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쁨의 미래 #1
현대인이 얼마나 바쁘게 사는지, 바쁨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왜 바쁨은 강제인지 등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각 논점들에 대해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현대인의 시간관은 지나치게 미래에 치우쳐져 있고, 바쁨은 만성적이다.
- 본래 비워냄을 뜻하는 뺄셈의 형태였던 여가는, 일의 연장선이거나 목적이 있는 덧셈의 여가 혹은 기호 경쟁으로 변질됐다.
- 여성은 단시간에 사회적, 경제적 지위의 상승을 경험했지만, 완벽한 엄마와 직장인이 될 것을 요구하는 사회의 기대 속 여성의 삶을 더욱 가속화했다.
- 정체된 질주 (사색과 여백, 목적의식 없이 하루를 바쁘게 살아내는 상태)가 현대인들 사이 만연하며, 이것은 불안에 대한 방어기제다.
- 19세기 열차의 발달로 시간을 계량적으로 측정하는 시계의 확산 및 시간의 표준화가 진행되는 사이, 시간은 ‘규율화’됐다.
- 인간이 시간에 대해서 인식하는 관념이, 사건의 시간에서 시간의 시계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바쁨은 확산됐다.
- 신의 권위를 등에 업은 종교는 근면과 금욕을 강조했고, '시간 낭비는 죄악이다'라는 인식을 퍼뜨렸다.
- 돈은 신에게 바통을 이어받아, 삶의 가속화를 부채질했다. 돈을 모으는 것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은, 바쁨의 주요 동인이다.
- 생산성 만능주의 속, 인간은 점차 빠른 기능을 요구하는 반도체 칩처럼 변해가고 있다.
- 현대인의 바쁨은 성과를 내기 위해 과도하게 스스로를 채찍질하는,‘지배 없는 자기 착취’의 형태를 보인다.
- 삶의 가속화 속 점차 바쁨은 선택이 아닌 의무이자 강제가 된다.
- 세계화로 경제 시스템의 단일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청교도 정신과 자본주의로 무장한 서양의 바쁨에 대한 인식 체계가 동양에 급속히 전파됐다.
- 바쁨은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척도가 됐으며, 사람들 간 자신이 얼마나 쓸모 있고 바쁜 인간인지 보여주기 위한 경쟁의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 디지털은 의사소통의 단축, 그림자 노동, 멀티태스킹의 확산을 야기하며 삶을 가속화한다.
여태까지의 내용이 주로 현상 파악과 원인 분석이었다면, 앞으로는 주로 전망 및 대안에 대해서 다룰 것이다. 바쁨의 미래는 무엇일까? 간단히 말하면 양극화다. 바쁨의 정도는 계층에 따라 극명하게 갈릴 것인데, 이는 기존의 바쁨의 양상과는 사뭇 대조적인 양상을 띌 것이다.
기존의 바쁨은 '바쁨은 좋은 것이다'라는 하나의 구호 하에 사람들을 규합하며, 바쁨의 행군에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바쁨의 강도 및 세력은 점차 강해졌고, 사람들은 모두 인생의 나침반을 미래에 맞춘 채, 부단히 행군을 이어나갔다. 하루 24시간 제한된 시간 속에서, 의무 생활시간 (일, 교육 등)을 늘리고 잠과 여가를 줄이는 것이 공동의 선으로 받아들여졌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현대인이 공통적으로 겪는 증상은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삶이 여유 없고 바쁘다는 것이다. 여태껏 바쁨은 보편적인 속성을 가졌다.
하지만, 이제 거대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데이터와 인공지능을 등에 업은 디지털 기술은 신과 돈의 출현 이후 바쁨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바쁨은 더 이상 보편성이 아닌, 선별성을 가질 것이다. 바쁜 사람과 그렇지 않은, 혹은 못한 사람의 바쁨의 수준 차이는 그 어느 때보다 벌어질 것이다. 그동안 '바쁨은 좋은 것이다'라는 하나의 구호 하에 다 같이 의무 생활시간을 늘려왔던 인간은, 기술의 발전 때문에 자발적으로든 비자발적으로든 엄청난 여가를 얻게 될 것이다. 문제는 그동안 너무나 바쁘게 사느라 쉬는 법을 잊은 현대인들의 대다수는 엄청나게 증가한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를 것이라는 점이다.
앞으로 출현할 세 가지 계급은 다음과 같다. 바쁨을 자유자재로 통제하고 막대한 부를 소유한 1%의 초 엘리트. 기존 수준의 부를 유지하기 위해서, 교육이나 일과 같은 의무에 매진하며 그 어느 때보다 가속화된 삶을 살 50%의 평범한 사람들. 그리고 기계에 비자발적으로 바쁨을 뺏긴 나머지 절반의 잉여인간들. 과연 이 수많은 잉여인간들은 무얼 해야 할까? 앞으로 수 십 년간, 우리는 극단적인 바쁨의 양극화를 목격할 것이고, 이는 바쁨의 역사에 무척 중대한 변곡점으로 남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변곡점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