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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싸인 Jul 06. 2017

[코싸인의 인지과학 이야기]
인공지능(2)

[인공지능 1주차 - 응용과학] 2. 인공지능의 역사

딥러닝으로의 나아감까지

    작년 봄, 엄청난 화제를 몰고 온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은 인공지능의 폭발적인 성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불과 4~5년 전까지만 해도 인공지능은 고양이와 강아지도 제대로 분류할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인간에게는 너무나도 쉬운 이 일이 인공지능에게는 왜 어려웠던 걸까요?



사진출처 : 허핑턴포스트코리아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과거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과거 서양의 철학자들은 다양한 세상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인간들에게는 인간들의 세상이 있고, 다른 존재들에게는 그들만의 세상이 있다고 믿었던 것이죠. 하지만, 철학자 파르메디데스가 등장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 세상은 단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별들의 움직임과 인간의 인생과 하루살이의 인생은 다 같은 법칙을 통해서 작동한다.

 

    즉, 모두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으며 이 세상이 작동하는 규칙도 하나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 규칙을 알아낸다면 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러한 생각은 헤라클레이토스에게 계승됩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세상이 하나이지만 우리에게 다르게 비치는 이유는 그 모습 뒤에 자연이 숨어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숨어있는 자연을 끄집어내어 찾아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를 위한 도구들을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물체들의 규칙을 알아내려 하다 보니 물리학을 만들었고, 사람들이 권력을 얻고 행사하는 것의 규칙을 알아내려 하다 보니 정치학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하나씩 세상을 이해하는 학문들이 나타났지만, 아직도 무엇인가 부족했습니다.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들을 구축하기는 했지만, 하나의 규칙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언어체계의 시작이 바로 라이프니츠의 이진법입니다.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이자 수학자, 또 외교관이기도 했던 그는 서로 다른 언어로 인한 소통의 문제를 경험하고 명확한 소통의 도구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는 수학이야말로 명확한 소통을 가능하게 할 해법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탄생한 것이 0과 1의 조합을 통한 이진법 체계입니다. 이 세상의 언어를 수학으로 표현해내기 위한 엄청난 시도였죠. 하지만 이진법은 언어를 기호화시킬 뿐 언어들을 이어주는 연결성은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기호들 간의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 바로 앞서 이야기했던 불의 논리입니다. AND, OR, NOT 등의 논리게이트를 이용함으로써 언어를 기호적으로만 표현하는 것의 한계를 극복하고 마침내 언어를 구성하는 문법 체계를 구축해내게 됩니다.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 그림출처 : 위키백과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간략히 정리해보면, 세상이 하나의 법칙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사고가 이루어지면서 자연을 파헤쳐보려는 생각이 있었고, 이러한 생각을 통해서 다양한 학문들이 구축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논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언어체계가 필요했고, 그것이 이진법과 불의 논리를 통해 구축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이야기는 컴퓨터의 시대로 넘어갑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논리(언어)를 바탕으로 컴퓨터를 설계하면 컴퓨터가 논리대로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텐데요, 이 생각의 시발점은 1956년 다트머스 칼리지에서 이루어진 컨퍼런스였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수학자들이었고 초기에는 '체스'를 두는 컴퓨터를 통해서 사람처럼 논리를 갖춘 컴퓨터를 설계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들의 야심찬 시도는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기계에 논리를 주입해주기만 하면 뛰어난 처리능력을 바탕으로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체스의 경우, 거의 모든 경우의 수를 처리할 수 있는 연산능력이 갖추어진 후 컴퓨터가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둑처럼 압도적인 경우의 수를 다루는 문제에서는 난관에 부딪히게 되죠. 또 서두에서 이야기한 고양이와 강아지를 구별하는 문제부터 시작해서 직립보행을 하고 문을 여는 등 인간에게는 너무나도 쉬운 문제들을 기계는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논리가 잘못 만들어졌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걷고 뛰는 법을 논리적으로 배우지 않았습니다. 또 고양이와 강아지를 구별하는 것 역시 논리가 아니라 학습을 통해서 이루어 낸 것이죠. 이처럼 논리(언어), 그마저도 해상력이 유한한 것으로 이 세상을 온전히 표현하고 이해하기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 눈 앞에 빨간 사과가 있다고 가정하고 이 사과의 색을 언어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빨갛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사실 그 빨간 사과를 빨갛다고만 말할 수는 없습니다. 노랑, 주황, 초록 등 다양한 색이 섞여 있죠. 하지만 우리는 이 사과가 붉은색을 주로 띠기 때문에 빨간 사과라고 칭할 뿐입니다. 다양한 색이 섞여 있는 사과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는 존재하지 않죠. 즉, 언어의 해상력으로는 세상의 모든 것을 표현하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 논리만으로는 한계를 느끼고 인간처럼 학습이라는 것을 도입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예전부터 이러한 시도는 꾸준히 이루어져 왔습니다. 다만 논리를 앞세우는 기호주의적 인공지능 연구가 큰 흐름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 빛을 발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또한 기하급수적인 데이터를 다룰 수 있는 기술의 발달 등 다양한 배경 요인들이 맞물리면서 지금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딥러닝이라는 머신러닝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딥러닝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응용과학팀의 다음 포스트에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코싸인 응용과학팀]


참고문헌

김대식 (2016). <김대식의 인간 vs 기계>. 서울: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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