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시대의 종말 (당신을 이해하기#4)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열연한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라는 영화를 아시나요? 평범한 미국 중산층이었던 주인공은 동전주 (Penny stock) 중개를 통해 억만장자가 되고 본인의 회사까지 차리며 승승장구합니다. 하지 만법에 위배되는 수법으로 재산을 증식하고 은닉한 혐의로 결국 FBI에 체포되고, 복역 후에는 전문강사로 활동하는 조던 벨포트라는 인물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거니와 흥미로운 내용 덕분에 영화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본 기억이 나는데, 특히나 영화에서 여과 없이 보여준 월스트리트의 탐욕이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영화에서 주인공인 디카프리오가 했던 다음의 대사는 당시 월스트리트에 만연해있던 물질 만능주의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 세상은 돈이 전부야. 맛있는 음식, 이쁜 여자, 비싼 차, 넓은 집 뭐든 가질 수 있게 해주거든. 내가 속물 같다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맥도널드에서 평생 알바나 해”
영화가 보여주는 시대는 20세기 후반으로 투자은행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였고, 월스트리트에 넘쳐흐르는 돈을 주체하지 못하던 시기였습니다. 영화 포스터에 묘사된 것처럼 많은 월스트리트 뱅커들은 지나치게 많은 임금을 받으며 파티, 마약, 스트리퍼 등에 막대한 지출을 하며 돈 잔치를 하던 시기입니다. 별다른 규제 없이 회사에 돈만 벌어다 준다면 어떠한 행위도 용인이 됐었고, 성과가 좋다면 막대한 보너스를 보상받았기 때문에, 앞에서 주지하였듯이 투자은행은 그야말로 부의 행성으로 가는 황금 열차 와도 같았습니다. 당시에 투자은행들은 타 업종 대비 월등히 높은 임금을 제시하며, 유수의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뿐만 아니라 수학자나 로켓 엔지니어들까지도 사정없이 빨아들이며 선망받는 직장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한국도 20세기 후반부터 외국인들에게 자본시장을 본격적으로 개방하기 시작하면서 투자은행들이 속속 지점을 열어 진출했고, 주로 외국인들과 의사소통이 원활한 교포들이 투자은행 한국지점의 1세대로서 활약하게 됩니다.
영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출처: Red Granite Pictures)
탐욕이라는 연료를 먹으며 월스트리트는 부의 행성을 향해 몸집을 키우며 질주했습니다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붉은 꽃이 없다. 권력이나 부귀영화가 영원하지 않음)이라 하였습니다. 2007-2008년 미국에서 촉발된 금융위기는 월스트리트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습니다. 금융위기가 어떤 것인지 간단히 말씀을 드리면, 2000년대 초부터 미국이 초저금리 정책을 펴면서 미국에서 부동산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합니다. 2000년대 중반까지 부동산 가격이 계속 상승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에 신용지수가 낮은 사람들까지 주택담보대출 (서브프라임 모기지)을 쉽게 받을 수 있었고, 이 때 투자은행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라는 높은 수익률의 복잡한 파생상품을 만들어 팔면서 돈을 쓸어 담게 됩니다. 하지만 미국의 부동산 버블이 꺼지게 되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금리가 올라갔고,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구매한 금융기관들은 대출금 회수 불능 사태에 빠지며 줄줄이 부실화되고 맙니다. 당시 투자은행들이 돈놀이를 위해 상품을 너무 복잡하게 만든 나머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리스크가 얼마나 큰 지 조차도 측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금융위기의 영향력은 실로 어마어마 했습니다. 수많은 금융기관들이 파산신청을 했고, 세계적인 투자은행이었던 리먼 브라더스, 베어스턴스가 이때 파산하게 됐으며 당시 월스트리트에 종사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됐습니다. 탐욕만을 좇던 투자은행들의 방종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급기야 2011년 9월에 발생한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는 “우리는 99%이다”라는 구호와 함께 부의 상위 1% 월스트리트의 탐욕을 지탄하며 전 세계로 확산됐습니다.
뉴욕에서 시작된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 (출처: Screenplay)
또한 금융위기 충격을 목격한 세계는 미국 정부의 주도하에, 또 다른 금융위기를 방지하기 위해 투자은행들에 각종 규제를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투자의 기본 원칙 중 하나는 “high risk high return”입니다. 각종 규제 때문에 손발이 묶인 투자은행들은 더 이상 고위험-고수익의 비즈니스를 할 수 없게 됐고, 과거처럼 투자은행들이 돈을 쓸어 담던 시대는 종말을 맞이합니다. 금융위기 이후 투자은행들은 비즈니스를 재검토 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일자리가 없어지게 됐습니다. 극심한 구조조정 속 생존에 성공한 사람들 또한 전성기 때 받던 막대한 보너스를 받을 수 없게 됐고, 이따금씩 돈 잔치를 벌였던 과거를 회상하며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것이 현실이 됐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2008년 이후에 업계에 들어온 사람들의 경우, 이미 금융위기를 겪은 이후 세대이기 때문에 그마저도 추억할만한 과거의 영광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