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민, 디오니소스로의 'MOVE'

니체에게 바그너가 있다면 나에겐 태민이가 있다 (feat. 덕밍아웃)

by 오수민

또래 친구들이 한창 아이돌에 관심을 주던 시절, 나 홀로 꿋꿋이 영국 락밴드와 지금은 찾을래도 찾기 힘든 인디밴드들의 음악에 심취해있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아이돌 문외한으로 십 대 시절을 마무리하는가 싶었는데, 하필이면 수능을 봐야 하는 해에 뜻밖의 덕통사고를 당해 뒤늦게 아이돌의 길에 입문하고 말았으니. 시작은 샤이니, 그리고 엑소를 거쳐 방탄소년단까지.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모니터 덕질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내 아이돌의 춤을 내가 추겠다는 일념으로 춤까지 배워 공연을 하는 등 나는 훌륭한 덕후로 자라났다.


덕후들의 우스갯소리 중에 '최애는 결정하는 게 아니라 하늘이 점지하는 거'라는 말이 있다. 이런저런 진영에 눈을 돌린다고 해도 내게 본진을 말하라면 샤이니고, 그중에서도 태민이다. 사실 그간의 태민의 솔로 활동이 내 취향과는 거리가 있었던 데다가 최근 방탄소년단의 활동까지 더해 태민이에 대한 팬심이 조금 식어서 이제 내 최애는 태민이가 아니라 지민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던 찰나. 나는 보고야 만 것이다. 태민의 'MOVE'를..!


그렇다. 이건 태민의 이번 신곡이 취향을 저격하다 못해 뚫어버려서 식어가던 팬심이 다시 뻐렁치는 걸 주체하지 못하고 본격 덕업일치를 꾀하려는 태민 덕후가 쓰는 글이다.




아폴론 vs. 디오니소스


니체는 그의 초기 저작 <비극의 탄생>에서 소크라테스 이후로 유럽의 예술과 문화가 얼마나 아폴론적으로 치우쳐 버렸는지 한탄한다. 아폴론적인 가치가 지배적이었던 당대의 문화가 얼마나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있는지를 비판하면서, 니체는 '디오니소스적'인 에너지를 부활시킬 것을 주장한다.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의 상징은 니체가 처음 사용한 것은 아니고 이전에 독일의 예술가들에 의해 행해진 바 있는 것으로, 두 그리스 신이 대표하는 이미지에 따라 두 종류의 서로 상이한 가치들을 분류한 것이다.


아폴론은 태양의 신으로 이성과 질서를 관장한다. 밝음, 질서, 이성. 이 세 가지를 주축으로 이와 유사한 가치들은 모두 아폴론적인 속성으로 볼 수 있다. 반면 술의 신으로도 잘 알려진 디오니소스혼돈 비질서, 그리고 본능을 대표하는 신이다. 옛날 고대 그리스에서 그의 이름을 따 벌어진 디오니소스 제전 또한 술판과 춤판을 메인으로 한, 위와 같은 이미지에 잘 들어맞는 행사였다. 이처럼 두 신의 대조적인 이미지를 염두에 둔다면 어떠한 가치가 어느 쪽에 속하는지 구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대표적으로 사고思考, 자기절제, 이성, 논리, 질서, 인간이 만들어낸 법과 문화 등이 아폴론적으로 분류되고, 느낌, 열정, 비이성, 본능, 비질서, (술 등에) 취한 상태, 인위적인 요소가 배제된 자연 등은 디오니소스적이라고 분류된다.


니체가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의 이분법을 언급한 것은 예술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흔히 영감을 받아 예술 작품이 창작된다고 말한다. 이 영감은 논리나 이성과는 거리가 먼, 순간적으로 생동하는 어떠한 본능적인 힘으로, 창의적인 활동에 있어 필수적이다. 하지만 영감만 넘친다고 해서 좋은 예술 작품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자고로 명작이란 영감과 그 영감에 틀을 잡아주는 질서가 적절하게 조화된 작품이다.


니체가 보기에 소크라테스가 등장하기 전 그리스 문화에는 가지런한 질서 외에도 본능적이며 생동감 넘치는 디오니소스적 힘이 살아있었다. 소포클레스가 <오이디푸스 왕>을 무대에 올렸던 것처럼, 고대 그리스의 시인들이 비극 경연대회에 자신이 창작한 비극 작품을 선보일 때 필수적이었던 무대 구성 요소 중에 하나는 '코러스chorus'라고 불리는 일종의 합창단이었다. 사람에게 감정에의 몰입을 효과적으로 불러일으키는 음악이라는 형식의 예술은 니체에 따르면 예술의 형식 중 가장 디오니소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잘 짜인 플롯에 감정적으로 약동하는 힘을 가진 음악이 합쳐져, 생동감 넘치는 디오니소스적 힘이 질서 정연한 아폴론적 형식으로 나타나게 되고, 이는 곧 디오니소스적인 힘과 아폴론적 힘의 균형이 잘 잡힌 좋은 예술 작품이 된다.


TAEMIN 태민 'MOVE' #1 MV.mp4_000049299.png 본문의 맥락과 크게 상관은 없다. 그냥 사심을 가득 담아 넣어보았다.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등장해 인간 이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후 그리스의 문화는 디오니소스적인 힘을 경시하고 이성적인 아폴론적 가치만을 숭상하는, 억압적이고 건강하지 못한 상태가 되었다고 니체는 비판한다. 그러면서 니체는 다시 한번 디오니소스적인 예술적 에너지를 부활시킬 것을 주장한다. 니체는 당대 문화 예술에서 디오니소스적 힘의 부활 가능성을 바그너의 음악에서 찾았다. 그리고 나는 그 가능성을 태민에게서 찾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디오니소스님


니체가 틀리지 않았다. 역시 음악은 디오니소스적인 본질을 가장 잘 포착하는 예술이다. 태민의 신곡을 들은 그 순간부터 뻐렁치기 시작한 나의 덕심이 좀처럼 가라앉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시들했던 팬심 때문에 공개 당일보다 며칠 늦게 접했는데, 그야말로 "늦어서 죄송합니다"의 심정이었다.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태민의 'MOVE'는 뮤직비디오와 노랫말, 컨셉 모두가 아폴론의 상태에서 디오니소스의 상태로의 이행을 권유하고 있다.


우선 'MOVE'는 질서 정연함에서 혼돈으로의 변화를 긍정한다. 이는 가사에서부터 플레인하게 드러나고 있다. "잘 빗은 머리가 헝클어"지는 것, "반듯한 자세가 흐트러"지는 것, "신경 쓴 화장이 번"지는 것, "단정한 셔츠가 구겨"지는 것. 이는 모두 질서에서 비질서를 의미하며, 노래의 화자는 이러한 변화가 모두 아름답다고 긍정하며, 괜찮으니 그대로 내버려두라고 안심까지 시킨다.


계속해서 등장하는 '어둠'의 모티브 또한 디오니소스적이다. 앞서 아폴론은 '밝음'을 상징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태민의 뮤직비디오에서는 소수의 장면을 제외하고는 어두운 화면이 지배적이다. 시간적 배경이 밤으로 보이는 장면이 다수이며, 조명 또한 강하지 않다. 흔히 강한 조명을 사용해서 퍼포먼스를 강조하는 여타 뮤직비디오들과는 현저히 다르다. 또한 가사의 후렴구에 등장하는 "어두운 조명" 또한 이러한 '어둠'의 모티브 중 하나이다. 디오니소스적인 힘은 어두운 곳에서 약동하는, 그 정체를 완벽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생명력으로서, 아폴론이 자신의 태양 아래 사물들을 가감 없이 드러내 시비를 가리는 것과 대비된다.


TAEMIN 태민 'MOVE' #1 MV.mp4_000066691.png 어둡고 몽환적인 분위기로 일관하는 'MOVE'의 컨셉


어딘가 불분명한 몽환적 분위기의 뮤직비디오 컨셉과 태민의 메이크업, 그리고 "묘한 분위기에 취"한다는 노랫말 또한 지극히 디오니소스적이다. 디오니소스는 술의 신인만큼, 제정신(?)에서 벗어나 황홀경ecstasy에 이른 상태를 긍정한다. 조금 더 덧붙여 설명하자면, 이렇게 도취된 상태에서 나오는 힘은 창조의 생명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파괴적인 성격 또한 가진다. 디오니소스적인 생명력은 단순히 창조만을 의미한다기보다 그 기저에 있는 의지 그 자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스스로 창조하고 파괴하는 것을 되풀이하는 원동력을 가지고 있는 힘이라고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뮤직비디오에서 끊임없이 물에 젖은 모습이 등장하는 것과 태민의 이번 컨셉과 안무 또한 디오니소스적 가치를 구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맨 처음 'MOVE'의 안무와 태민의 의상 등을 보고 느낀 것은 매우 중성적이라는 것이었다. 언뜻 보면 박지윤의 '성인식'의 의상 같은 옷을 입고, 흔히 생각하는 여성적인 동작의 춤을 춘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뚜렷한 구분(질서)이 없어지고 모호함이 부각된다는 측면에서도 디오니소스를 떠올릴 수 있겠으나, 디오니소스라는 신에 얽힌 비화와 관련지어서도 한번 더 생각해볼 수 있다. 디오니소스의 성장기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전설이 있는데, 그중 한 전설은 헤라가 디오니소스를 찾아 해코지하는 것을 막기 위해 디오니소스를 여자아이처럼 꾸며져서 길렀다고 전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고대 조각상 등에서 한때 디오니소스가 중성적인 어린 남성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점을 의식한다면 태민의 중성적인 컨셉 또한 디오니소스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나의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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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물이 있는 곳에서 생명이 싹트는 까닭에 디오니소스는 축축한 것들—술, 피, 체액 등—과 연관 지어진다. 뮤직비디오 속에서 계속 비가 내리고 태민과 무용수들의 젖은 모습이 부각되는 것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그 나름대로 디오니소스적이라고 해석될 수 있겠다.







스스로를 평가하자면 나는 아폴론적인 가치가 굉장히 지배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다. 혼란과 무질서보다 질서 정연함을 추구하고, 논리에 매료되고 비이성적인 것을 멀리하고자 한다. 즉흥적으로 춰야 하는 프리스타일의 춤은 두려우며, 이미 정해진 안무를 칼같이 외워 추는 춤이 더 즐겁다. 가끔은 이러한 성향 때문에 스스로의 삶을 너무 빡빡하게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니체의 눈으로 본다면 나는 너무 아폴론적 요소에만 치우쳐서 스스로를 압박하고, 건강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역시, 나에게는 좀 더 디오니소스적인 게 필요하다.


그러니까 결론은, 태민이의 영상을 좀 더 보는 게 나에게 좋을 것 같다는 것이다. 이건 단순한 덕질이 아니라, 니체의 조언을 실행에 옮기는, 철학도로서 매우 마땅한 태도임에 틀림없다. (뻔뻔)




* 커버 이미지와 본문 속 이미지는 모두 태민의 'MOVE' 뮤직비디오의 일부분


* 여담이지만 니체가 <비극의 탄생>을 쓸 무렵에 그는 바그너의 짱팬이었고 그 둘은 절친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둘의 사이는 시간이 지나며 와해되었고 니체가 죽을 때까지 관계는 회복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http://inews.ewha.ac.kr/news/articleView.html?idxno=17937의 기사가 재미있는 읽을거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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