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쁨의 탄생 #1
바쁨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여기서의 바쁨은 늘 시간이 없는 현대인이 겪는 만성적인 바쁨을 뜻한다. 물론 고대 원시인도 생존을 위해 맹수에게 쫓겨 도망칠 때나 사냥할 때는 바쁘게 몸을 움직였을 테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것은 일시적인 바쁨이다. 바쁨은 기계식 시계의 확산과 더불어 탄생했다. 즉 인간이 시간의 정의를 사건의 단위에서 시, 분, 초 단위의 시계에 기반한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시간은 파편화됐고 바쁨은 만성적이 됐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을 “앞의 것과 뒤의 것을 기준으로 일어나는 변화의 횟수”로 정의했다. 즉 시, 분, 초 단위의 기계식 시계가 확산되고 사회적 합의를 얻기 전 사람들에게 시간은 사건의 시간이었던 셈이다. 이때 시간은 일종의 덩어리의 형태로써 사건의 단위로 사람들에게 각인된다. 가령, 그리스 시대 사람들은 암탉이 울고 해가 뜰 무렵 일어나고, 해가 질 무렵 일과를 마치고 별이 뜰 무렵 잠자리에 들었을 것이다. 사건의 발생의 전후에 발생하는 공백을 만끽할 여유가 그 시대에는 있었다. 이때의 시간은 부유(浮遊)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오늘날 사람들 기준으로 보면 무기력해 보일 정도로 시간의 템포는 느리게 흘러갔다.
한편 시간을 측정하는 기계식 시계가 확산된 이후, 시간은 단위는 시, 분, 초로 잘게 쪼개졌고 시간의 템포는 빨라졌다. 매 초마다 째깍거리며 시간의 단위를 잘게 쪼개는 시계의 시간은 공백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때 시간은 부유하며 흘러가는 것이 아닌, 빠르게 소모되는 형태를 보인다. 마치 모래시계 속 모래가 빠르게 줄어드는 것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 속 시간이 빠르게 소모된다고 인식하며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기계식 시계가 대중화된 오늘날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휴대폰 알람 소리는 아침의 고요를 찢고, 약 한 시간 가량의 점심시간이 있으며 자는 시간 또한 보통 일정하다. 우리는 시, 분, 초 단위로 파편화된 시계의 시간 속 바쁨의 행진곡에 맞춰 삶의 리듬을 빠르게 조절하게 됐다.
시간을 정확히 측정하는 도구가 보편화되기 전, 그러니까 자연에 기반한 해시계나 물시계 같은 원시적인 형태의 시계가 아닌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시, 분, 초로 단위를 측정하는 기계식 시계가 대중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불과 수백 년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나 19세기 열차와 철도의 발달은 시계의 시간이 급속하게 확산되고, 전 세계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참고할 수 있는 기준 시간을 제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세기 영국이 증기기관 열차를 발명한 이후, 철도가 깔렸고 이는 사람들이 공간적 제약을 벗어나 철도가 깔린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음을 뜻했다. 당시 우렁차게 매연을 내뿜는 열차를 처음 본 사람들은 시속 30km로 빠르게 달리는 열차가 사람의 생명에 위협을 줄 것이라 생각했다. 당시 사람들은 빠르게 달리는 열차를 타면, 신체가 적응하지 못해 장기나 뇌가 뒤틀리고 고통받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차차 열차의 차창 밖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에 익숙해졌고, 책을 읽거나 자는 등 열차에서 나름의 시간을 보내는 법을 터득하게 됐다.
열차와 철도가 시계의 시간의 확산에 기여한 것은 우선 시간의 규율화다. “저녁노을이 지고 어둑해질 무렵”처럼 사건에 기반한 열차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열차의 운행 시간은 저녁 6시 43분같이 정확한 시계의 시간에 기반한다. 기존 사건의 시간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이 열차를 제시간에 타기 위해서는 정확한 시간을 지키는 규율을 터득해야 했다. 기차역마다 큼직한 시계가 걸려있었고, 사람들은 차차 시계를 보는 법을 배웠고 시, 분, 초로 파편화된 시간의 단위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철도가 전 세계에 깔리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지역마다 기준으로 삼는 시간이 달라 혼란이 생겼다는 점이다. 당시 사람들은 태양이 가장 높게 떠오른 시각을 정오로 정해, 지역마다 시간의 기준이 상이했다. 하지만 영국에서 촉발된 철도 혁명 이후 철도가 전 세계 곳곳을 누비면서, 효율적인 운송관리를 위해 지역마다 다른 시간의 기준을 통일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당시엔 심지어 영국 내에서 조차 지방마다 시간의 기준이 달랐는데, 영국은 그리니치 표준시를 기준으로 영국 안팎으로 시간의 통일을 주도한다. 19-20세기에 걸쳐 통일된 시간으로 인해 운송 수단의 운영과 관리의 효율성이 비약적으로 증대됐다. 열차와 철도의 확산과 더불어 시간을 통일한 영국의 그리니치 표준시는 오늘날에도 쓰이고 있다.
시계의 시간은 운송 수단을 넘어, 일종의 규율로 자리를 잡으며 학교, 일, 여가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영향력을 미쳤다. 예를 들어 인클로저 운동으로 도시 속 공장으로 몰린 노동자들은 시계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물건을 만들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건이 발생하면 돈을 벌었다. 하지만 시계의 시간이 확산된 이후 노동-임금 구조는 사건 중심에서 시간 중심으로 전환됐고, 노동자들은 판매한 시간을 단위로 임금을 받게 됐다. 마치 오늘날 우리가 대부분 시급이나 월급을 받는 임금노동자인 것처럼 말이다.
공장에 걸린 시계는 째깍째깍 소리를 내며 노동자들을 감시했고 노동자들은 정확한 시계의 시간에 기반한 사이렌 소리에 맞춰 출근하고, 휴식하고, 밥을 먹고, 퇴근해야 했다. 시간의 규율 속 사람들이 잃어버린 것은 여유뿐 아니라 인간다움이었다. 노동자들은 기계의 리듬에 맞춰 바쁘게 살면서 결핍과 공허함을 느끼게 됐고, 자본가들의 무자비한 착취를 견디지 못해 급기야 러다이트 운동을 일으켜 분노를 터뜨린다. 노동자들이 러다이트 운동 때 부순 것은 기계뿐 아니라 자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고 계량화한 시계였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날 여러 나라의 공교육에 뿌리가 된 프로이센식 교육의 주된 목적은 국가에 충성하는 개인을 길러내기 위함이다. 프로이센의 교육은 특히나 통제와 훈육, 도덕, 복종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에 중점을 두는데, 여기서 시간의 규율화는 어린 학생들을 길들이는데 효과적이다.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우리가 어릴 때 학습한 이 동요처럼 학생들은 시계의 시간에 기반한 학교의 커리큘럼을 이수하며 시간의 규율화를 학습한다.
사람들이 학교와 일터라는 일상에서 벗어나 주말에 예배를 드릴 때도 교회의 첨탑 위에는 커다란 시계가 걸려있었다. 시계는 철도, 학교, 일터, 교회를 넘어 심지어 사람들의 손목까지 영역을 넓히며, 시간의 규율화라는 복음을 널리 전파했다. 바야흐로 19세기 이후, 시계는 성공적으로 사람들의 삶에 자리 잡았다. 오늘날 웨어러블 기기의 가장 대중적인 형태가 스마트워치인 것 또한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이처럼 기계식 시계가 확산되며 시간의 파편화가 가속됐고, 잘게 쪼개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은 만성적으로 바쁨을 달고 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