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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싸인 Nov 30. 2017

[코싸인의 인지과학 이야기] 의식(4)

[6주차 신경생물학팀] 4. 기억과 의식


그림 1. (좌)주의집중과 주의이동 뇌 구조, (우)시각처리과정과 시상침의 역할 [1]

  지난 글의 말미에서 어떤 대상에 주의를 기울이기 위한 ‘분리, 이동, 향상’의 세 단계를 언급하며, 이러한 단계별 과정에도 뇌의 다양한 부위가 상호 연결되어 작용한다고 하였습니다. 시각의식을 예로 들면, 시각적 주의집중에는 뇌의 시상침(pulvinar)이라는 부위가 관여합니다. 시상침은 [그림 1]에 나타나있는 것처럼 후두정엽 및 상구와 연계되어 새로운 시각정보에 대한 주의집중상태를 전환·강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이처럼 시상침은 시각적 주의집중에 관여하기도 하지만, 대뇌의 전전두엽과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글에서 뇌 활동이 의식화되기 위한 조건으로 상호연결성과 동시 활성화를 살펴본 바 있습니다. 혹시 이와 더불어 서로 연결되고 함께 발화하는 뇌의 영역이 다름 아닌 “대뇌 피질”이었던 것 또한 기억하시나요? 결국 시상침에서 대뇌의 전전두엽까지 시각정보가 상호 연결되고 나서야 마침내 시각 주도적인 의식 상태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시상침은 시각적 주의와 의식 사이를 매개하는 뇌의 중요한 영역이라고 볼 수 있지요.  

  이번 글에서는 바로 이 전전두엽을 화두로, 지난 글에서 다루었던 ‘인식’과도 긴밀히 연관되는 ‘기억(memory)’을 살펴보려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의식을 어떻게 설명해 볼 수 있을지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전전두엽과 작업기억(Working memory)

  의식에는 대뇌피질이 관여하는데, 그 가운데 전전두엽은 언어·자의식·시간의식 등의 고차의식과 목적지향성 및 예측 대부분을 관장함으로써 행동을 주시하고, 감독하고, 이끌고, 집중시키는 등 여러 중요한 기능들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물론 상호연결성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뇌의 특성상 이러한 전전두엽의 기능 또한 전전두엽 단독으로 이뤄내는 것은 아닙니다. 전전두엽과 함께 대상회(Cingulate gyrus)나 해마(hippocampus)를 포함하는 대뇌 변연계(limbic system) 등이 한데 어우러져 신호를 처리한 결과이지요.

그림 2. 작업 기억(Working memory) [2]

  전전두엽은 기억을 부호화해서 저장하고 이를 인출하는 데 중요하기도 합니다. 기억과 관련하여 현재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지는 애트킨슨과 쉬프린(R. C. Atkinson & R. M. Shiffrin)의 중다저장 모형(multistore model)에서는, 인간의 기억체계를 감각기억과 단기기억, 그리고 장기기억의 단계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즉, 오감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는 1~2초 정도의 짧은 감각기억으로 머물렀다가, 단기기억 단계에서 조작 및 처리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단기기억은 흔히 작업기억(working memory)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작업기억들 중 일부가 장기기억으로 넘어가 기억의 저장고에 오랫동안 남게 되는 것이지요. 여기서 우리가 의식과 관련해 주목해보고자 하는 기억의 단계는 바로 작업기억입니다.

  작업기억은 한 마디로 ‘지금-여기(here and now)’의 기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뇌가 의식 상태에서 행하는 구체적인 활동으로서,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 보고 듣고 느끼고 있는 장면들이 작업기억에 해당하지요. 이러한 작업기억에도 역시 전전두엽이 관여합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하였듯, 전전두엽뿐만 아니라 대상회와 해마(hippocampus)를 포함하는 변연계, 시각피질 등이 함께 주변 환경의 자극을 즉시 처리함으로써 비로소 작업기억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림 3. (좌)변연계-빗금친 부분, (우)변연계를 구성하는 구조물들 [3]

  그런 의미에서 작업기억과 관련되는 대상회와 해마의 작용을 좀 더 살펴보려고 합니다. 대상회는 뇌량 주변을 띠처럼 둘러싸고 있는 대뇌피질인데, 앞쪽의 전대상회(anterior cingulate cortex, ACC)와 뒤쪽의 후대상회(posterior cingulate cortex, PCC)로 구성됩니다. 전대상회는 전전두엽 및 해마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지각한 자극에 정서적 색채를 입히거나 인지작용과 관련되고, 후대상회는 연합감각신호를 해마에 전달하여 개별감각들공간적·연합적·맥락적으로 통합되는 데에 기여합니다.

  한편, 측두엽에 위치한 해마는 정서의 표현 및 학습에 관계하는 편도체와 맞닿아 있습니다. 그동안 장기기억의 저장중추로 익히 알려져 왔습니다만, 최근에는 해마가 기억을 형성하는 영역이지, 장기적으로 저장하는 영역은 아님이 밝혀졌습니다. 기억이 형성되는 동안은 해마와 신피질(neocortex)이 상호 연결된 상태를 유지하다가, 기억이 장기기억화되면 해마와 신피질 사이의 연결이 끊어지게 되고, 장기기억은 최종적으로 해마가 아닌 대뇌피질에 저장됨을 알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마가 기억을 형성하는 데에만 그치는 단순한 장치인 것은 아닙니다. 해마는 지각 정보에 가치를 부여하는 기능 또한 갖고 있어 정보에 따른 적절한 운동실행계획을 수립하는 데 기준을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에델만의 의식모델(Edelman's Consciousness Theory)

그림 4. Gerald M. Edelman(1929~2014) [4]

  앞서 살펴본 작업기억은 대부분의 인지과학자들에게 현재의 의식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또한『기억의 신경심리학』의 저자, 야마도리 아츠시는 기억을 “시간 경과에서 축적되는 신경활동의 총체”이자 “과정을 반복하는 유기체 자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기억을 현재의식, 더 나아가 인간 그 자체로 상정하는 것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의식을 무엇으로 불러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으신가요?

  우리는 같은 세상 속에 있지만 우리가 느끼고 기억하는 세상의 장면은 저마다 다릅니다. 이러한 경험의 주관성에 의식이 관여한다고 볼 수 있겠지요. 이처럼 우리의 자아와 바깥의 세상을 잇대는 의식에 대한 인상적인 가설이 있어 이 자리에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바로 197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고 스크립스 연구소 신경생물학과의 주임교수이신경과학연구소장으로 최근까지 수많은 과학적 업적을 남기셨던 에델만(Gerald M. Edelman)의 의식모델입니다. 에델만은 인간의 의식을 일차의식과 고차의식으로 나누어 설명하였습니다. 일차의식이 대부분의 포유동물들도 일정 부분 갖고 있는 뇌 기능이라면, 고차의식은 언어를 비롯해 과거-현재-미래를 구분하는 시간의식 및 자의식과 같이 인간만이 가능한 뇌 기능을 의미합니다.    

   한편, 에델만의 모델은 크게 자기(self)와 비자기(non-self)의 구분을 통해 접근해 볼 수 있습니다. 의식이 있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우리의 몸, 곧 신체적 자아가 존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몸은 뇌간, 시상하부, 자율신경계 등의 작용으로 항상성을 유지함으로써 외부 환경의 변화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일정한 자기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기에 대해 비자기의 물리적 세계는 다양한 정보와 자극의 원천이 됩니다. 시각, 청각, 촉각 등의 제1,2차 피질에서 세계의 신호들은 재구성된 외부 세계상으로 구현되지요.

그림 5. 에델만의 일차 의식 및 고차 의식 모델 [1]

  이처럼 뇌의 감각피질에서 현재의 지각을 통해 세계상을 재구성할 때, 에델만은 ‘지각의 범주화’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지각의 범주화란, 주어진 자극을 구별 가능한 일정한 패턴으로 인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말보다 익숙하지 않은 영어로 이루어진 노랫말은 단어가 구분되어 들리지 않고 한 덩어리로 흘러가버리곤 하지요? 하지만 익숙한 패턴이 반복되어 기억되면, 노랫말의 단어들이 구별되어 들리고 그 의미 또한 알 수 있게 되는데요, 그러한 원리를 에델만은 지각의 범주화로 설명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지각의 범주화에는 기억을 형성하는 데 관여하는 해마 및 장기기억을 저장하는 대뇌 연합피질 등의 연계적인 상호작용에 의해 형성된 반복적인 패턴들이 긴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각의 범주화를 통해 구체화된 세계상은 전두엽, 두정엽, 측두엽 등 연합피질로 이어지고, 계속 뇌 회로가 돌아가면서 추상적인 관계의 속성으로까지 변환됩니다. 그 과정에서 ‘개념의 범주화’가 이루어집니다. 피질이 지각과 관계되고, 변연계-뇌간 시스템이 가치와 관계된다면, 개념의 범주화는 가치라는 배경 위에서 일어나는 지각에 대한 범주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가치를 기반으로 범주화한 기억을 에델만은 가치-범주기억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때 가치는 결국 기억, 다시 말해 과거 경험에서 학습의 결과로 획득한 상대적 가치에 따라 결정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의 장면을 현실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가치-범주 기억에 따라 범주화하여 재구성한 저마다의 장면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여기에 언어가 더해져 기억능력이 향상되고 상징능력이 획득됨으로써 마침내 고차의식이 가능해졌다고 보는 것이 에델만의 전체적인 의식모델이 되겠습니다.

  의식을 어떤 정체를 갖는 “대상(thing)”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자아와 세계, 현재와 과거, 뇌의 다양한 영역들, 그리고 지각, 감정, 기억 등의 뇌 활동들 등 의식에 관여하는 다양한 요소들의 연계와 상호작용이 이루는 일종의 “과정(process)”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에델만의 모델은 눈 여겨 봄직 합니다.       

  의식은 지금 이 순간에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주제이며, 앞으로 밝혀져야 할 미지의 영역이 그야말로 무궁무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도 우리는 아직 온전히 속속들이 알고 있지 못하는 의식에 대하여, 이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의식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불러주기 참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몇 편의 글을 통한 논의에서 어쩌면 의식은 이름을 갖는 무언가, 즉 어떤 ‘것(thing)’으로 접근되기보다 일련의 ‘과정(process)’으로서 파악될 수 있음 또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아직 그 누구도 의식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할 만큼 의식의 세계는 복잡다단합니다. 하지만 코싸인의 이번 발제가 여러분에게 의식에 대한 나름의 의미 있는 인상을 남길 수 있었기를 바라며 이번 발제를 마칩니다. [코싸인 신경생물학팀]


참고문헌

강현식. 세상 밖으로 나온 심리학. 네모북스. 2006.

박문호. 뇌 생각의 출현. 휴머니스트. 2008.

[1] 박문호. 뇌 과학의 모든 것. 휴머니스트. 2013.

[2] https://examinedexistence.com/what-is-working-memory-in-the-human-brain/

[3] 김종성. 춤추는 뇌. 사이언스북스. 2005

[4] https://en.m.wikipedia.org/wiki/Gerald_Edel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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