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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은행 (외국계 증권사)에 관하여

돈을 숭배하는 곳 (당신을 이해하기#2)

저는 투자은행에서 주식분석 업무를 하는 애널리스트입니다. 투자은행이라 함은 예금 유치 및 대출업무를 하는 상업은행과는 달리 인수합병, 트레이딩, 세일즈 등 증권회사의 역할과 기타 투자업무의 개념이 복합된 자본주의의 첨병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금융의 중심지로 알려진 월스트리트는 투자은행의 본고장이며 아마 여러분들도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골드만 삭스, JP모건 등이 대표적인 투자은행들입니다. 필자는 어찌하다 보니 흘러 흘러 홍콩에서 일하고 있는데, 쉽게 말하자면 국내외 투자자들이 주식을 투자하는데 있어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보고서를 발간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국내외 대형 자산운용사, 연기금 등의 기관 투자자들이 주된 고객입니다. 이러한 투자은행과 애널리스트를 생각하면 흔히들 고연봉, 고학력, 유창한 외국어, 샤프한 화이트칼라 이미지 등을 떠올립니다. 맞는 말도 있고 과장된 부분도 있지만 특히나 비교적 젊은 나이에 타 업종 대비 높은 연봉은 투자은행이 가지는 커다란 장점이자 눈부신 스펙을 자랑하는 똑똑한 인재들을 끌어당기는 요인이며 많은 업계 종사자들이 고된 업무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이직을 하지 못하는 요인입니다. 수많은 자기계발서, 성공학 책들이 당장의 월급에 연연하지 말고 좋아하는 것을 하며 꿈을 찾아 떠나라고,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라고 설파합니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에게 직업은 생계를 책임질 강력한 수단이며 “돈”은 직업선택 시 고려하게 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돈”의 첨병인 투자은행 인터뷰 시에 “돈”은 일종의 터부와도 같습니다. 인터뷰를 보는 사람들 모두 돈이야말로자신들을 이끄는 가장 강력한 동기 중에 하나임을 (사실 많은 사람들에게 돈은 가장 중요한 동기입니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입밖에 내지 않습니다. 대다수의 지원 동기는 열정이나 성취감 등으로 포장이 되곤 하는데, 투자은행을 직업으로 선택하는데 있어서 “돈”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새빨간 거짓말일 것입니다.


고백하자면, 저의 어린 시절 꿈은 비즈니스맨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초등학생 때에 꿈은 과학자, 빵집 주인 등이었으며 동기는 다소 황당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타임머신 만들기, 먹고 싶은 빵을 무한정 먹기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소 비현실적인 장래희망은 아이의 천진난만함으로 합리화되었으며 저도 대개의 그 나이 때의 아이들이 그렇듯 꿈을 가지라는 말은 꿈같은 소리로만 들렸습니다. 그러나 고등교육을 받으면서 저는 서서히 어른이 되기를 교육받았고 어른이 되는 통과의례는 현실성을 갖추며 남들에게 떳떳하게 보여지는 그럴듯한 삶을 사는 성공의 프레임에 안착하는 것이 었습니다. 제게 직업은 더 이상 허무맹랑한 무엇이 아닌 (어딘가 연구소에서 타임머신을 연구하고 있을 연구원분들께 양해를 구합니다. 저는 당신들의 연구를 진심으로 응원하며 과학 과목이 낙제 수준이었던 저에게 과학자가 된다는 것은 허무맹랑한 일이어서 이런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좀 더 현실적이며 그럴싸한 무엇이 되어야 했습니다. 막연히 졸업 후에 취업이 잘 된다는 소리에 상경계에 진학하여 그저 그런 대학생활을 보내면서 늘 생각했습니다. TV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차라리 남들과는 아예 다른 특별한 무언가가 되고 싶어서 그쪽에 매진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꿈이라는 것은 대개는 지켜지지 않는 신년 계획처럼 금방 생각나는 그런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무언가는 하고 싶지만 무언가를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날이 반복되었습니다.


누구나 으레 살면서 어떤 일을 성취하고 싶은 계기가 한 번쯤은 생기기 마련이며 저에게도 그런 순간이 온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때로는 어떤 재화 혹은 기호 따위에 본인의 꿈을 투영하기도 합니다. 가령, 축구선수를 꿈꾸는 아이들에게 유명 축구스타들이 입고 뛰는 유니폼, 주요 풋볼 클럽들의 엠블럼은 그 자체로 그 아이들의 꿈이 될 수 있습니다. 명문대학교의 엠블럼이 찍힌 학용품을 쓰는 학생, 유명가수 헤드폰을 끼며 음악인을 꿈꾸는 사람들도 같은 이치입니다. “저 유니폼을 입고 뛰어본다면, 저 구장에서 뛰어본다면” 과 같이 재화, 기호에 꿈을 투영하는 것은 어떤 목표를 성취하는 데 있어서 좋은 동기부여가 되기도 합니다. 유치하고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투자은행을 들어가야겠다고 마음먹은 이후, 저에게도 저렇듯 꿈과 동일시되는 재화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으레 저와 같은 투자은행 지원자들이 꿈꾸는 외제차, 고급 양복이나 시계, 세련된 오피스 등이 아닌 바로 블랙베리 핸드폰이었습니다.


투자은행에서 비즈니스폰으로 자주 사용되는 블랙베리 (출처: Blackb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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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개인 핸드폰에 회사 시스템을 입히는 애플리케이션이 많이 보급되어 블랙베리를 쓰는 회사가 많이 줄어들고 있습니다만, 몇 년 전만 해도 블랙베리는 업무의 편의성을 위하여 (정확히 말하면 사무실이라는 공간적 제약에서 벗어나 노동자를 자유롭게 24시간 통제를 하기 위하여) 대다수의 투자은행에서 지급되었습니다. 당시에 제게 블랙베리를 쓰는 사람들은 화이트칼라의 총아들이자 부의 행성으로 가는 황금 열차 티켓을 쥔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브르디외는「구별 짓기」에서 취향의 차이는 계급의 구분을 짓게 하는 가장 원초적이고 직관적인 원리라고 주장합니다. 비록 오페라, 승마 등의 문화가 상류층 위주의 문화이기는 해도 타계급의 사람들이 절대 모방할 수 없는 배타성을 가지지는 않습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오페라를 관람할 수도 있고 조랑말을 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투자은행에서 주어진 블랙베리는 배타성을 가집니다. 수많은 인터뷰를 치르고 쟁쟁한 경쟁자들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이겨낸 화이트칼라 용사에게만이 블랙베리를 사용할 자격이 주어집니다. 따라서 젊은 투자은행가들은 다소 오만하게도 이러한 블랙베리의 배타성이야말로 취향을 넘어선 구별 짓기의 최고 수단이며, 부의 행성으로 가는 황금 열차 티켓 그리고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특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투자은행에 입사해 1-2년 살인적인 업무 스트레스를 받아보면, 이러한 엘리트주의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오래가지 않습니다.


어느 기업이나 그렇듯이 투자은행도 말단부터 임원까지 조직 체계가 있습니다. 회사마다 직급의 호칭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Analyst (사원, 대리, 과장) – Associate (차장, 부장) – Vice President (이사) – Director (상무) – Managing Director (전무) 순입니다. 대개 학부를 졸업한 학생의 경우는 Analyst (여기서 애널리스트는 리서치 애널리스트와는 다른, 투자은행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주니어 레벨의 직급을 칭합니다)의 직급으로 업계에 발을 들이게 되며, 3년 정도 Analyst로서 경력을 쌓아야 Associate으로 진급하게 됩니다. 다만 MBA를 다녀온 사람들의 경우는 처음부터 Associate 의 직급으로 시작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먹이사슬의 최 상단에 위치한 MD (ManagingDirector를 줄여서 MD라고 많이 표현합니다)의 경우, 투자은행 정글의 왕이라 할 수 있으며 선택받은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진급하게 됩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습니다만, MD가 되면 최소 수 억원이 넘는 연봉 (“최소”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수 십억 원의 연봉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과 스톡옵션, 보너스 등을 지급받게 됩니다. 이처럼 막대한 보상을 받는 MD는 투자은행 피라미드의 정점으로서, 수많은 Analyst 및 Associate들의 지향점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인 투자은행 조직도 (출처: hierarchystructu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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