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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20대 아홉수, 직장에서 잘릴뻔하다 (당신을 이해하기#5)

누구나 어떤 일을 처음 시작할 때는 으레 열정을 가지고 시작하기 마련입니다. 나름의 목표를 세우고 최선을 다할 결심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나태해지기 일쑤인데 게을러진 자신을 반성하며 새로운 다짐을 해보지만 작심삼일인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돌이켜보면 저도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처음 구할 때는 정말 어떤 일이라도 시켜만 주면 매일 밤을 새워도 된다라는 헝그리 정신으로 똘똘 뭉쳤던 것 같습니다. 어렵사리 구한 첫 직장에서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했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고 상사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참 열심히 노력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다른 회사에 정규직제안을받았을 때 얼마나 마음이 설렜는지 모릅니다. 처음 넥타이를 매고 출근을 했을 때는 정말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고 회사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에 매달렸던 것 같습니다. 가장 먼저 새벽에 사무실에 나오고 밤늦게 퇴근하는 일이 일상다반사였고 주말에도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회사에서 살다시피 했었습니다. 누구도일을 강요한 적이 없었지만 스스로 더 잘하고 싶은 욕심에 그렇게 까지 일 중독자로 살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1주일에 100시간에 가까운 근무에 시달리다 보니 몸도 마음도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과중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을 찾지 못해, 주말마다 폭음을 하는 일이 잦아지기 시작했고 몸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됐습니다. 특히 나 평소에 지양하던 일부 금융가에 종사하는 사람들 특유의 “탐욕”이제 안에 일부 자라나는 것을 느꼈을 때는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하고 마음에 병이 들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탐욕이라는 놈은 투자은행업계에 너무나도 만연해있어서 업계에서 일을 하다 보면 점차 탐욕을 경계해야 할 것이 아닌 추구해야 할 하나의 중요한 가치로 생각을 하게 됩니다. 1987년에 만들어진 「월스트리트」에 출연하는 자본주의의 화신 고든 게코는 탐욕은 좋은 것이다 (“Greed is Good”)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었죠.


탐욕은 좋은 것이다 (출처: 영화「월스트리트」에 나오는 거물 투자자 고든 게코 대사 中)


보통 투자은행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소득을 통해 정체성을 규정짓는데 이러한 “소득 비교문화”가 탐욕을 더욱 부추깁니다. 실제로 타 업종 대비 고소득을 버는 투자은행 업계 종사자들의 많은 경우가 나의 주변 동료들, 혹은 자신이 회사에 기여한 가치에 비해 적은 보상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직장 내에서도 회사를 위해 얼마를 벌었는지가 주요 평가항목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소득에 따라 사람들을 평가하게 되고, 늘 자기 소득에 만족을 모르는 것이죠. 특히나 해마다 한 번씩 지급되는 보너스는 업계 종사자들의 초미의 관심사인데, 회사마다 정확한 시기는 다르지만 보통 연말쯤이 되면 어떤 투자은행이 어느 정도 수준의 보너스를 지급한다더라 하는 등의 소문이 돌기 시작합니다. 과거 호황기에는 보너스 지급일이 되면 젊은 뱅커들을 타겟으로 스포츠카 딜러들이 회사들 밑에서 대기를 했고, 시니어 뱅커들은 한해 보너스로 심심치 않게 부동산을 구매하는 일이 잦았다고 하니 액수가 실로 막대했습니다. 이렇게 보너스는 투자은행에서 강도 높은 스트레스를 견디게 해주는 달콤한 단비와도 같았으니, 직원들 입장에서는 한 해 보너스 수준이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회사를 옮기는 경우가 다반사였기 때문에 고용주인 회사 입장에서도 인력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업황에 상관없이 일정 수준의 보너스를 지급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문제는 보너스라는 것은 말 그대로 보너스일 뿐입니다. 즉, 보너스는 그 해 비즈니스가 잘 됐다면 이익의 일부를 직원들과 공유하는 것이지만, 부진했다면 아예 지급하지 않아도 직원들 입장에서는 반박할 수 없는 가변적인 임금입니다.


불행히도(?) 제가 업계에 발을 들여놓았던 때는, 이미 2008년 금융위기 이후였기 때문에 투자은행들이 지급하는 보너스 풀 자체가 많이 쪼그라들었었고 규제 때문에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수준의 보너스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었습니다. 특히나 주식 애널리스트가 속한 리서치 부서는 주식시장이 좋았을 때는 증권사의 꽃이라 불리며 애널리스트의 몸값도 고공행진을 했지만, 주식시장이 지지부진하며 비용 부서로 전락하며 더 많아진 업무에 비해 줄어든 소득으로 인해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저 또한 돈을 맹신하는 환경에서 지속적으로 일을 하다 보니 제 마음속에 슬금슬금 탐욕이 자랐고 이렇게 달라진 환경에 불만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순수하게 일에 열정을 가졌던 초기의 마음가짐과는 달리 저도 어느새 다른 사람들과 임금을 비교하고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며 불평하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고, 보너스가 만족스럽지 못할 때에는 지난 1년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것 같아 우울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느새 정신을 차려 보니 저도 모르는 사이에 평소에 경멸해 마지않았던 탐욕스러운 사람이 되어있던 것이었습니다.


월스트리트 보너스 vs. 미국인 노동임금 평균치 비교 (출처: Fort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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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저에게 어느 날 큰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침체된 세계 경기 속 증시는 우울한 분위기를 지속했고 믿었던 중국마저도 GDP 성장률이 떨어지며 주식 같은 위험자산에 대한 회피 성향이 높아졌고 증시는 연일 고전하며 거래량마저도 쪼그라들고 있었습니다. 일부 외국계은행들이수익이 나지 않는 주식부문을 통째로 날려버리거나 한국을 철수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났고, 저와 친하게 지내는 지인들도 순식간에 일자리를 잃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사방에서 전기톱이 사정없이 사람들을 해고하고 있는 와중에 제가 속한 은행의 주식부문도 철수를 고려하고 있다는 소문이 심심치 않게 들려왔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많은 지인들이 ‘잘 지내고 있냐, 너희 회사 문 닫는다더라’ 등의 안부를 묻는 일이 잦아졌고, 처음에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제 일터를 잃는 것에 대한 의구심은 점점 확신이 되어갔습니다.


고용의 불안정성. 이것은 결국 이 땅의 모든 월급쟁이가 짊어지고 가야 할, 특히나 40-50대가 되면 피부로 와 닿을 문제겠지만,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대 젊은이가, 막 시집을 간 새댁이, 얼마 전 딸아이를 출산한새내기 아빠가 짊어지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것입니다. 저는 당시 일을 시작한 지 2-3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솔직히 이렇게 빨리 실직자가 될 걱정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물론 금융위기 이후 리먼브라더스, 베어스턴스의 파산 및 업계에 만연한 빈번한 해고 문화를 업계 선배들로부터 익히 전해 들으며 “나도 언젠가는 잘릴 수가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기는 했지만, 제가 직접 경험해보기 전까지 실제로 그렇게 피부에 와 닿지는 않았던 것이죠. 어리석게도 보통의 사람은 자신한테 닥칠 때에만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는 법인것 같습니다.


주요국 임금근로자의 평균 근속연수 (출처: 한국 노동연구원)


그렇게 초조한 나날을 보내던 중, 결국 불안한 예감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집중하려 해도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던 차에, 어느 날 전화벨이 울렸고 부서장님은 저를 회의실로 불렀습니다. 회의실에는 부서장 및 외국에서 날아온 높은 임원급들의 외국인들이 말쑥한 정장을 입고 앉아 있었습니다. “How are you?”라는 높은 임원의 말에 “I`m good”이라고 형식적으로 대답은 했지만 초조한 표정을 숨기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릅니다. 당시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보니 계속 적자를 내는 사업을 축소하는 과정에서 일부 인력들을 홍콩으로 파견 보내고 나머지 인력들은 어쩔 수 없이 대부분 해고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저는 운 좋게 홍콩행 구명보트에 탑승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급작스러운 제안이라 어안이 벙벙했던 저는 생각할 시간을 줄 수 있겠냐고 했고 임원진이 제시한 기일은 3-4일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방에서 나오면서 머리 속이 혼란스러웠습니다. 홍콩이 아시아 금융 허브라고는 하지만, 이미 매섭게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운 좋게 이번에는 피했다고는 하지만 고용의 불안정성은 여전히 높았습니다. 게다가 가족 및 친구들이 있는 익숙한 한국을 떠나 말도 안 되게 높은 월세를 내가며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홍콩 섬에서 싱글 남자가 사는 10평 남짓한 방은 월세가 200-300만 원 정도로 정말 비쌉니다!) 홍콩의 작은 집에 적응하며 산다는 것도 고된 일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차라리 이 기회에 일을 그만두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며 몇 달간 히피처럼 아프리카나 남미 등을 여행할까라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며칠을 잠들지 못하며 고민을 고심하던 끝에 결국 젊었을 때 새로운 환경에서 한번 부딪쳐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부모님께서도 경험이라는 것은 중요한 자산이라고 조언을 해주셔서 제안을 수락하게 됐지만, 정들었던 동료들을 떠나고 일터가 없어진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습니다.


대규모 구조조정 발표를 앞둔 몇 일간은 정말 고통스러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운 좋게 홍콩행 구명보트에 탄 일부 직원들과 그렇지 못한 직원들 모두 일이 손에 안 잡히기는 마찬가지였고, 공식 발표가 있기 전까지는 정보가 새어나가면 안 되기 때문에 입단속에 주의를 했습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마침내 D-Day가 왔습니다. 보통 캐주얼한 차림으로 출근을 하시던 부서장님은 그날따라 말끔한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출근했고, 매일 아침 세일즈팀과 주관하는 미팅이 오늘은 없다고 제게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고 D-Day가 온 것을 직감했습니다. 전 직원들이 출근한 가운데, 한 명씩 전화벨이 울리면서 회의실로 차례차례 들어갔고 인사부에서 작성해놓은 해고 계약서에 사인을 하면 짐을 싸고 나갔습니다. 퇴사자가 사인을 하는 날에는 회사 컴퓨터 및 출입카드도 작동하지 않게 됩니다. 순식간에 모든 권한을 박탈하는 것이죠. 그나마 한국은 정이라는 것이 있어 (?), 나갈 때 동료들과 인사를 하고 짐을 챙겨서 나가는 것을 도와주기도 합니다만, 홍콩이나 미국 같은 곳에서는 퇴사 통보를 받고 사인을 하는 즉시 회사를 나가야 합니다. 모든 개인의 짐은 택배로 집에 부쳐지고 퇴사자는 동료들과 작별인사를 할 기회조차 (적어도 회사 오피스 내에서는) 주어지지 않게 됩니다. 비정하지만 참으로 효율적인 투자은행업계의 인사처리 방식에 혀를 내두를 지경입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을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제가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통째로 부서가 없어지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경험하고 나니 제가 믿어왔던 세계관이 흔들렸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는 것을 보니 어릴 때부터 주입받아왔던 성공의 프레임에 기반해 저를 옥죄고 있던 완벽주의, 남들과의 비교, 불안, 탐욕 따위가 모두 덧없이 느껴졌습니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중요시하는 삶보다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결과를 떠나 자신한테 부끄럽지 않을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 이렇게 홍콩의 어느 이름 모를 카페에서 타자를 두들기고 있습니다. 저를 둘러싸고 있던 알이, 하나의 세계가 조금씩 깨지고 있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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