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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우먼 증후군

바쁨의 지배 #3

인류가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하는 과정에서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수많은 부조리한 관습들이 깨졌다.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냈던 이들은 기성사회의 억압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저항하며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쟁취했다. 하지만 관습은 쉽게 변하지 않는 습성을 가지고 있고, 변화는 때때로 희생을 요구하기에 전진의 발걸음은 대개 더디기 마련이고 때로는 실패한다. 그런데 인류 역사상 가장 급격하지만 성공적으로 그리고 광범위하게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와 지위를 쟁취한 종 (種)이 있으니 바로 여성이다.


지역마다 그리고 시기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성은 꽤 오랜 시간 동안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남아 선호 사상이 심한 지역에서는 여아의 낙태 혹은 살해와 같은 끔찍한 일이 버젓이 일어났고, 여성을 단지 남아를 낳는 수단으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오늘날까지 아프리카에서는 여성의 성기를 절제하는 할례가 자행되고, 일부 이슬람 국가에선 여성에 대한 갖가지 차별이 당연시되고 있다. 한국도 불과 1세기 전만 해도 성리학의 영향을 받아, 여성은 남성을 보조하는 역할이라는 관념이 지배적이었다. 삼종지도 (三從之道, 여자는 어려서 아버지를, 시집가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따른다) 나 칠거지악 (七去之惡, 남편의 일방적인 의사표시로 아내와 이혼할 수 있는 일곱 가지 이유) 같은 남성 우월적 가치관이 당시에는 당연시 여겨졌다. 한국에 여성부가 설립되고, 남녀 고용 평등법, 가정 폭력법, 호주제 폐지가 시행된 것은 30여 년이 채 되지 않는다.


50% 확률로 남성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성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것은 실로 경악할 만한 일이다. 인류의 절반이 여성이라는 점과 세계화가 확산되기 이전 아주 오랜 옛날부터 곳곳에서 성차별이 존재했다는 점을 미루어보면, 여성에 대한 차별은 인종 차별보다 더욱 광범위하고 만성적으로 행해졌다. 몇 백 년 전에 누군가 ‘21세기는 여성이 고등교육을 받고 정치 및 경제활동을 활발히 하며 심지어 기업이나 국가의 총책임자가 되는 시대일 것’이라고 말했다면 아마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현대 여성의 지위 상승을 야기했는가? 가장 중대한 계기 중 하나는 전쟁이다. 세계대전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 국가는 승리를 위해 여성들을 동원해 전쟁터에 끌려간 남자들의 공백을 메우고 생산성을 극대화하려 했다. 이 시기 국가는 ‘할 수 있다’ 정신과 애국심을 고취하며 여성들의 사회 참여를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여성들은 가정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병원, 공장, 군대 등에서 유감없이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했고, 사회는 인적 자원으로서 여성의 가능성에 대해 재고하게 됐다. 여성이 가정 밖에서도 훌륭한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이후, 남아선호 사상이 약해지며 사람들은 여성의 교육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여성 노동 포스터.jpg 세계 대전 당시 여성의 적극적 사회 참여를 장려하는 포스터

피임의 확산도 여권 신장에 의미 있는 기여를 했다. 계획되지 않은 임신은 여성의 삶에 치명적인 제약이다. 피임이 발달하기 전 수 천년 동안, 여성들은 관계를 가진 후 원치 않는 임신을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19세기와 20세기에 걸친 콘돔과 피임약의 보급은, 임신과 출산에 대한 선택권을 부여함으로써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통제할 수 있게 도와줬다.


또한 가전제품의 발달로 가사에 드는 육체노동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들면서, 여성들은 가사를 제외한 다른 생산적인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특히나 세탁기는 빨래를 단 1-2시간 내에 해결해줌으로써, 여성을 지겹고 단순한 중노동에서 해방시켜주었다. 오죽하면 교황청이 20세기 여성 해방의 1등 공신으로 세탁기를 꼽았을 정도로, 세탁기가 여성의 지위 향상에 미친 영향력은 엄청났다.


여성들의 교육 수준이나 경제력이 높아지고 사회활동에 대한 참여가 활발해지면서 평등을 향한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가 커졌고, 이들은 계급투쟁 역사상 전례 없는 속도로 신속하고, 성공적으로 그리고 광범위하게 자신들의 권리를 쟁취했다. 여성 차별은 옳지 않다는 명제가 20세기에 대대적인 공감을 얻기 시작하면서, 각 국에 여성문제를 전담하는 부처가 생기고, 세계 여성의 날이 지정됐으며, 여성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도 서서히 바뀌었다.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지만, 과거 대비 여성들이 각종 성차별, 출산휴가, 가정 폭력, 성범죄 등의 여러 분야에서 짧은 시간에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룬 것은 분명하다. 21세기 비약적으로 상승한 여성의 지위 및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여성리더들의 모습을, 200년 전 가부장적 조선 양반들은 상상도 못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여성의 활발한 경제활동과 지위 상승은 여성의 삶의 가속화를 야기했다. 직장과 가정에서 여성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상충될 수밖에 없기에, 현대 여성은 일뿐 아니라 가사 및 육아라는 짐을 양 어깨에 짊어진 채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셈이다. 이처럼 직장과 가정에서 여성에게 과중한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에, 이를 온전히 충족시키려면 그녀는 원더우먼이 돼야 한다. <타임 푸어>의 저자 브리짓 슐트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유능한 기자이자 엄마로서, 직장과 가정을 오가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워킹맘의 고충을 털어놓는다. 그녀는 이상적인 노동자와 좋은 엄마가 돼야 한다는 현대사회의 기대와 압박이 일하는 여성들의 삶의 가속화시킨다고 주장하는데, 이에 무척 동의한다.


문제는 여성의 역할에 대한 현실과 인식의 괴리다. 여성의 역할이 가정에서 사회로 확장됐지만 여전히 가사 및 육아는 여자 담당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만약 부부가 모두 일을 한다면, 남편이 집안일을 분담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전부 여성에게 떠넘기거나 마치 남성이 선심을 쓰듯 돕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한국은 명절 증후군, 시월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여전히 가부장적인 유교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양상이다. 이러한 현실과 인식의 괴리 때문에, 현대 여성은 보통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일이냐 가정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전통적인 가치관을 가진 여성들의 경우 직장을 관둔 뒤, 남편을 내조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지만 이마저도 점차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20세기에는 여성의 임금이 남성 대비 현저히 낮고 남성의 소득만으로도 가정의 생계를 꾸리는 것이 가능했기에, 여성이 일을 하지 않는 것이 경제적으로 비합리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당시에 외벌이는 전형적인 중산층의 상징이었지만, 지금 같은 저성장 시대엔 둘이 벌어도 빠듯하게 가계살림을 꾸려나가는 경우가 많기에 여성의 지속적인 경제활동 참여가 요구된다. 즉 외벌이를 할 수 있는 경제력이 되거나, 공평하게 가사 및 육아 분담을 하는 남편을 만난 소수 운 좋은 여성들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현대 여성은 원더우먼이 되라는 사회의 과중한 기대하에 바쁨의 지배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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