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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싸인 Oct 20. 2017

[코싸인의 인지과학 이야기] 가상현실/증강현실(5)

[2주차 인문사회팀] 5. 가상현실에 대한 윤리적 성찰

 지금까지는 가상현실/증강현실의 현황부터 그 철학적 배경까지를 살펴보며 가상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사회적, 윤리적 문제들을 소개해보았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의 여지를 주는데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가상현실/증강현실의 여러 문제들을 접하고 생각하실 때에 혹시 현실사회에서 적용되고 있는 사회적 규범이나 윤리적 가치들이 바탕이 되지는 않으셨나요? 바로 이 질문이 이번 파트에서 중점적으로 다룰 내용입니다.  


3-1. 가상현실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실제현실의 사회적 규범이나 윤리적 가치들을 가상현실에 적용하는 문제는 가상현실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그 논의가 달라집니다. 가상현실을 실제현실의 연속적 개념으로 인식한다면 가상현실에 실제현실의 여러 사회적, 윤리적 가치들을 적용시키면 될 것입니다. 반대로, 가상현실이 실제현실과 불연속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실제현실과는 다른, 가상현실에 적합한 새로운 사회적 규범과 윤리 체계가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실제현실과는 불연속적인 가상현실                      

[그림 1] James H. Moore [1] 

 가상현실을 실제현실과 불연속적인 것으로 파악한 사람으로 제임스 무어(James Moore)가 있습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가상현실의 등장은 새로운 세계의 등장이며 새로운 세계에는 반드시 개념적, 정책적으로 공백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존에 존재하는 윤리학설이나 가치체계 역시 가상현실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적용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주장하며 가상현실에 적용될 새로운 윤리체계 마련에 있어 다음과 같은 필수적인 과제를 제시합니다. 첫째로, 새로운 개념들을 제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가상현실이라는 새로운 세계에서는 실제 현실에서 나타날 수 없는 여러 개념과 담론들이 충분히 등장할 수 있기 때문에 그의 이러한 생각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둘째로, 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하기 위한 여러 정책적 제반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기술의 이용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현재 시행되고 있는 ‘셧 다운제’ 같은 제도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실제현실과 연속적인 가상현실                      

[그림 2] Deborah G. Johnson [2]

 다음으로, 실제현실과 가상현실의 연속성을 주장하는 인물로 데보라 존슨(Deborah Johnson)이 있습니다. 그녀는 가상현실이 실제현실과 분리될 수 없는 이유로 가상현실의 비자족성을 꼽았습니다. 가상현실은 실제현실과 별개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녀는 두 세계의 연속성을 전제로 하여 그 윤리 체계나 규범을 논의하는 것이 마땅하며, 앞으로 가상현실을 맞이할 우리가 당면한 과제는 단순히 기존의 윤리학설에 대한 재해석만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가상현실에서 나타날 여러 문제들은 결코 새로운 문제나 이슈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생각해봅시다!
여러분이라면 가상현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요?



3-2. 가상현실에서의 윤리적 체계의 틀

 가상현실에서는 매우 다양한 사회적, 윤리적 문제가 등장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한 다양한 문제들의 원천들을 일반화시키고 정리해 나간다면 다음과 같이 4가지로 압축할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가상현실의 윤리적 체계의 틀을 마련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가상현실의 4가지 윤리적 체계의 틀

현실과의 괴리

 가상현실은 인간이 창조했다는 점에서 인간의 이상성이 투영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만들어 낼 때, 우리가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상태를 상상하며 만들어 나갑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서랍장 하나를만든다고 가정하여도 아마 저마다의 아름다운 서랍장이 탄생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개인의 이상성이 투영된 가상현실은 각자가 경험하는 실제현실에 비해 더 나은 세계일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현실에서 극복될 수 없는 문제들이 가상현실에서는 극복 가능하며 실제현실에서 느껴볼 수 없었던 즐거움이나 행복들을 가상현실에서는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가상현실의 이상성으로 인해 인간은 실제현실과의 괴리감을 느끼게 되고 이로 인해 여러 문제들이 함께 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아 정체성 형성

 자아 정체성이란 그 기능적인 측면을 살펴보자면 결국 ‘자신’과 ‘타인’을 구별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아 정체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문화입니다. 따라서 문화의 틀은 그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사회,그리고 그 구성원들에게 중요합니다. 그 문화적 틀에는 경계가 존재하며 경계가 오랫동안 유지됨으로써 자아 정체성이 형성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상현실에서는 정보의 교류 속도가 증가하고 정보 비대칭성이 해소되며 그 경계가 유지되기 힘들어지며, 더 나아가 가상현실에서의 문화적 틀에 속하지 못해 불안과 긴장감에 빠지기 쉬워집니다. 또 다른 주장으로 가상현실은 익명성의 기능이 극대화된 공간이기 때문에 다양한 모습의 자아를 형성할 수 있지만 이로 인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 소멸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위와 같은 근거로 가상현실에서는 자아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 어려우며 여러 문제들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자율성과 책임

 개인의 자율성과 책임의 문제는 가상현실에서 더 강조됩니다. 불행히도 가상현실은 실제현실과 비교했을 때 사회적 규범과 윤리 체계가 미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가상현실에 실제현실에서의 사회적 규범이 그대로 적용되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주체적인 개인이 옳고 그름의 명확한 판단 기준에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판단의 능력은 자율성의 확립이 전제될 때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이와 관련해서 가상현실에서 개인의 자율적인 행동을 어느 범위, 어느 영역에까지 확장시켜 이해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등장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개인의 자율성이 형성될 수 없어 나타날 다른 문제들을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은 이에 대해 자율성의 파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후설은 인간의 자율성의 기준은 육체적 행위라고 이야기하며 서로 간의 육체적 행위를 매개로 사람들의 주관이 상호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역설적으로 자율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상현실에서 육체적 활동은 존재할 수 없고 매개될 신체적 개념인 ‘타인’ 역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가상현실에서는 개인의 자율성이란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인간관계와 공동체의 변화

 마지막으로 가상 공동체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다른 문제들에 비해 모두가 쉽게 공감하고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잘 알듯 공동체가 존재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내부적 결속이 강화되고 그 과정에서 시너지 효과와 같은 긍적적 기능이 발휘되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공동체 구성원 간의 갈등과 대립이 필수적입니다. 왜냐하면 일정 정도의 갈등과 대립을 통해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를 잘 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현실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발생했을 때 공동체로부터의 탈퇴라는 선택지는 있지만 얼굴을 맞대는 사이이다 보니 좀 더 신중하게 결정할 것이며, 그보다는 문제 상황을 함께 해결해나가려는 노력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가상현실에서는 단지 접속을 끊기만 하면 공동체로부터 벗어나게 된다는 점에서 공동체의 형성과 소멸이 훨씬 쉬워집니다. 따라서 가상현실에서의 가상공동체 유지 및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 수 있습니다. 또한 가상공간에서는 집단정신이 있을 수는 있지만 사회적 거주는 없습니다. 가상공간에는 접속을 통해 드나드는 방문객만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하워드 라인골드(Howard Rheingold)는 낯선 이와의 상호작용으로는 가상공간에서 인간관계와 공동체가 성장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번 시간까지 우리는 가상현실, 증강현실에 대한 인문사회적 담론을 살펴보았습니다. 현실에서 가상현실/증강현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나 사회의 초점은 시장규모와 기술적 가능성에 대해서만 맞춰져 있습니다. 가상현실 기술이 가져올 사회적, 윤리적 현상에 대한 관심은 매우 저조하고 이에 대한 철학적, 윤리적, 법적 담론은 사실 거의 전무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가상현실/증강현실 기술이 발전하면 다양한 철학적, 윤리적, 법적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동반될 것이고 우리는 이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코싸인의 이번 브런치 글이 이러한 논의가 퍼져나가는 작은 출발점이 되었기를 희망하며 인문사회팀의 가상현실/증강현실 파트를 마칩니다. [코싸인 인문사회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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