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연주의적'인 바디워시

향에 대한 자연주의적naturalistic 설명을 찾아서

by 오수민

쓰고 있던 바디워시가 다 떨어져서 근처 드럭스토어에 들렀던 날, 마침 그 매장은 대대적인 할인 행사를 하고 있었다. 반값으로 내려간 가격표를 붙이고 있는 각종 다양한 제품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어떤 향으로 살까 고민하던 중, 내 눈길을 잡아 끈 두 제품이 있었으니. 바로 "사랑스럽고 달콤한 향"과 "우아하고 매력적인 향"이라는 설명을 달고 있던 같은 회사의 두 제품. 대체 사랑스러운 향은 무엇이며 우아하고 매력적인 향은 어떤 향이란 말인가! 나는 두 제품을 양손에 각각 들고 이건 완벽하게 '자연주의naturalism'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설명이라고 생각하다가, 잠시 후 "우아하고 매력적인 향"을 골라 집으로 돌아왔다.








철학에서 '자연주의naturalism'라고 하는 것은 단 하나로 정의되기는 힘들다. 다만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철학자들은 공통적으로 "무엇이든 자연적인natural 것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한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특정한 맥락에서 자연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 영국의 철학자 무어(G E Moore)는 윤리학 분야에서 자연주의를 비판한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는 1903년에 펴낸 그의 저서 <Principia Ethica프린키피아 에티카> 속에서 윤리학이란 자고로 "무엇이 좋은 행위인지"를 묻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행위가 무엇인지, 그리고 좋음이란 무엇인지가 밝혀져야 할 것이기에, 윤리학에 있어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근본적인 질문은 “'좋음good'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좋음'의 정의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어는 '좋음' 은 정의될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좋음'이란 '노랑'과 마찬가지로 더 이상 분석될 수 없는 "단순 개념simple concept"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신이 단 한 번도 색깔을 본 적이 없는 시각장애인에게 노랑이라는 개념을 설명해야 한다고 상상해보라. 당신은 시각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노란색이 뭔지 알고 있지만, 노란색이 뭔지 모르는 사람에게 그냥 노란색을 보여주는 것 말고 달리 설명할 방법이 있겠는가?


물론 노랑을 '물체가 반사하여 우리 시세포에 들어오는 특정한 파장대의 빛'이라는 식으로 언어적인 정의를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보는” 바로 그 노랑이 아니다. '특정한 파장대의 빛을 반사함'은 '노랑' 그 자체가 아니라, '노란 것'들 즉 '노랑'이라는 것을 속성으로 가지는 무언가에 속하는, '노랑'과 대응하는 또 다른 속성일 뿐이다.


'좋음'도 마찬가지라고 무어는 말한다. '좋음'은 언어적으로 정의가 불가능한, 그 자체로 알 수밖에 없는 개념이다. 하지만 이러한 '좋음'과 '좋은 것—좋음을 가지고 있는 것'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좋은 것'은 '좋음'을 속성으로 갖는 것이고, '좋음'은 '좋은 것'에 속하는 속성 그 자체이다. 예를 들어 "향이 좋은 바디워시를 쓰는 것은 좋다"라고 말한다면, '향이 좋은 바디워시를 쓰는 것'은 '좋음' 말고도 또 다른 속성들, 예를 들면 '즐거움', '상쾌함' 등의 속성도 동시에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이처럼 '좋은 것—여기서는 향이 좋은 바디워시를 쓰는 것'은 단순 개념들을 합쳐서 구성된 복합complex 개념이므로 그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사용해 정의할 수 있다.




무어에 따르면, 공리주의자들은 이러한 '좋음'과 '좋은 것'을 혼동해서 '좋음'을 정의 가능한 것으로 착각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공리주의는 어떠한 행위가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그 행위가 좋은 결과를 내는지 나쁜 결과를 내는지에 달려있다고 믿는다. 공리주의 관점에서는 그 행위가 더 많은 즐거움pleasure을 창출할수록, 그 행위는 좋다. 이러한 맥락에서 "즐거움pleasure은 좋다good"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무어의 관점에서 이는 "좋은 결과"로서의 '즐거움', 즉 '좋은 것'으로서의 '즐거움'이 '좋음'이라는 속성 자체와 동일하다고 말하는 오류이다. "즐거움은 좋다"라는 것은 그저 '즐거움'이 '좋은 것'이라는 것, 다시 말해 '좋음'이라는 속성을 갖는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지, '즐거움'이라는 속성이 곧 '좋음'의 정의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점에서 무어는 이들이 '좋음'이라는 “가치”를 '즐거움'이라는 “심리상태—자연적 사실”로 환원시키는, 그래서 정의 불가능한 속성인 '좋음'을 자연적 속성을 통해 정의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자연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를 범했다고 비판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내가 산 바디워시는 철저하게 "가치"를 나타내는 단어만을 사용하여 제품의 향을 묘사한, 자연주의적 관점에 반대되는 설명을 제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우아함"과 "매력적임"은 결코 자연적인 사실로 바꿀 수 없는, 정신적인 가치를 담고 있는 단어이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이 바디워시의 향을 자연주의적 관점에서 설명한다면 어떻게 될까?



제품 뒷면에는 이렇게 향에 대한 자연주의적인 설명이 아주 간단하게나마 적혀있다.



힌트는 뒷면에 있었다. 물론 이조차도 최소한의 자연주의적 설명이긴 하지만, 그래도 "장미(로즈)와 제비꽃"이라는 자연적인 사실을 통해 향을 설명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대부분의 향수는 소비자들이 최대한 구체적으로 향을 인식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인지 자연주의적으로 향을 설명한다. 향수마다 탑노트와 미들 노트, 그리고 베이스 노트에서 나는 각각의 향의 원료를 명시해둔 것만 봐도 그러하다. 대체 "우아하고 매력적인 향"이 어떤 향인지 궁금해서 구입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 마케팅 전략이었는지는 몰라도 (결국 나도 사버렸으니 말이다) 제품의 향에 관해서라면, 가치에 근거한 주관적인 설명이 아닌, 보다 향에 대해 명확한 이미지를 가질 수 있는 자연주의적인 방법으로 설명해주었으면 하는 것이 제조회사에 대한 바람이다.






(참고: 이 글에서 무어의 논증과 관련한 부분은 <Principia Ethica> (1903)의 1장을 바탕으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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