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에게 희망을 (당신은 저평가돼있다#2)
경제학을 배우지 않은 사람이더라도 어떤 재화나 서비스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균형점에서 형성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체화하고 있습니다. 많은 수요가 있거나 공급이 적으면 가격이 올라가게 마련이고 반대로 수요가 없거나 공급이 많으면 가격은 하락합니다. 예를 들면, 당신이 아이스크림 가게를 열었다고 합시다. 더운 날씨에 손님들이 많아 가게가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많은 수요), 당신과 비슷하거나 더 나은 아이스크림을 제공하는 경쟁가게가 없다면 (적은 공급), 가게 매출은 안정적으로 유지되겠죠. 반대로 추운 날씨로 인해 손님들이 많지 않거나 (적은 수요), 비슷한 제품을 파는 아이스크림 경쟁 가게들이 우후죽순 생긴다면 (많은 공급) 높은 매출을기대하기는 어렵겠죠. 최악의 상황은 경쟁 가게들이 하나둘씩 생기면서 더 많은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아이스크림 가격을 낮춘다면, 손님을 뺏기거나 당신도 같이 가격을 낮춤으로써 결과적으로는 매상에 안 좋은 영향이 갈 것입니다.
가격을 결정하는 수요와 공급 (출처: 천재교육 참고서)
갑자기 웬 수요와 공급이냐고요? 많은 사람들이 저 평가를 받는 주된 배경을 이해하려면 인간의 노동력이라는 상품에 대한 수요-공급의 법칙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쉽습니다. 자본주의 시대에 토지, 기계 등의 자본을 집적하고 있는 자본가가 아니라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노동자로서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 제공하고 임금을 받아 의식주를 해결합니다. 그런데 저성장이 장기화되는 요즘 같은 시대는 인간의 노동력에 대한 초과공급 (공급이 수요보다 많은 상황)은 피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우선 수요의 측면에서 보자면, 불경기 속에서 기업들도 채용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투자도 활발히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위기 경영이니 비상경영이니 하면서 직원들을 해고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수요는 줄은 반면, 노동의 공급이 줄어들어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교육의 문턱이 낮아진 덕분에 학위를 가진 사람들은 시장에 넘쳐나고 해외의 유수 대학을 나온 사람들도 과거에 비하면 눈에 띄게 많아졌습니다. 앞서 아이스크림 가게의 예를 들어 수요와 공급 및 가격에 대해서 짧게 말씀드렸듯이,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메커니즘에 의해 결정되고 초과공급은 결국 가격의 하락을 이끕니다. 즉, 노동력의 과잉공급은 결과적으로 인간의 몸값을 낮춰 공급자인 근로자들이 제대로 된 대우를 받고 일하기 어려운 상황을 초래합니다. 이게 비단 평범한 직장인의 문제일까요? 공무원이 되면, 전문직이 되면, 해외 MBA를 가면, 석·박사 학위를 따면 달라질까요? 그 분야에 먼저 진입한 5년 내외 선배들에게 물어보세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자신들은 초기에 자리 잡은 세대와는 다르다고, 시장은 포화됐으며 좋은 시절 갔다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분명 노동력의 초과공급은 인간 노동에 대한 저평가의 보편화를 야기했고 쉽게 풀 수 없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입니다. 하지만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고 사회에 불만을 가지기 전에 저는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이러한 결과는 저평가를 받는 당사자인 본인들이 (혹은 그들의 부모나 주변 사람들) 초래한 것이기도 합니다.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성공이라고 일컬어지는 프레임은 아래와 같이 너무나 단순합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간다 → 치열하게 경쟁하며 남들이 알아주는 기업에 취업하거나 전문 자격증 (의학, 법률 등)을 딴다→ 연차가 쌓이며 안정적으로 승진하고 결혼하며 주택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한 후 차근차근 갚아나간다 → 노후에는 은퇴한 후 자신의 자산을 안정적으로 지키면서 연금 및 투자수익 등을 통해 생활한다.
어때요 익숙하지 않나요? 많은 사람들이 (혹은 그들의 부모가) 지향하는 평범하면서도 어려운, 성공한 인생이라 불리는 대표적인 삶의 모습입니다. 특히나 이 프레임은 한국에서 대단히 지배적이며 견고한 바이블입니다. 대다수의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밟는 것이 자신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길이라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가정, 학교, 학원, 직장, 사회로부터 끊임없이 주입을 받습니다. 이 프레임에 벗어난다는 것은 결국 이 “성공한 인생을 위한 정석 코스”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이 코스를 밟지 않는 사람들은 사회는 때때로 낙오자 취급하기도 합니다. 그 결과, 어쩌면 뛰어난 예술가, 기업가, 작가, 음악가가 됐을지도 모르는 잠재력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무취 무색의 수많은 공장의 양산품 중 하나로 전락합니다. 각종 학원 (대입, 공무원, 자격증 등)에 빼곡히 앉아 이 공부를 하는 목적이 자신에게 있는지 부모에게 있는 것인지 헷갈려하는 학생들,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기업의 부속품으로 수동적으로 살며 매달 들어오는 월급에 중독된 회사원들, 진짜 학문에 뜻이 있어서라기 보다 단지 취업 늦추기나 스펙 높이기 용으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고학력자들 등이 그 예입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남들이 좋다는 길을 따라가다 보니 우여곡절 끝에 그 길 근처에는 당도한 것 같았는데 어쩐지 마음이 편치 않더라는 것입니다. 분명 남들의 눈에는 순탄하게 성공한 인생을 위한 코스를 차근차근 밟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는 성공한 인생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는 거죠. 저만 배부른 소리 하는 것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또래 친구들이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여태까지 우리가 평생 주입받아왔던 이 성공한 인생을 위한 코스가 어쩌면 대형 사기일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제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우리는 모두 속았다는 것입니다. 마치 「꽃들에게 희망을」에 나오는 애벌레들처럼 모두가 한 기둥을 바라보고 그것이 옳은 길이라고 주입받으며 힘겹게 남들과 경쟁하며 목적지에 도달했더니 아무것도 대단할 것이 없었던 것처럼요.
꽃들에게 희망을 中 (출처: 꽃들에게 희망을, 저자 TrinaPaulus)
기존 성공 프레임이 뿌리깊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미 기존 중산층들에 의해 입증된 가장 보편적이며 안전한 성공한 인생을 사는 방법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성장, 저금리, 저소득 시대에는 기존 중산층들의 성공방정식은 통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노동력의 초과공급으로 인해 인간에 대한 저평가는 만연한 상황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모든 사람들이 기존 똑같은 인생 성공 프레임에 갇혀, 남들이 똑같이 좋다고 하는 분야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경쟁하고 있습니다. 저성장으로 인해 과거보다 사람의 노동에 대한 수요는 커지지 않았는데 이렇게 경쟁이 치열하고 공급만 늘어나는 상황에서는 가격이 내려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겠죠.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대비해서 대학원에 가서 가방끈을 늘리고 전문 자격증을 따야 한다는 따위의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 말고 다른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안 할 것 같나요? 젊은 시절 남들 놀 때 죽어라고 공부해서 가방끈을 늘리거나 전문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 본인 인생은 앞으로 탄탄대로며 자신의 특등 열차에 탑승했다고 자랑을 하던가요?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분들도 먹고살만하기가 예전만큼 녹록지 않아졌다는 것입니다. 한국을 벗어나서 해외로도 피 유학을 가면 숨통이 트일 것 같나요?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이 성장동력을 잃어가면서 해외에서 한국어를 필요로 하는 인력들은 점차 줄고 있는 추세입니다. 물론 외국에서 자리 잡은 출중한 한국인들도 많지만 한편으론 왜 수많은 유학생들이 해외에서 취업하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취업전쟁을 치르는지 잘 생각해보세요.
이전 포스팅에서 잠깐 사람의 주가와 주식의 유사성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주식에서도 이미 경쟁력을 잃어버리고 일반화된 (실무에서는 주로 commodity라고 표현합니다) 산업 및 회사의 주가 수준은 저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제조업 중심의 국가이기 때문에 어떤 회사의 제품이 중국 대비 얼마나 품질에 경쟁력이 있냐가 주식을 투자하는 데 있어서 큰 고려사항 중 하나이기 때문에, 중국의 저가 물량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한다면 회사의 주가는 바닥을 칠 수밖에 없겠죠.
대표적으로 일반화된 산업군 중 하나는 태양광입니다. 태양광은 한 때 미래 신재생 에너지로 주목받으며 관련 대장주인 OCI의 주가는 수직 상승했지만, 뒤이어 중국 정부의 보조금을 등에 업고 저가 물량 공세를 펼치면서 가격이 폭락하고 현재 주가는 낮은 수준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당신이 아이스크림 가게 사장인데, 중국 자본이 들어와 당신 주변에 비슷한 품질의 아이스크림 가게를 수 십 개를 차리고 대규모 가격 인하를 한다면, 당신 가게에는 파리만 날리거나 아니면 당신은 눈물을 머금고 같이 가격 인하를 해야겠죠. 둘 중 어느 경우든지 아이스크림 가게 매상에 막대한 악영향인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집니다. 어떤 분야에 있든지 획일화된 프레임에 갇혀 공장의 양산품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초과공급으로 인해 자신의 주가가 저평가받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OCI 주가 차트 (출처: Yahoo Finance)
어떤 분들은 그럼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냐며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런 분들에게 오히려 되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이런 프레임을 깨기 위해 어떤 진지한 고민을 했으며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봤나요? 어떠한 변화도 주지 않은 채, 현 상황을 불평하는 것이 통하는 것은 아이가 집에서 부모님께 응석을 부릴 때뿐입니다. 성인이 됐으면 자신이 주체적으로 인생에 책임을 지고 고민을 해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끊임없이 저평가에 시달리며 자신의 주가가 바닥을 치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뾰족한 수가 있다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누가 A라는 것이 좋다고 해서 모두가 우후죽순 A에 달려든다면, 더 이상 A는 뾰족한 수가 아닙니다. 어떠한 사람에게는 통한 방법이 다른 사람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으니 고민의 본인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