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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싸인 May 23. 2017

[코싸인의 인지과학 이야기]
기억(2)

[기억 1주차 - 심리] 2. 심리학의 고전적인 기억연구

고전적인 기억 연구: 에빙하우스와 바틀렛

 

헤르만 에빙하우스 Hermann Ebbinghaus (1850-1909)   /사진 출처 : blog.naver.com/ahamath13

인간의 기억을 이해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상당히 많은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행동 측정치를 이용한 정교한 실험 설계 이외에도 최근 급격히 발달하고 있는 뇌 영상과 같은 신경과학적 방법들까지 이용하여 기억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밝혀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최신 연구들의 기반이 된 고전적인 기억 연구들을 살펴봄으로써 과학적으로 기억을 연구하는 방법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다만, 이 연구들은 컴퓨터가 보급되기 전에 이루어진 연구들이어서 장비도 요즘과 달리 충분하지 않았고 방법론 상에서도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들에서 처음 도입한 기법과 발상의 많은 부분들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가치 있는 통찰을 제공해줍니다.



(1) 에빙하우스의 망각 실험(Ebbinghaus,1885/1913)

사진 출처 : mblogthumb4.phinf.naver.net

가장 먼저 살펴볼 연구는 헤르만 에빙하우스(Hermann Ebbinghaus)가 수행했던 망각 실험입니다. 에빙하우스는 기억 연구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과학적이고 엄밀한 방법으로 기억을 연구한 최초의 사람들 중 한 명입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당시 한창 발전하고 있던 정신 물리학(Psychophysics)에 큰 감명을 받아 기억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정신 물리학이란 외부 환경의 물리적 자극과 인간의 심리적 반응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는 심리학의 오래된 분야입니다. 정신 물리학은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고 조작할 수 있는 외부 자극을 변화시키면서 그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의 반응을 관찰하였는데, 에빙하우스는 인간의 기억도 이와 같이 엄격한 방법을 통해 연구해보고자 했습니다.


에빙하우스의 실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무의미 철자를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무의미 철자란 말 그대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단어들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자면, BAP, KEP, DAK와 같이 아무 뜻도 가지고 있지 않은 단어들을 실험에서 사용한 것입니다. 그가 무의미 철자를 선택한 이유는 기억해야 하는 단어들이 가진 의미가 실험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배제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렇게 의미를 배제하지 않고 일반적인 단어들을 가지고 실험을 하면 각 단어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의 정도에 따라서 기억하기 쉬운 정도가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에빙하우스는 모든 단어들을 공평하게 무의미한 것들로 구성해서 의미의 영향을 배제하고 엄밀하게 인간의 기억을 측정해보고자 했습니다.

에빙하우스의 망각 곡선 / 사진 출처 : www.aistudy.com

에빙하우스의 망각 실험의 절차는 간단합니다. 우선 무의미 철자들을 외우고, 일정 시간을 기다린 뒤 다시 확인해서 잘 기억을 하고 있는지 검사를 했습니다. 그 뒤 잊어버린 단어들은 다시 암기하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실험을 한 뒤 절약 점수를 계산했습니다. 절약 점수란 어떤 단어를 학습한 이후 일정한 시간이 흘러 그것을 잊어버렸을 때, 다시 그것을 암기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를 계산한 결과입니다. 만약 절약 점수가 100점이라면 그것은 학습을 다시 할 필요가 없이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는 뜻이며, 점수가 0에 가까워질수록 다시 암기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들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빙하우스가 계산한 절약 점수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그리게 되면 에빙하우스의 ‘망각 곡선’ 나옵니다.


재학습할 때의 망각 곡선 / 사진 출처 : ko.wikipedia.org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에 따르면 절약 점수는 학습이 일어난 이후 점점 감소하는데, 이 감소폭은 초반에 극심했다가 점차 줄어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대부분의 망각이 초기에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뿐만 아니라, 망각 곡선은 다시 학습할 때마다 기울기가 줄어들게 됩니다.(위 사진 참조) 이러한 결과는 복습을 하면 할수록 망각이 덜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에 와서는 이러한 사실들이 너무나 당연해 보이지만, 에빙하우스의 연구는 이 사실들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에빙하우스의 연구는 무의미 철자로 의미의 영향을 배제했고, 인간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엄밀한 기억 연구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실험은 피험자가 자기 자신이었다는 점에서 방법론 상의 결함이 존재합니다. 왜냐하면 실험 참가자가 실험의 목적이나 조작하는 변수를 알고 있으면 실험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의 실험에 참가한 사람은 자기 자신뿐 이었기 때문에 실험 결과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는 문제점도 있었습니다.

헤르만 에빙하우스 "아아, 심리학에서 참인 것은 새롭지 않고 새로운 것은 참이 아니구나!" / 사진 출처 : izquotes.com


(2) 바틀렛의 연구(Bartlett, 1932)

 Frederic Bartlett (1886-1969) / 사진 출처 : www.npg.org.uk

두 번째로 알아볼 기억 연구는 바틀렛(Frederic Bartlett)이 수행한 연구입니다. 바틀렛은 영국의 심리학자인데, 케임브리지 대학의 첫 실험심리학 교수였습니다. 그는 무의미 철자를 연구한 에빙하우스와는 달리, 의미 있는 자료에 대한 기억을 측정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는 기억의 형성에 도식(Schema)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도식이란 경험에 의해서 축적된 ‘전형적인’ 상황에 대한 지식 구조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도식을 형성합니다. 예를 들자면, 누군가가 우리에게 교실에 대해 떠올려보라고 하면 다들 칠판, 분필, 책상과 의자 등을 떠올릴 것입니다. 이렇게 누구나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지식의 덩어리, 또는 틀이 바로 도식입니다.


바틀렛은 도식이 기억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하여 자신이 가르치는 영국 학생들에게 인디언 설화를 읽도록 하였습니다. 그렇게 설화를 두 번 정도 읽은 뒤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에 학생들에게 그 설화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것을 전부 써보라고 지시했습니다. 결과는 예상대로, 설화의 내용을 모두 그대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내용보다 좀 더 압축되고 응집된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은 단순히 이야기를 압축해서 기억하는 것뿐만 아니라 친숙하지 않은 내용들을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왜곡해서 기억했습니다. 당시 영국에 사는 학생들에게 인디언 설화는 굉장히 생소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특히 영국에서는 설화 속 인디언들처럼 카누를 타고 강을 따라 이동하거나 바다표범을 사냥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학생들은 이 내용들이 낯설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 결과 영국의 학생들은 설화를 기억해 적을 때 카누를 배라고 기억하거나 바다표범이 아닌 물고기를 잡으러 가는 것으로 기억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낯선 내용을 기억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도식의 영향을 받아 내용이 왜곡된 것이죠.

사진 출처 : www.zralok.estranky.cz && cfile28.uf.tistory.com

바틀렛의 실험은 우리의 기억이 구성적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보처리 접근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에서는 컴퓨터에서 일어나는 것과 비슷한 정보처리 과정이 일어나는데, 구성적 기억의 존재는 인간과 컴퓨터의 기억이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어쩌면 무의미 철자만 암기한다면 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맥락과 의미를 가진 것들을 기억할 때에는 컴퓨터와 달리 인간은 자신이 가진 도식에 따라 기억의 내용을 왜곡시키게 됩니다. [코싸인 심리팀]


참고문헌

김민식, 손영숙, 안서원 역(RobertSternberg 저), 『인지심리학(3판)』, 박학사, 2005.

김현택, 신맹식, 최준식 역(MarkGluck, Eduardo Mercado, Catherine Myers 저), 『학습과 기억』, 시그마프레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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