반미 국가 연합이 있을 뿐 아니라, 달러 자산의 기대수익률이 매력적이지 않다고 보는 시각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IMF의 자료에 따르면, 21세기 들어 각 국의 외환보유액에서 달러 비중은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이다. 2000년 세계 외환 보유액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70%를 상회했지만 22년 기준 해당 수치는 60% 미만으로 감소했다. 이는 세계가 달러 외 대체 화폐로 (특히 중국을 비롯한 개도국) 수요를 다변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달러의 대안은 있는가? 현재로서는 없다. 유럽 연합의 유로, 영국의 파운드, 중국의 위안, 일본의 엔 등 주요국 화폐 모두 달러의 아성을 넘기에는 역부족이다. 실제로 패권국 지위를 두고 미국과 팽팽하게 힘 겨루기를 하고 있는 중국의 경우, 야심 차게 위안의 국제화를 추진했으나 아직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외환 보유액, 자본·무역거래, 외환시장 등의 측면에서 위안이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2-3% 수준으로, 위안은 결코 달러의 도전 상대가 되지 못한다. 한편, 국가가 가치를 보증하는 법정 화폐가 아닌, 민간이 만든 암호화폐가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암호화폐 역시 많은 한계점을 가지고 있기에 (대표적인 문제는 가격 변동성이 크다는 것이다) 현재는 화폐로 쓰이기보다는 투기성 자산으로 기능하고 있다.


달러가 기축 통화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여부는 미국의 패권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기축통화는 곧 패권국의 화폐이기 때문이다. 유럽이 대항해시대의 포문을 연 이후,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은 패권국으로 군림했고 각 국의 화폐는 기축통화 역할을 했다. 눈에 띄는 점은, 200년 이상 패권국의 지위를 유지한 국가는 없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200년 이상 기축 통화의 지위를 유지한 화폐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미국이 영국을 제치며 패권국으로 자리 잡고, 달러가 기축통화의 지위를 획득한 것은 20세기에 벌어진 일이다. 20세기에 미국은 경쟁 관계에 있던 소련과 일본의 도전을 물리치고 기축 통화국의 지위를 수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21세기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역사가 반복된다고 가정하면,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쩌면 미국과 달러의 시대가 저무는 것을 목격할지도 모른다. 특히 빠르게 부상하는 중국을 효과적으로 견제하지 못하고, 미국 내부의 문제들을 – 천문학적인 국가 부채, 인플레이션, 양극화, 정치적 불안 등 – 원만하게 해결하지 못하면 달러의 종말은 충분히 실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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