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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싸인 Jun 12. 2017

[코싸인의 인지과학 이야기]
기억(13)

[기억 4주차 - 인문사회] 1. 집단기억이란 무엇인가

기억에 관한 논의의 대두

    지난 시간까지 코싸인에서는 심리학, 신경생물학적 관점에서 ‘기억’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인문사회학적 관점에서 기억을 알아볼 텐데요. 현재 서구 학계뿐만 아니라 국내 학계에서도 기억에 대한 인문사회학적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억에 관한 인문사회학적 논의는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요?

    기억에 관한 논의는 먼저 프랑스의 철학자인 앙리 베르그송에 의해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베르그송은 개인기억을 철학의 기반으로 삼고 개인의 정신적 상태의 연속을 의미하는 ‘지속’ 개념을 강조하였는데요, 이 ‘지속’이라는 속성이 각 개인에게만 귀속되며 인간 기억의 토대를 이루기 때문에 개인기억이 집단기억에 비해 더 중요하며 논리적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제자였던 사회심리학자 모리스 알박스는 가장 개인적이라 생각되는 기억조차 사회화의 산물이기에 집단적 성격이 내재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며 기억의 집단적 속성을 강조하였습니다. 그의 논의는 ‘집단기억’이라는 개념을 대두시키게 되는데요. 알박스를 통해 기억의 사회적 측면이 강조되면서 기억 논의가 실존철학이나 정신분석학을 넘어 사회와 역사의 차원으로 확장되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후 서구 학계에서는 ‘나치 독일의 유태인 대학살’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사건과 맞물려 집단기억 논의가 활발해졌고, 20세기 이후 이념, 민족, 종족, 지역 간의 충돌로부터 자유로운 나라가 없어지면서 현재 국내 학계에서도 집단기억 논의가 역사와 맞물려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이러한 집단기억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집단기억의 정의

    집단기억에 대한 정의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첫 번째로, 집단기억은 개인 기억들의 단순 집합을 뜻합니다. 이는 한 사건에 대한 여러 개인들의 각기 다른 기억을 모아놓은 집합기억을 집단기억으로 보는 시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6.25 전쟁이라는 하나의 사건에 대해 개개인의 기억 양상은 모두 다를 것입니다. 누군가는 직접 전쟁에 참가하여 총상을 입은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전쟁 중에 가족과 이별한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개인 기억들의 집합체를 집단기억이라고 정의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관점을 중시하는 첫 번째 정의와 달리 두 번째 정의는 공식적인 기념 행위나 집단적 재현 등을 통해 형성된 집단(국가)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기억을 집단기억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순국선열에 대한 추모행사 및 6.25 전쟁 등에 대한 교육을 통해 형성된 하나의 통일된 6.25 전쟁에 대한 이미지나 기억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이를 통해 대한민국의 안보 및 애국심이 고취된다는 측면에서 첫 번째 정의보다 집단적 관점이 강조되고 더욱 하나로 통일된 집단기억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특정한 의도 역시 내포되어있을 수 있는 기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25 전쟁 피란민들의 각 개인기억들의 집합과 순국선열 추모행사 등의 공식 기념행위로 형성되는 기억 또한 집단기억에 해당한다 / 사진출처 : 환경일보, 부산일보


기억에 관한 논쟁(개인적 vs 사회적)

    한편 19세기에는 기억 자체가 개인적인 것인가, 사회적인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이는 개인적인 관점에서 기억을 정의하는 자연과학분야와 사회적인 관점에서 기억을 정의하는 사회과학분야의 논쟁이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자연과학적 관점, 즉 신경생물학적 관점에서는 기억을 대뇌피질에 저장되는 것으로 인식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프로이트’는 기억이 사람의 내부, 즉 개인의 무의식 속에 저장되는 것으로 인식하였습니다. 기억은 자극을 외부에서 받아들여 개인 내부에 저장하고 이를 다시 꺼내는 과정이며, 이는 생물학적 상호작용의 결과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반면 사회과학적 관점에서는 기억 그 자체를 개인 내부에 저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와 외부의 연결, 상호작용으로 인식합니다. 즉, 기억이 개인 내부가 아닌 개인과 사회의 관계 속에 존재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과학적인 관점은 알박스를 통해 대표되고 있으며, 늑대인간의 사례를 통해 좀 더 쉽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늑대인간의 경우 늑대 무리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기억이 언어화되어있지 않고, 이는 기억 자체가 개인 내부에서 구성되는 것이 아닌 외부 사회와의 상호작용의 결과물임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기억을 바라보는 알박스(왼)와 자연과학적 관점에서 기억을 바라보는 프로이트(오) / 사진출처 :  ©Zam,  Biography


집단기억적 관점에서의 개인기억

    그렇다면 이러한 집단기억의 관점에서 개인의 기억은 어떻게 구성되는 것일까요? 이는 앞서 언급한 기억의 사회과학적 관점과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알박스는 "사람들은 사회 속에서 기억을 얻고, 사회 속에서 기억을 회상하고, 인식하고, 구체화한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즉, 기억의 부호화, 저장, 인출이 모두 사회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알박스가 기억을 개인 내부에 저장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의 연결 그 자체를 기억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개인 기억이 사회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기에, 개인 기억의 변경도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사회적 자극에 의해 인출된 기억은 다시 사회적 상호작용을 거치며 변경되고, 새롭게 저장되어 추후 새로운 기억의 인출로 이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동창들과 중학생 시절의 기억에 관해 이야기할 때, 같은 사건에 대해 기억함에도 불구하고 세밀한 부분의 기억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의 서로 다른 기억은 대화라는 사회적 상호 적용을 통해 변경되고, 새롭게 부호화 및 저장되어 추후에는 결국 새롭게 인출될 것입니다. 즉, 집단기억은 개인기억을 개인 내부에 저장되어 있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의 연결 그 자체를 개인기억으로 보며, 개인기억의 부호화, 저장, 인출 모두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개인기억에 대한 타인의 개입

    앞서 살펴보았듯, 집단기억적인 관점에서 온전히 개인의 것으로만 구성되거나, 신경생물학적 관점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기억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억하는 행위의 주체는 물론 개인이지만 개인의 기억조차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재구성되거나 재인되기 때문에 소속집단이 개인에게 기억의 자료를 제공하기도 하고, 개인을 부추겨 어떤 사건을 기억하거나 망각하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즉 타인이 개인기억에 개입하여 기억이나 망각을 조장하는 것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행을 예로 든다면 관광했던 도시에 대한 개인기억은 개인이 그 도시에서 만난 사람들, 도시 지도의 제작자, 도시에서 본 건축물과 예술작품을 만든 창작자들의 의도와 같은 외부 요소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즉 개인의 기억에는 타인들이 개입되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타인들은 개인에게 기억의 자료나 기반을 제공합니다.


여행했던 도시에 대한 개인기억조차 사회적 요소와 관련되어 있다 / 사진출처 : (주)플라이트그래프

    

    또 다른 예로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례를 살펴볼 수 있겠습니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혁명기 때 배고픔에 시달리는 프랑스 시민들에게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실제로 이러한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이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해 잘못된 기억을 가지게 된 이유는 당시의 혁명기적 시대상황, 프랑스 시민들 사이의 움직임 등의 외부적 요소가 개인기억에 개입하여 혁명정신을 더욱 극대화시킬 수 있도록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코싸인 인문사회팀]



참고문헌

김영범. (1999). 알박스의 기억 사회학 연구. 대구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논문집, 6(3), 557-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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