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해야하는, 쉬운 것 같으면서 어려운 일 (당신을 이해하기#1)
애널리스트가 어떤 기업의 주가를 산정하고 투자자들에게 매수/중립/매도 의견을 담은 레포트를 내는 과정은 상당한 노력을 요합니다. 우선 기업과 산업에 대해 면밀히 조사한 후에 미래의 수익추정을 한 뒤, 적절한 밸류에이션 (주가를 산정하는 수많은 기법 중 P/E의 개념에 대하여 이전 포스팅에서 간략히 설명, 우리는 얼마짜리 인간일까 https://brunch.co.kr/@finance1026/4)을 거쳐 주가를 산정하여 현재 주가의 수준을 보고 의견을 내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과정이자 처음 하는 과정은 해당 기업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기업이 어떤 비즈니스를 하는지, 경엉진은 누구이며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경쟁자는 누구인지, 수익은 얼마나 내는지, 재무구조는 탄탄한지 등을 이해하지 않고서 주가를 산정한다는 것은 주춧돌 없이 집부터 지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나 자신을 이해한다는 것은 아무리 복잡한 구조를 가진 기업을 이해하는 것보다도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자신을 100%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우리는 대개 본인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취미생활을 하는지, 좋아하는/싫어하는 이성의 스타일 등은 알지만, 막상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이며 내가 거기서 할 수 있는 것들은 뭐가 있는지 등에 대한 이해는 부족한 경우가 일쑤입니다. 가장 꿈 많을 나이인 청소년들의 경우, 수많은 청소년 직업체험센터 및 프로그램들은 적성을 찾아서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대다수의 청소년들은 막상 무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자신의 적성을 모른 채 어른들의 바람대로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오늘도 졸린 눈을 비비며 학교를 향할 것입니다. 다음의 노래 가사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1994년에 발표한 「교실이데아」라는 곡인데, 발표 당시 10대 청소년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은 히트곡입니다. 곡이 발표된 지 20여 년 이 흘렀지만, 가사에 묘사된 학생들의 모습이 지금의 양상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느낌이 씁쓸하게 느껴집니다.
매일 아침 일곱 시 삼십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리속에
모두 똑같은것만 집어넣고 있어
막힌 꽉 막힌 사방이 막힌
널 그리고 우릴 덥석 모두를 먹어 삼킨
이 시꺼먼 교실에서만
내 젊음을 보내기는 너무 아까워
︙
국민학교에서 중학교로 들어가면
고등학교를 지나 우릴 포장센터로 넘겨
겉보기 좋은 널 만들기 위해
우릴 대학이란 포장지로 멋지게 싸버리지
이젠 생각해봐 "대학" 본 얼굴은 가린 체 근엄한 척
할 시대가 지나버린건 좀 더 솔직해봐 넌 알 수 있어
︙
왜 바꾸진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 날을 헤맬까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됐어(됐어) 이젠 됐어(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스무 살 성인이 된다고 해서 꼭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청춘 (靑푸를 청, 春 봄 춘) 은 본디 푸르른 봄철에 핀 개나리처럼 싱그러운 것입니다만, 요즘 청춘들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로불리며 빡빡한 생계전선에 뛰어듭니다. 특히나 유례없는 공무원 시험의 열기와 취업을 위해 업종에 상관없이 수 십 개의 기업에 지원하는 상황은 이렇듯 불안정한 사회를 반증하지만 동시에 본인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고민의 결여를 보여줍니다. 물론 자신의 재능을 국가조직 혹은 특정 기업에서 발휘하고 싶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의 취업 준비생들은 아마 붙여만 주면 어디라도 좋으니일만하게 해 달라는 절박한 심정과 함께 남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이 좋은 일이자, 본인의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은 더 이상 학문의 전당이 아닌 취업 양성소로 위상이 떨어진 지 오래며, 우후죽순 생겨나는 영어학원 및 취업 관련 학원에 바글바글한 청년들의 모습은 「교실이데아」에서 묘사한 10대들의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음은 브로콜리 너마저의 「졸업」이라는 곡의 가사인데, 필자 또한 학교 다닐 때 흥얼거리며 많은 공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어떤 신비로운 가능성도
희망도 찾지 못해 방황하던 청년들은
쫓기듯 어학연수를 떠나고
꿈에서 아직 덜 깬 아이들은
내일이면 모든 게 끝날 듯
짝짓기에 몰두했지
난 어느 곳에도 없는 나의 자리를 찾으려
헤매었지만 갈 곳이 없고
우리들은 팔려가는 서로를 바라보며
서글픈 작별의 인사들을 나누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넌 행복해야 해 행복해야 해
40-50대의 경험 많은 중년은 어떨까요? 공자는「논어」에서 40세를 불혹 (不惑,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됨), 50세를 지천명 (知天命, 하늘의 명을 앎)의 나이로 비유합니다. 청년기가 준비와 개척의 시기라면 중년기는 청년기에 흘렸던 땀방울을 통한 결과물을 향유하는 시기입니다. 이렇듯 중년은 작은 성공과 실패를 경험했고 어느 정도 자신의 인생을 관조하며 삶의 혜안을 가질 수 있는 나이입니다. 하지만 중년이라고 자신의 내면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만은 아닌가 봅니다. 중년의 위기라는 정신심리/사회학 표현이 있을 정도로, 중년들도 내면적으로 갈등을 하고 혼란을 겪습니다. 특히나 1997년 IMF와 2008년 금융위기를 경험한 세대라면 가지고 있는 실직에 대한 두려움 및 건강에 대한 불안감은 중년의 위기를 부채질합니다. 특히나 사오정 (45세 정년), 오륙도 (56세까지 직장에 있으면 도둑) 용어가 보편화될 정도로 평생직장은 옛말이 돼버렸으며, 은퇴 이후 제2의 삶을 사는 어떻게 설계할지에 대하여 어려움을 느끼는 중년들이 늘고 있습니다.
너무 우울한 이야기만 한 것 같습니다만, 위의 예시들은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례들이며, 글을 쓰고 있는 저 또한 그동안 살면서 겪었고 또 앞으로 겪을지 모르는 흔한 일들입니다. 저는 주식과 사람이 비슷한 점이 많으며, 주가와 사람의 경제적 가치를결정하는데 역시 비슷한 요소들이 작용함에 주목하여 제가 느꼈던 것들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있듯이, 막상 고민을 해보니 제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 쉬운 일이 쉽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제 자신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수반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들을 위해 글을 쓴다는 것은 명백한 기만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형서점의 자기계발서 코너에 꽂혀있는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은 ~하라며 독자들을 고무하고 해결책을 제시합니다만, 저는 모든 사람들마다 각자의 사정이 있고 처한 상황이 다르다고 생각하기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저의 이야기가 모든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저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공감을 산다면 그만한 기쁨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철저한 고민 및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가 일하면서 느끼고 고민했던 것들을 공유해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