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쁨의 탄생 #4
뉴딜정책에 영향을 준 것으로 유명한 세계적 경제학자 존 케인즈는 1930년 <우리 손자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이라는 글에서 과감한 예언을 한다. 그는 인류가 경제성장을 거듭해 100년 뒤 미래 후손들은 충분히 부유해져 일주일에 15시간 일하고 여가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위대한 경제학자답게 성장에 대한 예측은 맞췄지만, 여가에 대한 전망은 틀렸다. 그것도 아주 완벽히.
케인즈는 선진국의 경우 100년 후 최소 4배에서 8배까지 높은 소득 수준으로 성장하리라 생각했는데, 이를 연간 성장률로 환산하면 약 1-2%로 꽤나 정확히 추론한 셈이다. 하지만 높아진 소득과 기술의 발전 대비, 그가 예언한 일주일 15시간의 노동은 여전히 요원하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20세기에 주 5일 근무제를 채택하며 획기적으로 노동시간을 줄였고, OECD 통계도 우리가 과거보다 점점 덜 일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현대인이 바쁘게 살며 여유를 갖지 못한다. 존 케인스는 분명 바쁨의 힘을 과소평가했다. 그는 무엇을 놓친 것일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종교적 규율을 중시하는 중세에서 근대적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한 것은 바쁨의 역사에 있어 중대한 변곡점이다. 돈이 소비심리와 사유재산 축적을 부추기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얻도록 경쟁하고 바쁘게 만드는 것은 분명 주요한 요인이다. 하지만 돈만으로 바쁨을 설명하는데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잘 사는 선진국에서 교육 수준이 높은 엘리트가 빈국의 서민보다 더 바쁘게 사는 모습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워커홀릭은 지식 노동자에게서 주로 발견되는 질병이다. 육체 노동자가 워커홀릭인 경우를 보았는가?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빈민층보단, 고등교육을 받은 상류층이 자발적으로 바쁘게 사는 경우가 많다.
바쁨을 유발하는 사유체계는 기계적으로 생산성을 늘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다. 불행히도 이러한 끔찍한 생각에 사로잡혀 쉬면 불안함을 느끼는 공한족(恐閑族) 이 현대사회에서 점차 늘고 있다. 이들에게 휴식은 죄책감을 수반하는 무기력함과 나약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들은 공장의 기계처럼 쉬지 않고 무언가를 하며, 일을 하지 않는 시간조차도 생산적인 일을 하기 위한 연장선으로 인식한다. <피로사회>의 저자 한병철은 이러한 세태를 “지배 없는 자기 착취” 라 명하고, 주인이 곧 노예가 되며 모두가 저마다의 노동 수용소를 달고 다니는 꼴이라고 비판하는데 무척 동의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보자. 반도체 업계 용어 중, '무어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수십 년간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회사였던 인텔 (인텔이 강했던 PC 시장의 부진과 삼성이 주도하는 메모리 업계의 호황으로, 최근에는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 타이틀을 삼성에 내줬다)의 파운더인 고든 무어가 주장한 것으로, 반도체의 성능이 2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반도체 제조 공정의 복잡화로 기간이 늘어나면서 무어의 법칙이 깨졌다는 이야기를 한다) 성능이 증가하는 반면, 생산 비용은 싸지기 때문에 인텔이나 삼성 같은 반도체 생산 업체들은 수익 극대화를 위해 migration(반도체의 소형화 및 생산능력의 극대화) 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며 매년 조 단위의 투자를 한다. 공장은 쉬지 않고 돌아가야 하며, 기술개발에 뒤쳐지거나 수율 (완제품 생산 성공 비율, 높을수록 좋다) 이 떨어지는 것은 회사에 치명적인 손해로 이어지거나, 심지어 회사의 존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처럼 제조업 중 가장 치열하게 생산성을 따지는 곳 중 하나가 바로 반도체 제조 업계다.
반도체 (특히나 메모리)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급격하게 가격이 하락하기 때문에, 고객들에게 (완제품 업체들 - PC, 스마트폰, 서버 등) 제 값을 주고 칩을 팔기 위해서는 최신 기술이 적용된 신제품을 팔아야 한다. 따라서 반도체 시장은 생산성이 높은 최신 제품을 개발하고 판매할 역량이 되는 소수의 사업자만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다. 기술 개발에 뒤쳐진 기업들은 (그나마 한 3등까지는 근근이 버틴다) 구식이 된 칩들을 헐값에 팔아야 하기에 공장을 돌리는데 소요되는 높은 고정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따라서 과거에는 일본이나 대만에서 반도체 시장에 진출한 걸출한 업체들이 많았지만 대부분 경쟁에 밀려 망했다. 반도체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도시바도 경영난을 겪으며 시장에 매물로 나와있다.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에 뒤쳐지는 것은 곧 죽음이다.
무어의 법칙을 왜 이야기하냐면, 생산성 만능주의 하에 인간이 점점 반도체 칩처럼 변해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기 때문이다. 더 효율적으로 공부하고, 일하고, 자기 계발하고, 멀티태스킹 하고, 일과 육아까지 완벽하게! 무어의 법칙 속 반도체 칩처럼 인간의 생산성은 날로 높아지고 삶은 가속화되며, 우리는 무언가에 쫓겨 늘 시간이 부족하다. 높은 생산성을 위해 바쁘게 사는 것이 미덕인 사회에서, 때때로 잉여로운 시간을 보낼 때마다 우리는 자책이나 불안을 느끼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람들은 자학적이리만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바쁘게 살지만, 경쟁은 경쟁을 부추기고 웬만한 능력과 노력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를 만든다. 무어의 법칙은 생산성 증대뿐만 아니라 비용의 하락 (그리고 판매하는 반도체 칩 가격의 하락) 도 의미하기에, 이 법칙이 인간에게 시사하는 바는 웬만한 상위권이 아니고서야 자신의 가치가 재고품 떨이처럼 급격하게 하락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쓸모없는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가속화된 삶을 살며 사색과 여유는 사치처럼 여겨지고, 대부분의 인간은 자신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한 인식 없이 정체된 질주를 한다.
게다가 우수한 스펙을 갖춰 조건이 괜찮은 직장에 취업하는 졸업생을 배출하는 것이 최고 목적인 교육기관 (마치 생산성이 높은 반도체 칩을 양산하는 공장처럼!) 역시 인간의 반도체칩화에 한몫하고 있다. 이런 교육 환경 속, 문학, 철학, 예술과 같이 인간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들은 설 자리를 점점 잃고, 오로지 생산성 증대에 초점이 맞춰진 교육 (취업하기 좋은 자격증, 외국어, 코딩 등) 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문제는 이런 효율성과 생선성 위주의 교육과정을 우수하게 이수한 사람들에게서 창의성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며, A등급의 학생들은 대부분 대기업이나 공무원, 법률가 의사와 같은 전문직이 되고자 한다. 혁신적인 기업가 혹은 인류에 영감을 주는 사람들은 보통 C등급 학생들일 확률이 높고 이들이 A등급의 학생들을 고용하지만, 생산성 (우수한 성적)을 제 1의 가치로 신봉하는 교육기관 내에선 창의성이 발휘되기 어려우며, 이들은 대개 불량품으로 취급받는다.
이처럼 지나친 생산성 만능주의가 시사하는 것은, 인간이 따뜻한 심장을 가진 유기체에서 점차 차가운 기계 같은 무기체로 변모하고 있다는 점이다. 거대한 바쁨의 공장 속 개인은 하나의 아주 작은 부품이 될 위험에 처해있다. 만약 무어의 법칙이 반도체를 넘어 인간에게도 적용된다면 생각해 볼 점은 두 가지다. 바로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가치가 구식 반도체 칩처럼 헐값이 될 것이라는 점과 인간이 기계화되면서 로봇과 차별화할 수 있는 영역이 적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과도한 바쁨은 분명 개인의 삶을 갉아먹고 인간의 정체성마저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바쁨의 시계를 느리게 맞출 수 없다. 바쁨은 이미 거부할 수 없는 강제적인 규범이 됐다. 다음 파트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다.
** 매거진의 완성을 위해 예전에 썼던 글을 토대로 작성해서 중복되는 부분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