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의 사표에는 이유가 있다

요즘 젊은 것들의 사표 외전 (당신은 저평가돼있다#1)

어릴 적 학교에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배울 때면 변변한 자원도 없는 참으로 작디작은 나라에서 다사다난한 일들을 거쳐 이렇게 까지 성장한 것에 대해 놀라움을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남북 전쟁 이후 20세기까지 고성장을 구가하던 대한민국은 필리핀의 원조를 받던 빈국에서 당당히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 되었고, 그 배경에는 정말 부지런히 살아오며 산업의 역군으로 활약해 오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개인의 노력 및 성취 여하에 따라 당신의 삶이 180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입니다. 게다가 국가가 한창 성장을 거듭할 때니 이 곳 저곳에서 기회가 얼마나 많았겠어요. 수많은 성공신화들이 매스컴을 타면서 평범한 사람들에게 “누구나 열심히 살면 할 수 있다”라는 희망을 주기 시작합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삶이란 내가 얼마든지 설계해나갈 수 있는, 잘 해내고 싶은 무엇이었습니다. “열심히 살면 반드시 보상을 받는다” “근면하고 성실해라”, “개천에서 용 나온다”, “근검절약이 부자 되는 지름길”이라는 등의 명제들이 참으로 통하던 시대였습니다. 당시 대학을 나왔던 사람들은 쉽게 취업을 할 수 있었고,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은 엄청난 프리미엄을 받으며 유학파 대접을 톡톡히 받을 수 있었습니다. 고시를 통과하는 것이 인생을 바꾸고 상류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로 여겨졌었고 실제로 수많은 개천 출신 피라미들이 고시를 통해서 용이 됐었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f (개인의 노력 및 성취)= 성공” 성공 방정식이 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사람에 대한 적정한 평가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한 개인이 보통의 사람들보다 10% 더 좋은 성과를 내면 그 이상의 프리미엄 대우를 받았던 시대였으니 다들 이를 악물고 잘 살아보고자 열심히 살던 시대였고 그것이 대한민국을 성장시킨 원동력이었습니다. 많은 경우,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좋은 대학교에 가는 것이 향후 성공할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방법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많은 학부모들이 기를 쓰고 자식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고자 사교육에 열을 올렸었죠. 대한민국의 높은 교육열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학군 차이와 주민들의 소득 수준 차이는 오늘날 강남의 높은 땅값을 부양하는 중요한 근간입니다.


저를 비롯해서 이 글을 읽고 있는 20-30대 분들은 대개 이러한 시대를 거쳐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진 부모들 밑에서 자란 분들일 것입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 되거라”라는 말을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어른들에게 듣고 자란 분들입니다. 상당수는 어릴 때부터 주위 또래들과 경쟁하는 것에 익숙하며 크고 작은 성취를 이뤄 이제는 어엿히 성인이 된 분들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봅시다. 성인이 된 이후 자신이 저평가받고 있다고 느낀 적이 없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조심스럽게 추측해보건대, 제 생각엔 굉장히 적은 수의 행운아들만이 자신이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끼거나 혹은 과분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이런 분들은 무소유의 깨달음을 실천하시는 분들이거나 정말 끝내주는 행운아입니다) 느낄 것입니다. 물론 모두가 고평가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보통의 사람들보다는 어떤 면에서건 조금이라도 뛰어난 사람이 달콤한 과실을 맛보며 프리미엄을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이러한 점이 “f (개인의 노력 및 성취)= 성공” 성공방정식이 가지는 아름다움이자, 삶을 열심히 살게끔 하는 동기부여가 됩니다. 개인의 노력 및 성취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같은 평가를 기대하는 것은 공산주의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요즘 세대는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어떤 노력을 하고 무엇을 성취했든지 간에, 자신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며 저평가를 받고 있다는 인식이 보편적인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세대 간 변화 (출처: 「저성장 시대, 기적의 생존전략,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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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은 아마 대학교 입학 전에는 본인과 부모가 희망하는 대학교에 들어가면 성공으로 가는 길에 안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며, 남들과 경쟁하며 길고 긴 레이스를 달려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게 웬 걸, 입학해도 레이스는 끝나지 않아 보입니다. 저학년 때부터 시작된 스펙 쌓기, 토익 토플 등의 외국어 공부, 용돈 벌기 위한 아르바이트 등은 끊임없이 대학생들의 마음을 짓누릅니다. 일부 학생들의 경우 대학교를 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좀 더 나은 대학을 가고자 재수, 반수, 편입을 준비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또한 고학년들의 경우 취업이 잘 되지 않아 계속 졸업을 미루며 대학을 7년-8년 다니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저학년 때부터 안정적인 것처럼 보이는 고시를 비롯한 국가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며 매일 도서관에 출근도장을 찍으며 사는 학생들도 많지만, 이런 모습이 분명 자신이 꿈꿔왔던 대학생의 모습과는 어느 정도 괴리가 있을 것입니다. 분명 지금의 대학 가는 과거의 낭만이 있던 캠퍼스의 모습을 찾기 힘듭니다. 대학 졸업장의 가치는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더 이상은 대학 졸업장이라는 간판으로 직업을 보장해주던 시대가 아니기에 일부 학생들은 학생 신분을 유예하고자 뚜렷한 동기 없이 대학원의 문을 두드리지만, 졸업한다고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현상은 명문대를 다니는 학생, 유학생, 인기 많은 과에 다니는 학생을 막론하고 오늘날 대학생들이 보편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입니다.


학교에서 벗어나 경제활동을 하는 사회인이라면 사정이 달라졌을까요? 우리나라에 경제활동인구가 대략 2500만 명 정도인데, 이 중에서 약 70%가량 이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라고 하니 경제활동 인구의 대부분의 직장인이고, 직장인이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경제활동을 하는 평범한 사회인의 모습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취직해서 돈을 버는 직장인이 됐다고 합시다. 힘들게 성취한 만큼 초기에는 자신의 집단 혹은 직업에 자긍심을 가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이유 (잦은 야근 및 주말근무, 낮은 성취 혹은 비전 없는 직무, 적은 급여, 잦은 회식문화 등)로 직장인은 지쳐갑니다. 특히나, 월마다 통장에 꽂히는 급여는 직장인에게는 고된 한 달을 버티게 해주는 단비와도 같은 것이고 노동의 주된 이유입니다. 실제로 NH투자증권 100세 시대연구소의 2016 대한민국 직장인 보고서의 조사에 따르면, 87%의 답변자들이 직장을 다니는 목적을 생활비 마련 때문이라고 응답했습니다. 게다가 직장을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도 다른 요소 대비 (회사의 성장성, 노동시간, 정년보장 등) 월급이 압도적인 비율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직장을 옮기고 싶어 하는 가장 큰 이유도 월급이며, 직장인들이 가장 기쁠 때는 금전적인 보상 (월급이 인상되거나 보너스를 받을 때)을 받을 때입니다. 마틴 루터가 직업을 하나님의 소명으로 설파했지만, 대다수의 한국사람들에게 직업관은 밥줄과 더욱 연관이 깊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직장인들은 자신이 합당한 대우를 받으며 일한다고 생각할까요?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직장인들이 자신이 저평가받고 있다고 느끼며 적은 급여 및 부족한 처우에 불만을 느끼며 새로운 기회를 모색합니다. 2016년 9월에 방송한 SBS 스페셜 「요즘 젊은것들의 사표」 에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을 다니다가 사표를 던진 청년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신입사원 100명 중 약 27명이 3년 내에 퇴사한다고 합니다. 그들이 20년 넘게 공을 들여 성취한 것과 (치열한 입시를 거쳐 따낸 대학 졸업장과 수많은 자격증, 해외연수, 인턴경험 등) 잠재력에 비하면, 직장인으로 사는 것이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는 길이 아니라고 생각해 퇴사를 결심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수많은 젊은 직장인들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실지도 모릅니다. 우리 때는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도 으쌰 으쌰 하며 살아왔는데 요새 친구들은 헝그리 정신이 부족하다. 맞는 말인지도 모릅니다. 분명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시대에서 살고 있습니다. 더 이상 세계대전과 같은 전쟁터에 동원되지 않아도 되고, 절대금액 기준으로 대부분의 나라 GDP는 상승했습니다. 게다가 배움의 기회도 많아지고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무료로 여러 가지 교육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고 의학도 발달해서 평균수명도 길어졌으며, IT기술의 발달로 전 세계가 연결된 지구촌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도 불구하고 사는 것이 점점 팍팍해지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 비단 저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저는 인권운동가도 아니고 사회학자도 아니지만, 분명 현대인은 점점 더 각박한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를 희망의 부재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조금은 부족하고 넉넉하지 않아도 한 개인이 열심히 살고 성취한다면 무언가를 해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고 그에 따른 보상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교육-취업-결혼-육아의 프레임을 평범하게 완수한 사람들은 큰 부자가 아니더라도 중산층으로서 먹고 살만큼의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세계경제는 저성장, 저소득, 저금리가 만연한 뉴 노멀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과거에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성취할 수 있었던 평범한 사회화의 과정들이 요즘 “헝그리 정신없는 젊은이”들에게는 버거워 보입니다. 지나친 사교육 열풍과 함께 입시경쟁은 날로 심해지고, 좋은 대학을 나와도 취업을 하지 못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합니다. 그뿐인가요 어렵게 취업을 하고 연애를 하더라도 결혼할 자금이 없어 결혼 시기를 계속 늦추거나 아예 포기해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게다가 자녀 한 명을 낳아서 양육하는 것도 버거워 예전처럼 다복한 가정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계속해서 줄어드는 연금에 노후 준비도 막막하기만 합니다.


우울한 이야기입니다만 어려운 환경 속에 열심히 노력을 해도 안 된다는 생각은 이미 지역을 막론하고 젊은이들 사이에서 지배적입니다. LG 경제연구원은 세계 가치관 조사협회에서 2010~2014년 동안 실시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2015년에 「글로벌 5개국 20대의 가치관 비교」라는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독일 5개국의 20대 젊은이들의 대다수는 다 같이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부는 모든 사람에게 충분할 만큼 증대된다’라는 설문에 5개국 모두 40% 이하의 응답자만이 긍정적으로 대답했습니다 (한국: 22.1%, 중국:38.9%, 일본: 11.5%, 독일 16.5%, 미국: 27.8%) 그나마 중국만의 젊은이들이 다른 나라에 비하면 좀 더 희망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셈인데, 이는 이미 고성장기를 거쳐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다른 나라에 비해 여전히 중국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인상적인 주제는 ‘열심히 일하면 생활이 나아진다’라는 설문인데 예상대로 각국의 젊은이들은 노동과 그에 따른 적절한 보상에 대해 전반적으로 회의적 인태도를 보였습니다. 이 설문에서도 역시 중국만이 과반수가 넘는 응답자가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고 나머지 국가는 과반수 이하만이 그렇다고 답하였습니다. (중국: 54.3%, 미국: 46.3%, 한국 43%, 독일 39.6%, 일본 24.8%). 열심히 일해봤자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희망의 부재가 각국의 젊은이들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부는 모든 사람에게 충분할 만큼 증대된다’에 긍정적으로 답한 20대 응답자 (출처: 세계 가치관 조사협회, LG경제연구원)


‘열심히 일하면 생활이 나아진다’ (출처: 세계 가치관 조사협회, LG경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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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헬조선, 88만 원 세대 (최저임금으로 착취당하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대부분이라 직업시장을 떠도는 20-30대를 의미), 열정 페이, N포세대 같이 우울한 개념 또한 비단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유럽에는 88만 원 세대와 비슷한 개념으로 1000유로 세대라는 책이 일찌감치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높은 유럽의 생활비에도 불구하고, 1000유로 (한화로 대략 120-130만 원 수준) 수준의 낮은 월급을 받아가며 살아가는 20-30대를 빗댄 표현입니다. 일본에는 사토리 세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토리는 일본어로 깨달음을 뜻하는데, 취업난, 저임금, 높은 집값, 등의 암울한 현실을 깨닫고 욕심을 버린 젊은이들을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사토리 세대는 물욕에 큰 관심이 없고 (일부의 경우 어쩌면 현실의 제약 때문에 물욕에 관심이 없는 척, 자기암시를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냉엄한 현실을 수긍하며 소비를 지양합니다. 대만 젊은이들은 자신의 나라를 귀도 (鬼島, 귀신의 섬)으로 부르는데 흡사 헬조선과 비슷해 보입니다. 대만의 집값과 임금 수준의 차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인데, 2014년 기준 평범한 소득 수준의 대만 사람이 한 푼도 쓰지 않고 16년을 모아야 대만 타이베이에 평범한 가격의 집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유엔에서 권고하는 적정 수준은 3년에서 5년 수준입니다. 참고로 서울의 경우는 8.4년입니다. 이처럼 낮은 소득과 말도 안 되게 비싼 부동산 가격에 대만 젊은이들은 깊은 좌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한국의 헬조선과 일본의 사토리 세대 (출처: 헤럴드 경제)

한국의 N포 세대가 포기하는 것들 (출처: 사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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