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쁨의 강제 #3
2,617번. 연구기관 Dscout의 조사에 따르면, 현대인이 하루에 스마트폰을 터치하는 평균 횟수라고 한다. 그리고 어떤 연구결과에 의하면, 아무런 알림이 없는데도 휴대폰의 진동을 느끼는 것(유령 진동 증후군이라 한다) 은 현대인들이 겪는 보편적인 증상이라고 한다. 인터넷과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분명 인간의 삶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필수가 됐다. 단언컨대,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불, 총, 자동차 등처럼 인류의 역사를 바꾼 굵직한 발명품들과 어깨를 함께할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의 확산은 19세기부터 시간을 계량적으로 측정하는 시계가 퍼진 이후, 20세기, 21세기에 걸쳐 사람들의 삶을 가속화시키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디지털은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인식하거나 행동하게끔 유도한다. 당신이 놓치고 있는 메시지나 뉴스가 없는지, 여백의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동시에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 디지털의 시간은 여백이 없으며 쉴 틈을 주지 않는다.
디지털은 어떻게 바쁨을 강제하는가? 우선, 단축된 의사소통 시간을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편지는 예로부터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요긴하게 사용되는 수단이었다. 비록 팩스나 전화의 발명으로 입지가 줄어들긴 했지만, 편지는 문자의 발명과 역사를 거의 같이할 정도로 오래됐기에, 20세기 말까지 주요 의사소통 수단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인터넷과 이메일의 발명은 편지의 지위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했는데, 이때 줄어든 것은 우체국의 수뿐 아니라 사람들 간 의사소통에 걸리는 시간이었다.
가령, 편지를 주고받던 시절에는 수신자가 편지를 받기 위해서는 최소 하루에서 최대 몇 주까지 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편지를 주고받는 것은 다소 느리고 긴 호흡의 의사소통이었고, 편지의 수신자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답신을 고민해서 보내곤 했다. 연애편지를 주고받은 적이 있는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설레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수 어차례 편지를 고쳐 쓰고, 답신이 언제 올까 발을 동동 구르던 아름다운 기다림을.
하지만, 이메일이 편지를 대체하며 이러한 기다림은 사치가 됐다. 이메일은 발송 버튼을 클릭하는 순간, 즉각 수신자에게 전달되며 수신자는 바로 “답장” 버튼을 클릭해야 할 것 같은 무언의 압박을 느낀다. 게다가 휴대폰이 보급되며 언제 어디서나 소통할 수 있다는 명분이 생겼고, 의사소통의 시간은 더욱 단축됐다. 심지어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MIM (Mobile Instant Messenger, 카카오톡과 같은 채팅앱) 이 소통의 주요 수단으로 자리 잡으며, 사람들은 수신자가 메시지를 읽지 않았다는 표시 “1”을 수시로 확인하고 조급함을 느끼는 상황에 이르렀다. 디지털로 인해 사람들은 의사소통 사이에 존재했던 은근한 기다림을 더욱 견딜 수 없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의사소통 시간의 단축은 노동을 직장에서 일상생활까지 전이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업무가 끝난 후에도 쉴 새 없이 울리는 회사 단체 카톡은 “카톡 감옥”이라는 말이 있듯 엄연한 폭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의성을 핑계로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 노동의 연장 행태는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으며, 이것에 노출된 사람들은 5분 전투 대기 부대 (군대에서는 5 대기라 불리며, 비상 상황을 대비해 5분 내 출동할 수 있게 언제나 만반의 준비상태로 대기한다)처럼 언제 일이 주어질지 모른다는 스트레스를 항상 받는다.
두 번째는, 그림자 노동이다. 크레이그 램버트는 <그림자 노동의 역습>에서 이에 대해 상세히 다뤘는데, 그림자 노동이란 임금을 받지 않고 하는 모든 일을 말한다. 저자는 기업이 인건비 절약을 위해 요구하는 그림자 노동의 강도가, 현대사회에서 은밀하게 점점 강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식당에 붙어있는 “물은 셀프”, 공항의 키오스크, 셀프 주유소, 수시로 바꿔야 하는 비밀 번호 (심지어 특수문자까지!), 마트에서 쇼핑 뒤 소비자들이 스스로 박스에 물건을 담는 것, 직접 조립하는 가구 등은 모두 소비자들에게 떠넘겨진 그림자 노동의 사례들이다.
특히나 디지털은 소비자들에게 자발적인 그림자 노동을 하게 만들었는데, 대표적인 예가 SNS다. 과거에는 여행을 가거나 기타 취미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여가 그 자체를 즐기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일부 SNS 유저들에게는, 여가의 의미가 변질돼버린 듯하다. 남들이 올린 해외여행이나, 근사한 맛집, 로고가 박힌 트레이닝복을 입고 운동하는 인증샷 등을 보며 이들은 경쟁적으로 자신도 무언가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이처럼 의무감을 느끼는 상태론, 여가의 본래 목적인 비워내기를 실천하기 어렵다.
정보화 시대에 데이터는 일종의 자원이고, 소비자들의 그림자 노동은 거대 기업들의 자원 축적으로 사용된다. 인터넷 플랫폼은 고객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세분화하여 자사의 비즈니스에 사용하는데, 얼마나 정교하고 많은 데이터를 구축하는 것이 승패를 가른다. 이때, 정보를 수집하는 대표적인 플랫폼 주체는 크게 검색엔진, 전자상거래, SNS 그리고 MIM으로 나눌 수 있는데, 특히나 페이스북은 정말 기막힐 정도로 그림자 노동 유도를 잘하는 장사꾼이다.
지금은 페이스북이 많은 사용자와 기업들 간의 제휴를 바탕으로 미디어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페이스북의 본질은 사용자들이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고 온라인에서 사회화 (좋아요, 친구 추가 등) 하는 플랫폼이다. 이때, 사용자들이 올리는 콘텐츠와 온라인 사회화 행태는 페이스북의 데이터 센터에 저장이 되고, 이는 광고 수익으로 막대한 돈을 버는데 이용된다. 데이터가 21세기 새로운 천연자원이라면, 페이스북은 소비자들이 스스로 작업복을 입고 광산에서 노동을 하게끔 만드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멀티태스킹을 들 수 있다. 디지털은 시공간적 제약을 파괴하며 사람들에게 동시에 가능한 많은 일을 하는 멀티태스커가 될 것을 요구한다. 가령, 핸즈프리를 낀 채 통화하며 운전을 하는 것, 햄버거를 먹으며 컴퓨터로 일을 하는 것,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며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는 것, 빠른 속도로 웹과 앱을 오가며 스마트폰을 보는 것, TV를 보며 수시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들은 모두 디지털이 확산된 이후 보편적으로 행해지는 멀티태스킹이다.
멀티태스킹을 하는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명백한 오해다. MIT대학의 뇌 신경학자 얼 밀러에 의하면 우리의 뇌는 한 가지 일을 처리하도록 설계돼있는데, 사람들이 멀티태스킹을 수행한다고 착각할 때, 실은 뇌가 A에서 B 일을 하도록 매우 빨리 전환될 뿐이며 매 멀티태스킹마다 전환 비용이 든다. 따라서 디지털이 강요하는 멀티태스킹은 뇌의 과부하를 야기하고, 업무의 효율을 저하시킨다. 예를 들어, 나눠서 하면 100의 에너지를 소비할 A와 B의 일을, 동시에 하면 전환 비용을 포함한 120의 에너지가 소비되고, 이는 그 주체로 하여금 피로와 바쁨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촘촘한 비트 단위인 디지털의 시간 속에서 살고 있다. 디지털의 시간 속 여백은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은 마치 기계처럼 항상‘스위치-온’ 상태가 되기를 명령받는다. 인공지능을 필두로 한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더욱 거세게 삶을 가속화시키고, 집에서, 교통수단에서, 직장에서 우리의 삶을 잠식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터넷을 쓰고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상황에서, 사회화 동물인 인간이 나홀로 디지털을 거부할 수 있을까? <월든>을 쓴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숲에서 혼자 생활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생활 곳곳에 침투한 디지털을 피할 수 없다. 디지털 시대에 바쁨은 강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