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쁨의 강제 #2
사람들끼리 안부를 묻는 인사말은 '잘 지내니', '뭐하고 사니', '밥은 먹었니' 등 다양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자주 쓰이는 인사말이 있는데, 바로 "요새 바쁘니"다. 만약 이 질문에 '아니 사실 엄청 한가해”라고 답하면 왠지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보일 것 같아, 무의식적으로 바쁘다고 둘러 댄 경험이 아마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또한 잘 지내냐는 지인의 물음에 바쁘다고 투덜거리면서 내심 은근한 만족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현대사회에 바쁨은 황금빛 훈장이다.
베블런은 <유한 계급론>에서 생계를 위해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부자들 (이를 테면 건물주), 즉 유한계급은 각종 여가를 즐기며 상류층의 지위를 뽐낸다고 주장했다. 19세기까지는 분명 그러했다. 상류층은 자신의 지위를 뽐내며, 여유를 즐기고 사치품으로 몸을 치장했다. 상류층이 여가를 향유하는 사이 궂은일은 온통 하류층이 담당해야 했기에, 바쁨은 늘 이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바쁨은 한 때 고된 노동으로 여가를 즐길 여유가 없는 하류층의 숙명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상류층의 지위를 나타내는 징표가 됐다. 절대소득이 늘어나며 명품은 더 이상 예전만큼의 희소가치가 없어졌지만, 바쁨은 여전히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은밀하게 뽐낼 수 있는 수단이다. 바쁘다는 것은 그를 필요로 하는 수요처가 많다는 뜻이며, 바쁜 사람은 희소가치를 가지는 중요한 인물이라는 인상을 준다.
한 때, 광고업자들은 '푸른 바다 앞 선베드에 누워 그윽하게 석양을 바라보는 장면'처럼 여가에 관한 이미지를 상류층의 기호로 이용해 소비 심리를 자극했다. 하지만, 20세기 지식노동의 형태가 보편화된 이후 바쁨이 상류층의 기호로 둔갑하자, 멋진 정장을 갖춰 입고 고급 시계를 차며 바쁘게 일하는 비즈니스 맨이나 커리어 우먼이 광고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세련되고 성공한 사람=바쁘고 프로페셔널함”이라는 인식이 미디어에 의해 전파되며, 기호로서 바쁨의 지위는 격상된다.
이러한 가설을 뒷받침하는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콜럼비아 대학에서 바쁨과 사회적 지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알아보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실험의 참가자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35세 남자 제프에 관한 설명을 듣는데, 그룹마다 내용이 다르다. A그룹에게 제프는 달력에 늘 일정이 있는 바쁜 사람이다. 반면, B그룹에 묘사된 제프는 일을 하지 않고, 여가가 넘치는 삶을 즐긴다. 이 두 그룹에게 제프의 사회적 지위를 측정하는 점수를 매기게 했더니, A그룹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이는 19세기 베블런이 주장한, 여가는 상류층이 즐길 수 있는 사치라는 생각과는 정반대의 결과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A와 B 두 그룹에게 35세의 여자 앤에 관한 설명을 한다. 이때, A그룹과 B그룹에게 묘사된 앤은 각각 핸즈프리와 헤드폰을 쓰고 있다. 실험 참가자들이 평가한 앤의 사회적 지위는 어떤 경우 높았을까? 바로 A그룹이다. 왜냐하면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고 듣기에만 집중하는 헤드폰 대비, 멀티태스킹을 하는데 용이한 핸즈프리를 쓴다는 것은 그 사람이 바쁘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물건은 간접적으로 그 사람의 습관과 바쁨의 정도를 나타내는데, 이는 사람의 사회적 지위가 물건에 근거해(가격이 아닌 바쁨의 수준으로) 평가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마지막 실험은 참가자들을 A, B, C 세 그룹으로 나누고, 35세의 남자 매튜라는 인물을 보여준다. A 그룹에게는 온라인 쇼핑, B 그룹은 가격대가 높은 유기농 식품매장, C그룹에게는 일반적인 대형마트를 이용하는 매튜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에게 매튜의 사회적 지위를 추론하게 했더니, 흥미롭게도 유기농 제품을 애용하는 모습을 본 B그룹과 온라인 쇼핑을 이용하는 모습을 본 A 그룹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평가가 비슷했고, C 그룹은 예상대로 낮은 점수를 줬다. B그룹은 매튜가 비싼 유기농 식품을 이용하는 모습을 봤으니 상식적으로 높은 점수를 부여하는 것이 맞지만, A그룹은 대체 왜 높은 점수를 줬을까? 이는 온라인 쇼핑은 직접 쇼핑할 시간이 없는 바쁜 사람들에게 적합한 소비 양식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즉, A그룹은 매튜의 지위를 평가하는 데 있어, “온라인 쇼핑→ 바쁨 -> 사회적 지위가 높음”이라는 사고를 거친 것이다.
콜럼비아 대학의 실험과는 별도로, 나는 결혼 시장에서도 바쁨이 일종의 지위를 판별하는 기호로 작용하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아주 바쁜 남성과 무척 한가한 남성 중 여성에게 선택받을 확률이 높은 쪽은 대개 전자다. 여성 지인들에게 배우자의 이상형 (외모나 성격을 제외한 세속적 조건)에 대해 물어보면, 본인보다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우월한 혹은 최소한 동등한 수준의 남성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여성들이 선호하는 “존경할만한 남자”, “자기 일 열심히 하는 남자”, “성실한 남자”, “능력 있는 남자” 등은 사실 대부분 평균 이상으로 바쁜 사람들이다.
남녀 사이 관계를 지속하는 데 있어 꾸준한 정서적 교류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역할을 수행할 여유가 없는 바쁜 남성에 불만을 느끼고, 결국은 관계가 끝나버리는 경우도 왕왕 있다. 여자에게 나쁜 남자보다 더 나쁜 것은 바쁜 남자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바쁜 남성이 기피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바쁜 남성들이 다른 수컷들과 짝짓기 경쟁하는 데 있어, 우위를 점하는 것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예를 들어 결혼시장에서 일반적으로 선호되는 남성의 직업 군 (의사, 법조계 등의 전문직)에 속한 사람은 대부분 강도 높은 노동을 하는 바쁜 사람들이다.
바쁨은 어쩌다 강제성을 지닌, 지위를 드러내는 기호가 됐을까? 한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유는 높아진 계층 이동성이다. 세계가 저성장에 접어들기 전, 특히 20세기는 바쁘게 열심히 살면 바쁨의 주체가 계층의 사다리를 올라갈 확률이 높았다. 따라서 바쁘게 사는 사람을 보면 이 사람의 지위가 미래에 으레 상승할 것으로 기대했기에, 바쁨은 일종의 성공으로 가는 보증수표처럼 여겨졌다. 자신보다 바쁘게 사는 사람을 보면서, 이 사람은 이미 성공의 트로피를 향해 올라가는데 자신은 정체된 것처럼 느껴져 불안을 느끼고 스스로에게 바쁨의 채찍질을 하던 것이 현재까지 계속되는 것이다.
게다가 타인과 자신을 구분 지으려는 인간의 습성도 바쁨의 강제와 기호화에 한 몫한다. 자신의 지위를 드러내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사치품을 사서 재력을 과시하는 방법이다. 명품이나 스포츠카를 사는 사람들의 심리에는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이 정도 물건쯤은 구매할만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어”라는 우월감이 깔려 있다. 여기서 좀 더 고도화된 형태는 취향인데, 피에르 브루디외는 <구별 짓기>에서 문화적 취향이 계급을 구분 짓는 중요한 사회적 기호가 될 수 있음에 주목했다. 예를 들어, 지금은 많이 대중화됐지만 한 때 잔디는 상류층의 상징이었고 푸른 잔디에서 골프를 치는 취미를 가진 것은 상류층만의 사교 문화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바쁨은 가장 고도화된 은밀한 방식으로 자신의 지위를 드러내는 데 사용된다. 바빠서 정신이 없다는 말속에는 “나를 찾는 곳이 이렇게나 많기에 나는 무척 쓸모 있는 인간이다”라는 전제가 깔려있으며, 인간은 바쁨을 통해 자신의 존재 유용성을 증명한다. 사치품, 취향에도 급이 생기고 경쟁이 붙듯이, 현대인의 바쁨에도 경쟁적인 면모가 보인다. 마치 누가 더 가치 있는 인간인지 뽐내듯이, 바빠 죽겠다고 하는 한편, “바쁠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하며 경쟁한다. 이러한 바쁨의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사람, 무능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 바쁨 권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따라서 사회화 동물인 인간에게 바쁨은 강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