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선 가능했던 '아저씨와 소년'의 해피엔딩 <시인의 사랑>
자칭 그리고 타칭 시인 택기(양익준 분)는 제주 토박이로 나고 자라 자신과 똑같은 제주 토박이인 영순(전혜진 분)과 결혼해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을 보내고 있다. 택기가 '자칭 시인' 뿐만 아니라 '타칭 시인'이 될 수 있는 까닭은 그가 시인으로서 잘 나가서가 아니라, 다만 그가 시 쓰는 일 말고는 별달리 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6년 전 한 작품이 당선되어 상금까지 받은 적이 있긴 하지만, 그때 이후로 이렇다 할 성과도 못 낸 채 매일매일 동네를 돌아다니며 시상을 얻고 또 시를 쓰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인 택기. 그런 그의 시는 동네의 시 쓰기 모임의 동료들에게서도 좀처럼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무능하다'는 자괴감을 이미 가슴 절절하게 느꼈을 법도 하건만, 설상가상으로 택기가 가지고 있는 '생식능력에서의 무능함'도 새롭게(?) 알려진다.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아내 영순의 바람과는 달리 택기는 아이를 키울 자신도 없고, 좀처럼 아이가 들어서지도 않는다. 그는 자기 자신을 돌보기에도 빠듯하다.
생활에서도 시詩에서도 길을 잃은 그에게, 새로 생긴 동네의 도넛 가게는 행복의 시작이었다. 도넛이 맛있어서 그러냐고? 맞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그곳에는 도넛 가게의 알바생 세윤(정가람 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같이 도넛 가게로 출근하는 택기. 그곳에 가면 도넛도 먹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끼게 하는 세윤도 만날 수 있다.
자신이 남자를 좋아한다고는, 아니 좋아하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택기는 세윤을 처음 본 순간부터 그에게 끌리고 만다. 호감 가는 외모, 아무리 많아봐야 자기 조카뻘쯤 되는 어린 나이, 그리고 남자...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세윤에게 느끼는 이 감정은 뭔가 잘못된 것 같다. 하지만 '사랑'이라고 생각되는 이 감정은 동시에 택기의 삶에 새로운 빛을 드리우기 시작한다. 세윤은 택기에게 이전까지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느끼게 해 주고, 창작의 영감이 되고, 시를 쓰게 만들고, 지루하게 반복되던 그의 삶에 환기가 되어준다. 얄궂게도 함께 시를 쓰는 동료들은 세윤을 만나서 쓰게 된 시들에 호평 일색이다.
세윤을 만난 후로 택기에게 찾아온 행복은, 유지되기는커녕 애초에 성립하는 데에도 애를 먹는다. 세윤에 대해 알게 된 주변 친구들과 아내 영순의 반응은 말할 것도 없고, 세윤 본인이 가진 가정사의 불행, 그리고 현실의 장벽은 택기와의 관계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다. 차라리 세윤이 여자였더라면. "아무것도 모르는 불쌍한 어린 여자애를 꼬드긴 도둑놈" 소리를 들을지언정, 세윤과의 사랑의 도피를 비정상적인 일, 결코 있을 수 없는 일로 치부되진 않았을 텐데. 세윤과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택기의 머릿속과 그의 주변을 둘러싼 상황은 점점 복잡해진다.
학부 2학년 때 들은 과학철학 수업에서였다. 소크라테스를 비롯하여 그 유명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에게 동성애는 매우 당연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충격이었다. 남자와 남자의 사랑이라는 대목이 충격이었던 것이 아니라 (참고로 나는 여자건 남자건 동성애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성인 남자'와 '소년' 사이의 사랑이라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아동성애pedophilia라는 죄목 하에 수갑 차고 끌려가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과 동시에 그간 가지고 있던 고대 철학자들의 이미지와 도저히 연결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플라톤은 자신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남자애들만 보면 사족을 못쓴다boy crazy"고 묘사하며, 소크라테스는 미소년들 사이에 있을 때면 거의 정신을 못차리는lost his senses 수준이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던 유일한 방법이 바로 소년들에게 어려운 질문을 던지고 철학을 가르치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방금 소크라테스가 소년들에게 정신을 못 차린다는 대목과 더불어, 그들에게 철학을 가르친다는 이야기가 함께 나왔는데, 이 두 구절이 고대 그리스에서 성행했던 동성애의 형태를 잘 보여준다. 한마디로 말하면 스승과 제자 사이의 관계가 동성애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당대 그리스에서는 동성애나 이성애를 구별 짓는 특별한 단어는 없었다. 다만 '사랑'이라는 말을 이성 간에 혹은 동성 간에 적용시킬 뿐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랑이 스승 역할을 하는 성인 남성과 제자인 어린 소년 사이에 벌어질 때 전자를 에라스테스erastes, 후자를 에로메노스eromenos라고 불렀다.
에로메노스의 경우에는 아직 수염이 나지 않았을 즈음의 나이였고 따라서 아직 시민권이 없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일정 나이가 지난 성인 남성에게만 시민권이 주어졌다. 물론 이때 노예는 제외한다) 에라스테스는 에로메노스에게 있어 일종의 보호자 역할을 하면서 학문을 가르침과 동시에 그를 한 명의 사회인으로 성장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그리스인들에게 있어 그러한 성장에는 아마 육체적 및 성적인 요소도 포함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이러한 관계는 에로메노스가 성인이 되면, 즉 이제 성장이 끝났다고 여겨지면 끝나는 일시적인 관계였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 중 스승과 제자 사이였던 이들이 바로 이런 관계에 해당했으며, 소크라테스는 그를 따르고자 했던 제자들이 많았던 만큼 거느리고 있던 에로메노스들도 대단한 꽃미남들이었다는 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문헌 속에서 일반적으로 얼굴도 못생기고 배도 나온 추남으로 묘사되는데, 정작 그는 미소년들이 서로 갖지 못해(?) 안달인 마성의 남자였다니... 앞서 내가 말한 '이미지와 연결되지 않는다'라는 것은 이걸 두고 한 말이다.
'플라토닉 러브'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이때의 '플라토닉platonic'은 철학자 플라톤Plato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플라톤이 그의 책 <향연Symposium>에서 찬양한 사랑의 형태를 일컬어 '플라토닉 러브'라 부른 것인데, 이는 우리가 흔히 이 단어의 의미로 알고 있는 '성적인 요소를 배제한 정신적인 사랑'과는 거리가 있다. 플라톤이 말한 최고의 사랑은 단순히 육체적인 끌림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끌림에서 시작해 마지막에는 서로가 정신적인 영역에서의 최상의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게 만드는 사랑이다. 플라톤은 이러한 유형의 사랑은 이성 간이 아닌 동성 간에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랑은 번식 즉 자손의 재생산이라는 기능적인 측면이 강한 데에 반해, 동성 간의 사랑은 이러한 것에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므로 정신적인 목적을 추구할 수 있어 보다 우월한 형태의 사랑이라며 플라톤은 동성애를 찬양한다.
그런데 동성애에 관한 이러한 플라톤의 태도는 그의 다른 저작인 <법률The Laws>에서는 전혀 딴판으로 나타난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도시에서는 동성애가 근친상간과 동일하게 취급될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동성애는 자연적 본성에 어긋나는 것이고 신에게 불경하며, 흉한 것들 중에서도 제일 흉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처럼 동성애에 대한 모순적인 입장은 플라톤 개인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 사람들 일반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이를 두고 여러 가지 추측과 가설들이 등장했는데, 이러한 모순되는 입장을 그나마 잘 설명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 케네스 도버Kenneth Dover가 1963년 내놓은 설명이다. (그러나 도버의 설명에도 여러 가지 허점들이 있어 완벽한 해답은 되지 못하고 있다)
도버는 동성애에 대한 이중 잣대의 이유를 성적 관계에서의 역학관계에서 찾는다. 그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에서는 성적인 관계에서 삽입하는 쪽을 능동적인 역할로 보아 강하고 '이긴 것'이라고 생각했고, 반대로 삽입을 당하는 쪽은 수동적인 위치로서 지위가 더 낮고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이성 간의 성적 관계를 생각해본다면, 여자가 수동적인 역할을 맡게 되고 따라서 남자보다 지위가 낮아진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에서 여성은 시민권이 없었으므로 성인 남성보다 지위가 낮았다. 이와 달리 시민권이 있는 두 남성 간의 관계처럼 서로 동등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라면, 성관계를 통해서 어느 한쪽이 반드시 상대방보다 지위가 더 낮아지는—수치스러운 결과를 내게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경우의 동성애는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게 된다. 반면 에라스테스와 에로메노스 간의 동성애는 양쪽이 동등한 지위를 갖고 있지 않다. 에라스테스는 스승이자 시민권을 가진 사람으로서 더 높은 지위에, 에로메노스는 가르침을 받아야 할 제자이자 아직 시민권도 없는 더 낮은 지위에 위치한다. 즉 이 경우에는 성적인 역학 관계가 실제 지위의 상하와 충돌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는 것이다. 따라서 플라톤은 스승과 제자 사이의 동성애는 찬양하되, 그 외의 동성애는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이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 포함) 도버의 해석을 따르면, 택기와 세윤의 관계는 고대 그리스에서 찬양받아 마땅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물론 세윤이 자립할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전까지만 관계가 지속된다는 조건 하에서이긴 하지만. 택기는 세윤과의 만남을 통해 이제 겨우 시다운 시를 쓸 수 있는 시인이 되었고, 세윤은 택기를 통해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되었는데, 이 둘을 떼어놓아야만 하다니 어째 득 보다 실이 더 많은 느낌 아닌가. 고전의 자리에서 몇천 년간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 <오이디푸스 왕>을 지은 시인 소포클레스는 고대 그리스 사람이었고, (당연하게도?) 미소년과 스캔들이 난 전적도 있다. 그뿐인가. 고대 그리스는 자고로 주기적인 비극 경연대회를 열어 걸출한 시인들을 여럿 배출해냈으니, 택기가 그리스로 가는 것은 자신의 창작을 위해서도 사랑을 위해서도 손해는 아니리라.
영화에서는 택기가 세윤과 헤어진 후 잘 팔리는 시집을 한 권 냈지만, 혹시 아나. 그가 세윤과 함께 그 옛날 그리스로 돌아갈 수만 있었다면, 끝없이 떠오르는 창작의 영감에 한 권이 아니라 두 권, 세 권을 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 그랬다면 택기가 그의 에로메노스를 놓아줘야만 할 때, 영화 속에서의 3000만 원 보다 더 큰 거금을 건넸을지도 모르겠다고 상상해본다.
* 영화 정보: 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08946
* 참고문헌:
James Davidson <The Greeks and Greek Love>
Amos Kamil, Sean Elder <Great Is the Truth: Secrecy, Scandal, and the Quest for Justice at the Horace Mann School>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유경희 <그림 같은 여자 그림 보는 남자>
윤일권 「고대 그리스 사회와 신화 속의 동성애」, 연세대학교 유럽사회문화연구소, <유럽사회문화> 3권 0호 (2009), pp.5-27
* 커버 및 본문 속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