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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일은 대개 당신만큼 스마트하지 않다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야 (당신을 이해하기#3)

A 씨는 수많은 경쟁을 뚫고 원하는 기업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명함과 사원증이 처음 지급된 순간 그동안 이 순간을 위하여 고생했던 것들이 스쳐 지나가며 의욕을 불태웁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초기에 품었던 다짐과 야망은 온데간데 없이 주말만을 기다리며 월화수목금요일을 건조하게 보냅니다. A 씨는 점점 야근에, 회식에, 상사에 치이다 보니 서서히 요령이라는게 생겨 업무에 적응이 되기 시작합니다. 사회생활의 베테랑이 돼가는 자신의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때로는 보람을 느끼지만, 그러한 자신의 모습이 분명 A 씨가 초기에 꿈꿨던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A씨에게 다달이 투여되는 진정제, 월급을 통해 A 씨는 오롯이 직장인으로서 주체성을 가집니다. 많지는 않지만 굶어 죽지는 않을 통장잔고를 보며, 쇼핑을 하면서, 해외여행을 다니며, VIP 테이블에서 양주를 마시면서, SNS에 포장된 일상을 올리면서 위안을 삼아 보지만 어쩐지 마음 한편이 공허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문득, 옆자리에 앉은 상사들을 보며 이게 내 5년 뒤, 10년 뒤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지지만 딱히 특별한 대안이 없어 보입니다. 퇴사를 고민하기도 하지만 일을 그만두면 당장 끊길 월급이 두렵고 뭘 먹고살지 막막하여 실행에 옮기지는 못합니다. 주변을 돌아보지만 다들 그렇게 사는 것 같아 위안을 얻고 다시 현실에 안주합니다. 그렇게 다시 1년이 지나고 새해에 A 씨는 포부 있는 신년 계획을 세우지만, 습관이라는 것이 무서운 것이어서 A 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작년과 다름없는 한 해를 보냅니다.


A 씨는 가상의 인물이 아닙니다. 저의 이야기이자 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어쩌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이야기 일 수도 있습니다. 꿈높현시란 말을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8마일이란 영화에서 유명 래퍼가 되고 싶은 주인공 (에미넴)이 무명인 자신의 신세한탄을 하며 내뱉은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야”라는 대사의 준말입니다. 씁쓸한 웃음이 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쯤 공감했을만한 키워드입니다. 애초에 꿈꿨던 것과는 달리 자신의 현재 모습이 초라해 보이거나 현실에 안주해 있는 모습이 답답해 본 적이 누구나 있을 것입니다.


꿈은 높은데 현실을 시궁창이야 (출처: 8마일)

요새는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인턴을 해야 되고, 인턴을 하기 위해서는 관련 경력을 요구하는 추세입니다. 관련 경력을 쌓고 싶어서 인턴을 하는 것인데 인턴 지원 시에 관련 경력을 요구하는 것이 어처구니없지만 어쩌겠어요. 노오력 권하는 사회에서는 당신이 남들보다 노력하지 않은 것이라고, 좀 더 노력하다 보면 당신에게도 레드카펫이 펼쳐질 것이라며 책임을 개인의 탓으로 돌립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합리한 사회 탓을 해봤자 루저라는 낙인이 찍히기 십상이며, 루저가 되지 않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자소설” 창작에 골몰하고 있는 분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투자은행도 이러한 치열한 경쟁에서 예외가 아닙니다. 대개 투자은행의 취업을 위해서는 2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공채인 Graduate 프로그램을 통하여 입사하는 것이고 나머지는 수시 채용입니다. 첫 번째 프로그램의 경우, 한국뿐 아니라 홍콩, 싱가포르, 미국, 영국 등 전 세계 오피스에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지만, 전 세계의 지원자들과 경쟁해야 하며, 해당 국가에 연고가 없을 경우 (학교, 거주 경험, 언어 등) 확률이 낮은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두 번째 수시채용의 경우, 주요 대학이나 취업 커뮤니티에 공고를 올리거나 지인들을 통해 알음알음 채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한된 공채 모집인원으로 인하여, 수시채용으로 채용되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해당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인맥으로 만드는 것은 투자은행 입사를 위한 지름길이며, 그렇기 위해서는 인턴이 첫 번째 관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업계에서 오래 근무한 분들이 농담으로 요새 이력서를 보면 학력이나 경력들이 눈이 부실 정도라 선글라스를 끼고 봐야 할 수준이라며 스펙만 보면 본인들이 오히려 인턴들을 위해 일을 해야 할 것만 같다고 종종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인턴들이 하는 일은 대부분 점심 배달, 자료 제본하기, 식당 예약, 단순 번역 등이 대부분입니다. 물론 운이 좋다면 인턴임에도 불구 하고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겠지만, 대개의 경우 꿈높현시를 되뇌며 자괴감을 느끼기 일쑤입니다.


저 또한 수 차례 인턴경험을 하였는데 돌이켜보면 여러 가지 인턴 경험 중, IBD (Investment Banking Division, M&A, IPO 등의 기업금융업무를 담당)에서의 인턴경험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IBD는 투자은행의 많은 부서들 중에서도 최전선에서 돈을 벌어오는 대표적인 선봉대 (front office라 함)이자 가장 큰 돈을 만지는 부서 중 하나입니다. 기업들에게 입수 합병 자문을 하며 로펌, 회계법인 등과 긴밀히 협업하며 조 단위의 빅딜을 이끌어나가는 IBD의 모습은 투자은행을 꿈꾸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동경이 되곤 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역설적이게도 많은 주니어들에게 꿈높현시를 각인시켜주는 곳이 인수 합병 부서 이기도 합니다. 인수합병 부서의 신입 및 인턴들은 대개 오랜 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제안서 등의 문서를 만드는 작업 및 재무제표가 포함된 금융모델을 만드는데 많은 시간을 쏟습니다. 특히나 문서를 얼마나 매끄럽게, 오류 없이 만들어내냐는 주니어들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역량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인턴들의 업무는 대개 주니어 직원들의 문서작업을 돕는 역할, 단순 번역, PPT 깔끔하게 만들기, 제본, 밥 시키기 등인데 실수 없이 일을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 인턴들의 역량을 가늠하는 평가척도 중 하나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터뷰에서 온갖 답하기 까다로운 질문들과, 수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선택받은 사람들이 하게 되는 일은 대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대체 가능한 일들이며 밤늦게 사무실에 남아 엑셀이나 파워포인트를 만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꿈높현시를 느끼기 일쑤입니다.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대며 똑똑한 인재들을 뽑았음에도 막상 회사가 시키는 업무는 대부분 그만치의 똑똑함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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